거울아 거울아

요술 거울아~

by 하루

우리 집 욕실엔 요술 거울이 하나 있다. 무슨 조화인지 그 거울 속에 비치는 나는 신기하게 늘 화사하다.(어느 순간, 어떤 몰골이더라도) 아침에 일어나 욕실에서 처음 마주하는 거울 속 얼굴을 보며 ‘어쩜… 피부가 이렇게 뽀얗지?’ 배시시 웃음이 난다. 누가 이 마음속 소리를 들으면 혀를 차며 그러겠다. “과하게 모자란 나르시시스트군.” 어때, 혼자 하는 생각 안에 타인을 들일 필요가 없는 아직 이른 아침이다. 매일 반복되는 출근 준비 후 더운물 한 잔으로 속을 채우고 서둘러 집을 나선다. 천변 둑길에 피어오르는 물안개의 도열로 꿈 속인 듯 아련한 풍경을 뚫고 외로 난 길을 달려 사무실에 도착한다. 다시 하루의 문을 연다.


오후 3시 회사 업무 중 지나치며 사무실 거울에 비친 얼굴을 흘깃 본다. 어!! 그 얼굴이 아닌데 아침에 만났던 요술 거울 속 얼굴이. 턱 밑까지 내려올 것 같은 다크서클은 그렇다 쳐도 반나절이 폭탄처럼 터져 그 시간의 잔해가 피부에 내려앉은 걸까? 이 거울에 뭔가 문제가 있다. 유리가 울퉁불퉁한 건가, 푸르뎅뎅한 조명 때문인가. 일찍 해가 져 벌써 어둑 선해진 하늘을 이고 퇴근한 저녁, 씻고 화장대 앞에서 물끄러미 하루를 마치는 얼굴을 본다. 이 거울 속 얼굴은 수많은 날 태양의 흔적과, 중력의 부침 없는 위세가 적나라한 표층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어느 마법사의 실수로 뚫려 버린 멀티 유니버스에서 차원을 건너온 수많은 내가 있는 것 같이 여기저기 다른 얼굴을 하고 거울 속에 내가 등장한다. 맘에 드는 게 집 욕실 요술 거울 속 포샾을 거친 것 같은 뽀얀 얼굴일지라도 사실 어떤 얼굴이 지금 모습에 가까운지 지나는 사람들을 붙들고 물어본다면 사무실 거울이나 화장대 앞 거울의 모습 사이 어디쯤이라 답하지 않을까. 머릿속 나의 모습과 정직한 거울에 비치는 나의 모습이 그 격차를 경쟁적으로 벌려가고 있는 걸 인지하기 시작한 지 꽤 되었지만 적나라한 표층을 수용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몸의 쇠퇴 속도와 반비례한다. 광택과 매끄러움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시대, 탄력 있는 피부, 매끈한 몸, 어려 보이는 얼굴도 자본으로 치환되는 시대를 살며 시간이 만든 울퉁불퉁 주름이 품고 있는 이야기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일이 누구에게나 쉽거나 나이 들어 저절로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제 생각한다. 호호 할머니가 되어 깊은 고랑이 패인 얼굴 이더라도 “너 참 예쁘다.” 해 주는 마법 거울 하나 옆에 있다면 세상의 시끄러운 말들일 랑 귓등으로 들어 넘기며 달려드는 세월을 그 고랑 사이로 기꺼이 흘려보낼 수 있겠다고.


몸도 마음도 지쳐 돌아온 저녁 요술 거울에게 물어본다. 거울아 거울아 오늘 나 어때? “오늘도 그대로 참 예뻐, 수고 많았어” 요술 거울이 나를 반짝이게 잘 비춰 주길 바라는 만큼 나도 누군가를 아름답게 바라봐 주는 마법 거울이 되어 줘야지. 오래도록 사랑스럽게 바라보면 그 대상이 아름다워진다. 시간이 지날수록 조각 나 있던 시간들이 삶에서 가지는 의미를 총체적으로 해석하며 한 존재가 더 깊어지고 아름다워지는 게 어쩌면 예술이고 그대로 철학이다. 쉽사리 의기소침해지는 하루하루 덕분에 기쁘게 예술을 할 수 있도록 사랑을 담아 봐 주는 살아 움직이는 내 마법 거울들에게 감사하며 그 존재로 인해 겁나는 시간도 용기 내어 헤쳐 가 볼 수 있겠다고 욕실 거울 속 나에게 얘기를 건네며 굿나잇! 하루 문을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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