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금반지
금색 팔찌 둘, 금반지 둘, 옥 가락지 하나, 은 브로치 하나. 시골집에 내려 간 길에 안방 서랍 장안에 있던 손바닥만 한 천 지갑 속 금붙이들을 챙겨 가지고 올라왔다. 엄마의 유품이라면 유품인 물건 들인데도 어째 나는 그것들을 시골집 서랍 장 안에 내쳐 두는 게 불편했다.
서울로 돌아와서도 이 쇠붙이들을 빨리 처분해야겠다는 생각이 줄곧 머리 한구석에 올빼미 눈을 하고 있어 며칠 지나지 않은 오후 사무실 근처 금은방을 찾아 주뼛대며 들어섰다. 굳이 돌아가신 엄마의 유품이라고 얘길 할 필요는 없지… 그냥 “집안에서 오래 굴러다니던 건 데…” 말끝을 흐리며 반지 하나를 천 지갑에서 주섬주섬 꺼내 유리 진열장 위에 놓았다. 넉살 좋아 보이는 금은방 주인아저씨 “뭐 그렇게 하나씩 꺼내지 말고 그냥 다 부으세요” 한다. 갈색 옥가락지 빼고 다 부을 것도 없는 정체 모를 금색 팔찌 둘, 싸구려 돌이 박힌 금반지 둘, 색이 다 바랜 은 브로치 하나. 다 부으라고 한 말이 멋쩍었다 싶었는지 얼른 팔찌 하나를 집어 들고 “요게 금인지 봐 드릴게…” 까만색 돌 위에 쇠붙이를 문질러 생긴 무늬에 액체 한 방울을 떨어트리며 “음… 이건 금도금이네요…” 다른 팔찌 하나를 들어보며 “이건 금인 거 같은데..” 똑같이 문질러 액체를 부으니 문지른 무늬가 감쪽같이 사라진다. “에구.. 죄송해서 어쩌나.. 이것도 금이 아니네.. 은 브로치는 깨끗이 세척해 드릴게” 글쎄 금은방 주인이 죄송할 거 뭐 있나. 반지 두 개의 금값을 함께 쳐서 받은 돈이 십삼만 육천 원. 가지고 간 천 지갑 안에 건네받은 현금과 돌려받은 팔찌 두 개, 깔끔히 닦인 은 브로치를 다시 구겨 넣었다.
뒤돌아 금은방을 나서는데 물컹하고 시큼한 과육이 억지로 넘어가는 것 같이 목이 따끔거린다. 가늠하기 어려웠다. 금이었음 싶었던 쇠붙이가 금이 아닌 것이 민망한 건지, 금반지 두 개 값이 겨우 십삼만 육천 원으로 쳐진 것이 못내 아쉬운 건지, 가짜 금붙이와 싸구려 보석이 박힌 반지 두 개가 유품으로는 참 보잘것없어 서러운 건지. 보잘것없는 유품만큼 보잘것없는 인생이라는 생각을 하며 돌아갔을까 싶어 가슴 안쪽이 무너지는 건지. 망설임 없이 유품을 헐 값에 내다 판 자손의 무심함에 정나미가 떨어지는 건지.
그날 저녁 집에 돌아와 엄마 인생의 어떤 가치가 고스란히 치환된, 십삼만 육천 원과 도금 팔찌 둘, 다시 바래질 은 브로치 한 개가 담긴, 오늘 이후 오랫동안 다시 열릴 것 같지 않은 작은 천 지갑을 내 화장대 서랍장 안쪽에 깊숙이 밀어 넣었다.
엄마가 돌아 가신 지 10년이 지났으니 저 글을 쓴 지도 10년이 되었다. 그 사이 어느 하루 천 지갑 속 십삼만 육천 원을 보태 새 반지를 만들었다. 엄마! 예쁜 반지를 못 해 드려 미안해. 대신 내가 엄마 반지 더 예쁘게 만들었어요. 맘에 드시려나. 그랬음 좋겠네. 가신 이후 한 번도 말로 해 보지 않았지만 보고 싶어요.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