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인사

파티를 열어 줘

by 하루

어제 지인의 부친상이 있어 장례식장엘 다녀왔다. 요즘엔 가족이라 하더라도 병실에 여럿이 들어갈 수 없어 임종도 쉽지 않은데 지인은 부친이 운명하시기 전 3일을 집에서 지내시는 동안 해외에서 온 가족들도 보고 마지막 인사를 다 건네고 돌아가셨다 한다. 상주인 지인의 얼굴이 말갰다.


몇 주 전 주말 혼자 있던 밤 보고 싶었던 영화 벨파스트를 봤다. 떠난 사람과 떠나지 못한 사람을 한꺼번에 껴안는 따뜻한 영화였는데 그중 유독 한 장면이 오래오래 기억에 남는다. 주인공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가족들과 친지, 친구들이 파티장에서 함께 노래하며 춤추는 장면은 언젠가 딸아이와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리게 했다.


가족과 차를 타고 가던 여행길, 무슨 능인지 역사 유적지 같은 곳과 아파트가 함께 보이는 풍경을 지나며 무덤 바로 뒤에 서 있는 집에 사는 게 무섭지는 않을까 얘기하는 중이었다. 불쑥 딸아이가 “내 장례식엔 파티를 열어 줘” 한다. 내가 맞장구친다. 그래 그 거 좋겠다. “엄마 장례식에도 파티를 열어 줘” 죽음이, 장례식이 꼭 무섭고, 두렵고 슬퍼야 하는 건 아니니까.


최근 읽었던 아툴 가완디의 책 '어떻게 죽을 것인가' 읽고 "현대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에 대한 이야기들이 계속 인간다운 죽음이란 어떤 것일까를 생각하게 했던 즈음이었다. 마지막 순간을 어떻게 맞고 싶은가. 가는 이를 어떻게 보내 주어야 할까. 삶의 방식을 고민하는 만큼 죽음의 방식도 고민해야 하는 걸 안다. 죽음의 방식을 정하고 나면 삶을 대하는 관점이나 태도도 바뀔 것이기 때문에. "죽음을 일종의 의학적 경험으로 만드는 실험"에 실험 대상이 되고 싶지 않은 것만은 분명한데,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삶이 불가능해질 때 어떤 선택들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하는 것은 또 쉽지가 않다.


수많은 고민들을 잠시 놓아두고 딱 한 가지를 소원한다면 마지막 순간 떠날 시간이 임박해 오는 것을 알 수 있는 행운이 있기를 바란다. 잠잠이 마음의 준비를 하고 평소와 별 다름없는 모습으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다정한 담소와 따뜻한 포옹을 나누며 마지막 며칠을 보내리라. 아끼던 물건들을 나누고 즐거웠던 추억을 꺼내 작게 웃으며 잠깐 그 시절을 소환해 보리라. 잘 지내. 나를 아주 짧게 기억하고 이후엔 쭉 잊어도 좋다고 말해 주리라. 살아 있는 사람은 살아 있는 사람의 시간으로 살아야 하므로 죽음을 오래 기억하지 않아도 좋다. 살아 있는 동안 우리 서로 다정히 시간을 보내기로 해. 그리고 떠나는 날 하루 나와 함께 했던 시간을 즐거운 추억으로 기억하며 안녕! 잔치를 열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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