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아마추어다
얼마 전 친구들과 함께 합창 공연을 마쳤다. 곡을 정해 일주일에 하루 오십여 명이 모여 서너 시간씩 연습을 하고 공연장을 잡고 의상을 맞추고 친구, 가족들을 불러하는 연중행사다. 대단할 것도 없는 이 행사에 친구들은 다들 진심 열심이다. 유료로 모시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기에 더욱이 공연을 보러 오는 관객들의 귀중한 시간이 헛되지 않도록 무대를 만들 의무가 있으므로. "다음에 다시 더 잘 하자" 기약하고 싶게 다소 아쉬움이 남았더라도 합창 공연은 무사히 즐겁게 잘 끝났다. 날을 정하면 그날이 시나브로 다가오고, 성기던 소리들이 맞춰져 제법 화음이 되고, 무대에 서는 긴장된 순간이 지나면 어김없이 끝난다는 게 매번 처음처럼 신기하다. 세상 모든 일이 시작되고 벌어졌다 모아지고, 모아졌다 벌어지기를 반복하다 결국 끝이 난다.
어떤 일은 이 모든 과정이 가볍고 즐겁지만, 어떤 일들은 이 과정이 때때로 힘에 부치고 골치가 아프다. 대개 돈을 받고 하는 일은 빈틈도 틀림도 없이 정치하고 완벽해야 한다. 그 결과에 대한 기대와 결과물 자체로 대가를 받으니. 돈을 받고 하는 일에 즐거움이나 치기 어린 무모함만 가지고 접근했다 일찍 지쳐 떨어지거나 큰 실수로 인해 손해를 입히기 쉽다. 힘들고 어렵더라도 실수 없이 완벽하고 틀림없이 꼭 그 결과를 내어 주어야 한다. 그래야 프로다.
우린 많은 시간 프로의 모드로 산다. 왜 안 그렇겠는가. 우리의 생계와 생존이 거기에 달렸으니. 하지만 , 가끔 필요 없이 자동 프로 모드가 발동된다. 예를 들면 작가도 화가도 아닌 나에게, 글을 쓰는 일이나 그림을 그리는 일들처럼 그저 하면 되는 일들이 그렇다. 누가 돈 주고 쓰라, 그리라 한 것도 아닌데 잘 써야 하고 그럴듯하게 그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즐거움이 사라진다. 글과 그림이 노래와 다른 접근을 갖게 하는 건 어떤 이유인가? 기록물이기 때문이다. 물론 노래도 영상이나 녹음으로 재생되어 남기도 하지만 그 건 2차 생산이며 아마추어인 내가 원치 않는 경우 2차 생산은 이뤄지지 않는다. 노래는 기본적으로 일회성 이벤트 이후 사라진다. 1차 생산이 바로 남는 경우는 다르다. 뇌는 소멸되지 않고 남아 있는 기록물을 객관화시키고 스스로 가공의 독자와 감상자를 상정하여 결과물에 대한 평가 시스템을 가동한다. 아마추어로서 하는 일에 대한 객관화와 평가는 득 보다 실이 많다. 가장 큰 손실은 즐거움을 잃는 것이다.
아마추어를 내 나름 정의하자면, 자본, 상업주의의 기브 앤 테이크 모드의 반대에 서 있는, 보상을 떠나 순전한 즐거움과 호기심이 촉발하는 능동적인 마음 상태와 태도로 무언가를 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즐거움과 호기심으로 그냥 하는 일이 필요하다. 모든 일을 프로처럼 할 필요가 없다. 잘하건 못하건 간에 좋아서 하는 일은 삶을 풍요롭고 건강하게 만든다. 좋아서 하는 일을 점점 잘하게 되어 성공하는 덕후가 되기도 하고 은근히 또는 대놓고 그렇게 되라고 강요받는 사회지만 좋아서 하는 일로 성공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좋아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운이 좋으면 잘할 수도 있게 되겠지만, 꼭 잘해야 할 필요도, 보여주기에 좋아야 할 필요도 없다. 그냥 쓰고 그리는 게 즐겁고 좋으면 그냥 하면 된다. 나는 내가 더 자주 더 많이 아마추어가 되기를 바라는데 희망과 달리 쓸데없이 힘이 들어갈 때가 많다. 힘을 빼는 게 인생의 핵심이다.
모든 일이 시작되고 끝이 나는데 이미 내 인생이 시작되어 버렸으니 어떻게든 끝이 날 테다. 프로의 시간은 그것대로 일과 관계에서 오는 만족과 충일함이 있지만, 끝날 때까지 모든 시간을 프로로 사는 건 불가능하거니와 그다지 바람직하지도 않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이라면 별 소득 없이 그저 좋아서 하는 일을 할 때 그 일에 대한 결과를 짐작하고 미리 객관화시키지 말고 그냥 해보자. 아이의 그림 같으면 어떤가. 피카소도 말했다는데. "라파엘처럼 그리는데 4년이 걸렸지만, 아이처럼 그리는 데는 평생이 걸렸다."라고. 피카소야 말로 최고봉의 아마추어가 아니었을까. 생각이 움직이는 대로, 마음이 가는 대로, 손이 움직이는 대로 어떤가. 난 아마추어다. 그렇게 아마추어로 사는 시간은 사람을 말랑말랑하게 만든다. 더 많은 말랑말랑한 아마추어들이 더불어 충만하게 기껍게 사는 세상을 꿈꾸며 또다시 노래 부를 무대를 만든다. 글도 쓰고 그림도 그려보자. 그런데 이상하게 즐거울수록 더 잘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는 건 함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