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지나갔다. 35,6도를 넘나들던 불볕더위도 잠시 주춤하다. 오랜만에 에어컨 바람 대신 창을 열고 시원한 바람을 들였다. 이사를 며칠 앞두고 산만하게 작은 짐꾸러미들을 놓아두고 거실에 앉아 창밖을 본다. 나무들이 초록을 뒤집어쓰고 태연히 무성하다. 재개발로 흔적 없이 사라질 운명을 아는지 모르는지 빼곡히 달린 초록 가지들은 바람 소리 부지런히 나르며 살랑인다. 맹렬한 매미소리, 새소리가 창문을 가득 채워 몰려온다.
오래된 주거단지엔 막 새로 생긴 단지의 정돈되고 소독된 균질함, 새것 특유의 배타적인 경계와 대비되는 풍화와 퇴적, 침식, 적응이 농축된 삶의 결이 주는 넉넉함과 다정함이 있다. 긴 시간 그 안에 공존하는 사람들과 생명들, 건물과 길들이 관계를 맺으며 겪고 살아 낸 세월의 흔적이 주는 작은 긍지와 은근한 환대가 불러오는 감동이 있다. 불편이 편리를 이기기 어려워 또 새것이 가지고 올 부가가치를 무시하기 어려워. 세월의 흔적과 삶의 결을 안고 독창적으로 고쳐 쓰기보다 모두 지우고 새로 갈아 말끔히 다시 세우는 것이 우리의 당연한 결론이 된 지 오래지만. 이어진 시간을 간직한 채 새로움을 모색하는 것이 정말 그렇게 어려운 건 지 의아하다. 그런 사례들을 다른 나라에서 찾아보기 어렵지 않으니 방법이 없지 않을 텐데 생각하니 안타깝고. 집주인이 아닌 거주인으로 살아온 사람이라 할 수 있는 생각인가 싶기도 하지만 이제 새로운 형태의 재개발을 생존의 문제로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낡고 오래된 것들은 점 점 늘어나는데 그것들 모두를 자취 없이 없애 버리고 계속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은 더 이상 사람에게도 다른 생명들에게도 이 지구에도 지속 가능한 선택이 아니란 걸 너무 늦게 깨닫지 않기를 바라게 된다. 이미 많이 늦어 버렸는지 모르지만 나와 가족, 공동체와 나무와 새들 모두를 위해 더 늦기 전에 다른 선택을 숙고해야 할 때다.
이 단지에서 18여 년 동안 30대, 40대를 보내고 50대를 맞았다. 그 시간 동안 엄청난 행운이 있었다 할 수는 없지만 소소한 행운들이 이어졌으니 그것이야 말로 넘치는 행운이 아니었을까. 이리저리 흔들리며 살았지만 뿌리째 뽑히지 않았으니 그것도 행운이다. 때때로 끝나지 않을 겨울 같은 마음이 가까이 서 있는 나무들이 새움을 틔우는 모습을 보며 다시 봄을 기꺼이 맞았으니 그 또한 행운이다
이제 실로 어마어마한 행운은 바라지 않게 되었다. 새로 이사 가는 곳에서도 작고 작은 행운들이 날마다 촘촘히 이어져 주기를. 나무가 사라지면 이 새들은 어디로 또 이사를 가야 할까. 새들도 부디 새 둥지를 찾아 안온해지기를. 새들은 나보다 지혜로우니 '너나 잘하세요' 할 것이다. 새들은 아마도 인간들보다 더 오래 살아남을 것이다. 나무들에게 미안하고 슬픈 안녕을 전하며 이곳에서의 마지막 여름의 소리와 풍경을 귀와 눈과 마음에 담아본다.
틈틈히 나무와 길 사진을 찍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