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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야 Sep 06. 2023

전쟁은 늙은 자의 손에 결정된다.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by. 스탠리 큐브릭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1964)

1945년 08월 06일 히로시마, 08월 09일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된다. 세계 2차 대전을 끝낸 종말의 순간이자, 인류 역사를 뒤바꾼 서막이기도 했다. 인류의 역사에서 전쟁은 빠지지 않았다. 수많은 지도자는 각국의 이익 혹은 운명을 걸고 전쟁에 참여했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다. 그중에서도 젊은이들은 전쟁터에서 수 없이 많은 피를 흘렸다. 하지만 늙은이들은 뒤에서 전쟁의 목표점을 합의하며 끝을 맺었다. 하지만 전쟁의 방식은 더 잔인하고, 잔혹해서 더 이상 합의만으로 끝낼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인류는 원자폭탄을 개발한다. 그들은 신 무기가 전쟁으로부터 인류를 구원할 줄 알았다. 그러나 원자폭탄은 점차 인류를 위협했고, 멸망의 기로에서 새로운 전쟁의 양상을 만든다. 

  

영화 ‘닥터스트레인지 러브’은 이러한 새로운 전쟁의 비참한 현실을 유머로 승화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감독인 스탠리 큐브릭의 상상이지만 지금의 전쟁의 현실에 가장 극단적인 접점을 생각할 수 있다. 특히나 냉전시대를 다룬 영화는 소련과 미국의 핵을 둘러싼 갈등과 문제를 통해 현실을 반영시킨다. 핵을 가진 두 나라의 군비경쟁 속에서 철저한 반공주의자로 알려진 잭 리퍼 장군의 핵폭격으로 인해 세계가 멸망에 도래한다. 영화와 같은 상상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겠지만 냉전이라는 시대상을 돌아보면 그런 문제는 언제라도 있었다. 다만 많은 이들이 잊힌 역사를 무시하거나 그 시대의 기억을 왜곡할 뿐이었다. 

  

그렇기에 더욱 영화적인 부분을 우스운 코미디적인 감독의 상상으로 치부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일어났던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사건을 돌이켜 보면 인류에게 역사이지만, 그 순간에는 핵이라는 위협적인 무기로 일어날 수 있는 최초의 전쟁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다만 지도자들이 선택한 것이 대화였고, 대화를 바탕으로 갈등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물론 영화에서처럼 문제를 해결하고자 대화를 시도하지만 실패했던 경우를 떠올리면 완벽하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그 방법만이 유일한 선택지였다. 각자만의 이익과 생존을 위한 자존심 대결은 타협되지 않으면 멈추지 않는다. 

  

그러나 잠시 영화로 돌아와서 이야기를 해본다. 대화에 실패한 영화 속에 미국은 고민을 시작한다. 멸망한 인류를 구원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꺼낸 해결책은 엘리트 양성이라는 나치식 인류 계획이다. 혹은 소련의 멸망에도 불구하고 소련을 위해 스파이 행동으로 끝나지 않은 전쟁에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이렇게 비참한 코미디를 보면 지금 영화 속에서 일어나는 문제가 과연 올바른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만큼 감독은 인류의 핵무기와 그에 대한 전쟁의 양상을 거리낌 없이 나타냈다고 믿는 것 같다. 인류가 전쟁을 하는 것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다. 체제를 확장시키고, 군비경쟁을 통해 우위를 점령한다. 세계의 패권을 통해 각국의 부강함을 널리 알린다. 그로서 국가의 존속을 유지하는 점에서 전쟁은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쟁은 결국 인류에게 점차 위협으로 밖에 변질되지 않는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현재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도 비슷한 현실을 보여준다. 러시아의 무의미한 선전포고와 전쟁의 양상은 전 세계를 혼란에 빠졌다. 많은 국가는 다시 전쟁과 혼란 속에 전체주의 성향의 극우 세력이 다시 나타나기도 했다. 다시 히틀러와 같은 미친 세력들이 부활하는 신호탄이라고 본다. 닥터 스트레인지 박사의 히틀러 찬양 같은 웃긴 장면은 결코 코미디에 지나지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영화는 실제 사실로 나타날 수 있는 예언과도 같은 역할을 맡았다.

  

다만, 인류는 다행히도 정답을 알고 있다. 그래서 항상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수많은 노력을 감행한다. 과거 소련의 마지막 서기장 고르바초프와 레이건의 몰타회담 등의 수많은 전쟁의 종식과 무기를 축소하는 등의 노력을 기억해 본다. 영화 닥터스레인지 러브는 단지 영화적인 멸망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을 보여주었다. 그렇기에 인류는 알아만 한다. 몰타회담 같은 노력이 없다면 인류는 언제라도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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