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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섭코 May 09. 2020

꾸준히 좋아하는 먼 사람, 가수 요조

 나는 덕질과는 거리가 먼 편이다. 반짝반짝 빛이 나는 사람을 향한 마음을 무럭무럭 키워내고 쏟아부어도, 내가 돌려받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덕질에 몰입하지 못하는 편이다. 사실 진정한 덕질은, 쏟은 만큼의 마음 (시간, 돈이 될 수도 있겠지만) 을 돌려받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닌 순수한 애정과 팬심이 원동력이라곤 한다지만 적어도 내게는 그 힘이 작용하지 않는 것 같다. 그렇지만 누군가 좋아하는 연예인 혹은 가수가 있냐 물어오면, 한결같이 답하는 사람이 있다. 내게는 가수 요조가 그렇다. 그의 작품을 모두 찾아 보고 듣거나, 공연을 챙겨 가지는 않는 편이라 진성 팬이라고는 말 못하지만 말이다.


사진 출처 : 강푸름, 여성신문, 페미니즘으로 언어 되찾은 가수 요조 “‘홍대 여신’이 왜 불쾌한 명칭인지 알았죠”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면 컴퓨터를 켜고 싸이월드부터 접속하던 시절 , 요조의 '바나나 파티' 는 내 미니홈피 BGM 이었다. 그때 당시 싸이월드라는 공간은 (나뿐 아니라 대부분의 90년대생에게 그렇지 않을까 싶지만) 자기표현의 공간이기도 했으며 일촌평이나 다이어리 댓글에 일희일비하던, 꽤 중요하고 커다란 세계였다. 한톨 한톨이 소중했던 도토리를 모아 모아 '바나나 파티' 노래를 마침내 내 세계에 걸었을 때 그렇게도 기분이 좋았었다. 요조는 내가 되고 싶었던 20대 어른의 모습이었고, 그만의 분위기와 감성이 묻어나는 음악을 많이 좋아했다. 미니홈피 배경음악으로 그의 노래를 재생시키는 것 만으로 당시 그와 그의 감성에 나를 조금이라도 나란히 놓은 것만 같았다.

 20대가 되어서도 내 플레이리스트에 요조의 노래는 늘 있었다. 바나나 파티, 노스텔지아, 에구구구, 귤, 동경소녀, 마이 네임 이즈 요조, 연애는 어떻게 하는 거였더라, 우리는 선처럼 가만히 누워. 내가 특히 좋아하는 곡들이다. 이제 누군가는 '추억의 노래!' 라고 이야기하곤 하지만, 나에게 만큼은 늘 빛이 바라지 않는 노래들이기도 하다. 10대때 처음 들었던 요조의 첫 앨범 속 음악들은 폭신하고 간질한 연애에 대한 환상을 심어줬었고 동시에 생크림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줬었다. 20대가 되어 들은 '우리는 선처럼 가만히 누워' 란 앨범 속 곡들은 정전기가 튀는 털 스웨터처럼 건조하고 까쓸하지만 듣고 있으면 서서히 따뜻해지는 느낌이 들어 그것대로 또 좋았다. 그렇게 나는 계속 요조의 노래들을 따라가며 나이를 먹었다. 2017년, 어반뮤직페스티벌에서 하얀 원피스를 입고 파란 머리를 한 채 공연하는 그를 먼 발치서 볼 수 있었다. 죽기 전에 트위터에 '나 곧 갈듯' 과 같은 트윗을 남긴다는 것에 대한 농담(정확히 기억 안나 강렬한 디테일만 뽑자면 그렇다)을 그가 했고, 나를 비롯한 관객 모두가 아하하하 웃었다. 저렇게 조용하고 나른하게 이야기 하면서 유머러스한 사람이라니! 20대가 된 지금도 여전히 요조는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이구나, 생각했다.




요조, 임경선의 교환일기



  시간이 쌓이는 동안 그는 서점의 주인이자, 작가이자, 책 관련 팟캐스트 진행자라는 글을 사랑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듣똑라' 라는 팟캐스트에서 게스트로 등장한 요조는 미래에 걱정, 두려움을 느끼는 20대들에 '여자 나이 30대, 끝내줘요!' 라고 말해주곤 한다며 또렷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이제 요조는 닮고 싶은 지향점에 서있는 것 뿐 아니라 앞서 걸어간 뒤 그 길 위에 용기와 응원을 놓아주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 에피소드를 듣는 내내 요조가 놓아둔 용기를 주섬주섬 주워 모을 수 있었다.

 10대, 20대, 그리고 지금까지 내 가치관과 지향점이 달라져 온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 동안에도, 요조라는 사람은 내가 늘 닮고 싶은 사람 (아마 그 역시 시간 따라 변했을 것이지만) 으로 있었다. 나라는 사람은 변해왔고, 내가 변한 만큼 내가 닮고 싶은 사람의 모습도 분명 변했을 것인데, 그 모습을 한 대상은 늘 한결같다는 것을 깨닫고는 조금 신기했다. 지금으로부터 좀 더 시간이 지나, 내가 다시 또 변한 뒤 요조를 바라봐도, 그 시점에서의 또 다른 멋진 모습으로 닮고 싶은 사람의 자리에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게 꾸준히 좋아하고 닮고 싶은, 먼 사람은 가수 요조다. 지금까지도, 그리고 어쩌면 앞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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