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한다?!

황금 구슬과 연못의 마법

by 하루

몹시 드물게 세 식구가 미술관에 함께 갔다. 장 미셀 오토니엘 전시를 딸아이도 마침 보고 싶어 하여. 고즈넉한 고궁 연못에 떠 있는 우아한 유리 연꽃(?)을 보며 시끄러운 머릿속을 비워볼 요량으로. 서울 시립미술관 야외 정원과 내부에 영롱하게 펼쳐져 있는 작품들을 둘러보고 돌담길을 걸어 덕수궁 연못에 설치된 작품을 보러 가는 길, 버스킹 하는 청년이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곳 앞에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여 듣는 모습들이 한가로웠다.


꽃을 사랑하는 소년이었던 작가는 유리와 스테인레스 스틸로 영롱한 꽃을 만들고, (백) 금박 캔버스에 검은, 붉은 꽃을 그려 넣었다. 그리고 유리와 스틸로 만든 몇 개의 꽃들을 그것들도 꽃이므로 꽃이 있어 더 아름다운 정원에 내어 놓고 인공의 꽃이 자연 속에서 뿜어 내는 생경함을 바라보게 장치했다. 덕수궁 연못에 떠 있는 금구슬로 만들어진 꽃 위로 여름 한낯의 햇빛이 스푸마토 기법으로 물감을 뿌려 놓은 듯 금빛 안개를 뿌리고 있었다. 그 이미지는 뇌를 거치지 않고 눈을 통해 바로 심장으로 직행하는 듯 강렬하게 꽂혀, 그대로 입을 다물고 오랜 시간을 바라보고 싶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하지만 그날은 그렇게 오래 내 눈과 마음을 그 꽃들에 붙박아 둘 수 없었다. 파란 하늘과 초록 잎을 인 연못 위 마침 자기 자리를 찾은 듯 우아하게 놓여 있는 황금 구슬들은 신비롭게 아름다웠지만, 사진 몇 장을 스마트폰에 담은 우리 셋은 고요한 응시일랑 서둘러 거둔 뒤 연못가를 떠나 덕수궁을 나왔다. 덕수궁 밖 시청 앞 광장으로부터 확성기를 통해 고궁 담을 넘어온 시위대의 노랫소리와 구호 소리가 뇌를 울리는 데세벨로 쉴 새 없이 귀를 강타했다. 저 소리들은 무슨 말을 하려 하나. 연못 위 꽃들은 담 넘어에서 외치는 온 시간과 공간을 덮는 투쟁의 소리에 그만 그 작은 속삭임도 전하지 못하고 입을 닫아 버렸다.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한다." 오토니엘 전시를 주제로 쓴 며칠 전 신문 칼럼을 읽으며 주말 뜨거운 볕 아래 담벼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여름 태양처럼 뜨겁게 대치하고 있던 두 세계를 생각한다. 아름다움이 현실을 구원할 수 있을까. 투쟁이 아름다움으로 승화될 수 있을까. 그날 서둘러 자리를 뜬 이후 내내 황금 연꽃을 떠올리면 씁쓸해지는 기분은 아마도 쉽게 질문에 답을 찾지 못하거나 어쩌면 결국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 탓이다.


예술이 구원하지 못하는 현실을 뒤로하고 다시 돌담길을 걸어 되돌아오며 아까 그 바이올린 청년의 같은 레퍼토리의 연주를 또 들었다. 음악은 저 청년을 구원해 줄까. 사람들은 이 연주를 듣는 찰나 어떤 시간을 보내는 걸까. 아름다움이 뭉뚱그린 현실을 구원하지는 못할 지라도 우리를, 개별자인 나를 구원할 수는 있지 않을까. 작은 희망을 품었다. 바이올린의 아름다운 소리가 저 청년의 하루를, 저 소리에 이끌려 잠시나마 귀 기울이며 서 있는 사람들의 5분을 구원할 수 있기를. 황금 구슬과 연못이 함께 오늘 그 것을 본 우리 세사람에게 딱 필요한 어떤 순간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신비한 마법을 부려주기를. 이런 신통찮은 바람을 가진 내가 참 작게 느껴지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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