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가 폭력으로 노출되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칼부림 사건으로 지역 사회가 흉흉해진 지금 사회를 돌이켜본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폭력의 문제를 고민해야 할 순간이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폭력은 단순히 개인적인 위험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 단순해지지 않았다.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에 내포된 어느 문제점을 두고 파악하여 해결한다면 다행이다. 그러하지 못한 현실이 더 많기 때문이다. 과연 폭력의 원인을 제거할 해법이 있는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점을 항상 염두해야 할 것이다. 폭력이 일어난 순간은 걷잡을 수 없이 번진다.
영화 엘리펀트는 미국의 실제 학살사건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폭력이라는 이름으로 일상의 모든 것들이 사라진다. 특히 영화는 반복적으로 흘러가는 일상 저편의 세계에서 다가온 폭력의 문제를 아주 짧은 순간동안 강렬한 표현으로 관객에게 의미를 전달한다. 폭력이 가져오는 순간의 긴장감이나 표현 혹은 폭력에 대한 정의를 관객들에게 설명도 하지 않는다. 오로지 학교라는 공간에 소속된 아이들의 각자의 순간들을 반복적인 시간에 따라 보여준다. 영화는 그렇게 흘러가는 과정으로 학교라는 공간에서 벌어질 끔찍한 사건의 전말을 관객들은 모른 채 흘러가는 학교의 순간만을 인식하고 있다.
감독은 영화적인 장치를 이용해서 살인이 일어나기 직전의 표현을 사용했다면 관객은 죽음을 영화적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 엘리펀트는 일상의 세계를 모방해서 폭력이 일어날 것이라는 점을 현상 그대로 나타낸다. 동시에 우리가 생각조차 못했던 순간에 일어나는 폭력의 순간을 경험시킨다. 분명히 영화는 관객들에게 강제적으로 살인의 전주를 알리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래서 관객은 결코 의심하지 않았다. 아이들의 총기매매 혹은 게임 학교폭력과 같은 문제는 학교생활의 단편으로 기록되었을 뿐이었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일부만 인식했다. 그래서 관객은 폭력의 순간이 다가온 순간부터 영화를 관찰하는 대상에서 목격한 존재로 변신한다. 만약 영화 속에서 죽음의 대상이 정해져 있거나 관객에게 복선을 암시했다면 관객의 태도는 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관객은 전혀 죽음의 순간을 눈치채지 못한다. 아니 죽음의 순간이 다가오는 것은 알았다. 하지만 그것이 그들 전부가 대상이 될 줄 알지 못했다. 동시에 관객은 평범한 학생들의 학교생활의 과정을 반복적인 시선에 따라 보여주면서 그들이 학살의 대상이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다. 화면 속에서 그들이 지루할 정도로 반복적인 평범함을 강조하던 장면이 16분 동안 폭력 저편에 휩싸이면서 혼란을 야기했다.
동시에 감독은 왜 이러한 현실을 막을 수 없던 것인가를 바탕으로 영화적인 접근을 시도한다. 현실에서도 영화에서도 폭력은 시행되었다. 더 이상 막을 수 없는 아니 이미 벌어진 사건의 결과는 잔혹하게 종지부를 찍는다. 그로 인해 관객이 얻게 된 결과는 무엇일까? 막을 수 없는 폭력에 대한 모순점인가? 아니면 학교폭력이 가져온 잔혹한 현실인가? 혹은 쉽게 총기를 구매하고 폭력에 노출할 수 있는 환경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걸까? 감독은 여러 문제들의 원인과 결과에 대한 답변을 내놓지는 않는다. 오로지 만들어진 현실과 일어난 사건의 그날을 토대로 폭력이라는 지점의 문제를 목격하고자 영화를 만들었다.
그러면 영화를 보는 관객이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개인적으로 감독은 폭력의 저편에서 의미를 찾고자 영화를 촬영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벌어진 사건의 결과와 그 문제에 대한 대처방안은 수많은 학자들의 분석과 뉴스의 끊임없는 스캔들로 재구성되어 대략적인 지표가 나왔다. 그러나 관객은 원인이 아닌 폭력이 일어난 현실과 맞닿은 우리들의 주변을 마주해야 한다. 만약 우리가 지나쳐버린 것이 어디 있는지를 찾아내는 것도 핵심일 것이다. 사소한 경우의 수를 제거하다 보면 폭력은 단순하고도 어려운 결정이 아닌 사소한 해답으로 풀어질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모든 폭력의 원인을 제거하는 해결사가 될 수 없다. 하지만 폭력의 저편은 영화에서 보듯이 평범하게 반복적으로 흘러가는 순간에 갑작스러운 경우에 따라 만들어진 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그것이 유일하게 평범한 우리가 폭력으로부터 대처하는 방법일지 모른다. 평범한 일상이라고 믿은 우리에게 폭력의 저편은 언제라도 다가올 수 있는 현실이다. 그 저편을 일어나지 않을 거야라고 믿음을 가지고 방심하면 폭력은 우리를 쉽게 덮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