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에 날려

먼지처럼

by 하루

종이처럼 납작하게 접으려 해도 접히지 않는 마음이 있다. 베일 듯 날카로운 금속성의 마음은 결코 접히는 법이 없어 시간의 풍화로 녹슬어 바스라 질 때까지 무시로 시간에 저항하며 삶의 틈 사이를 비집는다.

그 틈이 벌어지는 순간은 예측을 불허하는데 오래 달고 사는 지병처럼 무고하다가도 예고 없이 불쑥 마음을 벤다.


여름밤 무더위에 매미가 사무치게 울어댈 때. 한 낮 파랗게 시린 하늘 하얀 구름이 봉긋 지나갈 때. 종일 움츠렸던 사지를 펴 보려 초저녁 요가매트 위에 누웠을 때. 산책길 새로 연 카페 창 너머 노란 전구가 눈에 들어올 때. 주말 서점 신간 코너에서 새 책 냄새를 맡을 때. 졸린 오후 별 맛없는 커피를 홀짝일 때....


어떤 스위치가 켜져 그 마음이 작동하는지 알 수 없다. 아니면, 반대로 늘 켜져 있는 마음이 가끔 꺼지는 건지도 모른다. 기다려. 영원한 마음이 없으니 접히지 않는 마음을 접으려 애쓰다 더 깊이 베이지 말고 빨갛게 녹슬어 바람에 날려 갈 때까지. 납작 접힌 척하지 말고 조금씩 풍화되는 마음을 바라보며 뭉긋한 아픔쯤은 견뎌 보면서. 자꾸 돋아나는 마음도 시간의 마법에 점점 먼지처럼 사라지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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