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밭을 캐다.

by 하루

글을 쓰다 보면 자주 어느새 반성문이 될 때가 있다. 특히 넘쳐나게 많아 처치곤란인 물건들을 쌓아 두고 뭔가를 또 구매한 날에 더 그렇다. 지난해 여름 어느 날 쓴 일기를 보자.


2021년 8월 9일

또 사고 말았다. 점심 식사 후 동네 한 바퀴, 산책만 하기엔 너무 덥기도 심심하기도 하여 그냥 구경만 하자 하고 들어간 옷 가게. 마침 딱 맞는 붉은 스커트와 좋아하는 초록색 스커트까지. 그래! 수선하지 않아도 되는 게 어디야. 빨강, 초록 치마는 없잖아. 옆에서 동료가 하나만 사도 되지 않을까 만류하는 소리는 마이동풍이다. 찰나 같은 30분 치마 두 개 블라우스 한 개가 쇼핑백에 얌전히 담긴다.


집에 돌아와 옷장을 열고 이미 빼곡해 걸 자리가 마땅치 않은 걸 발견하지만 꾸역꾸역 비집고 걸어본다. 그러면서 멋쩍은 기분으로 새해 다짐을 떠올린다. ‘불요불급한 물건은 사지 말자!’ 나는 필요하지도 않은 것들을 왜 자꾸 사는 걸까. 옷을 끊임없이 사고 신발, 그릇, 액세서리, 화분, 가구, 그림들...

이렇게 말하면 덜 떨어져 보이겠지만, 내가 소소하게 구매하는 것들에는 대체로 필요를 넘어서는 장점이 있다. 내 기준으로 예쁘다. 세상엔 예쁜 것들이 참 많다. 내 취향을 반영하고 있는 물건들은 나를 즐겁게 한다. 물건들이 나를 닮은 구석이 있어 정이 간다. 여행길에 사 온 물건들은 특별했던 그 시간의 기억을 소환해 준다. 친구들에게 생일이나 성탄절이 아닌 평범한 날 뜻밖의 선물로 감동을 줄 수도 있다.


누군가는 소비와 함께 오는 즐거움은 단편적이고 생명력이 짧아 소모적이라고 타박할 수도 있다. ESG가 화두인 시대에 무한한 소비가 지구를, 인간을 끝장 낼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앙금처럼 남는 부채감을 안고서도 나는 왜 계속 소비하는가. 나를 소비하게 하는 근본적인 욕구. 소비도 일종의 창조 활동이기 때문 아닐까. 나를 알아가는 지적인 활동, 자기를 표현하는 일종의 수단 같은 거라고. 이게 무슨 어불성설이냐 하겠지만. 자기만의 취향이나 분위기는 머릿속에서만 만들어질 수 있는 게 아니다. 내가 선택하는 접점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그 접점에 물건이 있다. 이런~~!! 궤변은 그만 늘어놓고 정신 차리라고 하는 소리가 들린다. 들뢰즈와 가타리가 아니더라도 “기분 좋게 해 놓고 정작 주머니를 털어가는 소비 자본주의”를 경고하는 소리를 못 들을 일 있겠는가. 산책 길에 사버린 옷들이 예뻐서 괜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이제 정말 그만 사자.




늘 말도 안 되는 궤변을 늘어놓다 결국은 풀 죽은 반성문으로 끝이 난다. 그렇다고 반성문의 효력이 오래가는 건 아니어서 한 달 지나 바닥나는 월급처럼 반성의 마음도 유효기간을 지나 바닥을 드러내기 전 반성의 시간을 다시 갖고 나서야 효력이 유지되니 피곤한 일이다. 그럼에도 반성하는 일(또는 왜 일까 묻는 일)을 그만두지 않는 이유는 왠지 께름칙하고 심란하고 우울하거나 석연치 않을 때 내 안에 현미경을 들이대고 그 어정쩡하고 불투명한 감정이 어디서부터 오는지 알아 내려하는 노력이 스스로에게 그 감정을 물끄러미 바라볼 기회를 주고 나에게서 한 발짝 물러날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타인의 문제가 더 또렷하게 보이기 쉬운데 자기를 객관화시키는 일은 때때로 복잡한 마음의 문제를 표면으로 밀어 올려 타인의 것인 양 냉정하게 바라보게 한다. 객관화된 응시가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하거나 습관을 하루아침에 바꾸지는 못한다.(난 여전히 그다지 불요불급하지 않은 것들을 산다.) 문제와 습관은 겉으로 고구마 줄기처럼 하나나 두 개로 보이지만 줄기를 힘 껏 당겨 들어 올리면 여러 갈래로 뻗어지는 뿌리와 닿아 있다. 이 뿌리를 캐는 일은 내가 농부가 되어 내 마음 밭을 매는 일이다. 내 마음이지만 나에게 쉽게 그 뿌리를 선뜻 내어 주지 않으니 농부에겐 인내심과 꾸준함을 장착한 심력과 진전이 없더라도 쉽게 지치지 않는 체력이 필요하다. 작년 8월 9일 이후 소비에 대한 내 진단은 또 다른 이유로 바뀌었을 텐데 바뀌면 바뀌는 대로 더 깊이 석연치 않은 마음이 석연해질 때까지 묵묵히 들어가 보는 것. 한 권의 책도 제대로 읽기가 어려운데 나라는 책을 제대로 읽기가 쉬울까. 나를 읽고 나면 타인을 읽는 길도 보이리라 기대하면서. 오늘도 또 묻는다. '나는 왜 자꾸 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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