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시절의 이야기이다.
대학에 대한 로망이 아직 존재하는 신출내기 대학생이었기 때문에 그랬겠지만, 그때 당시엔 한 학기 동안 몇몇 강의를 듣다 보면 유독 천재인 것처럼 보이는 교수님을 한두 분(아니면 꽤 많이) 발견할 수 있기 마련이었다. 가만 보면 물체가 아닌 그 너머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묘하게 이상한 눈빛의 교수님.
미디어 관련 전공 수업에서도 그런 교수님이 한 분 계셨다. 기억은 왜곡되므로 쉽게 믿을 순 없지만, 왠지 좀 작은 키에 언제나 양복 차림이셨던 것 같다. 어느 날, 수업이 끝날 무렵이었는지 아니면 한창 수업 중간이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교수님이 굉장한 비밀을 털어놓는 듯이 은밀하게 말씀하셨다.
나이가 들면
뭘 먹고 사는지 아세요?
추억.
추억이 매일 먹는 밥처럼
살아가는 데 필요한
힘이 되어줍니다.
어떤 말은 굳이 필기하지 않아도 머릿속에 깊이 박혀서 사라지지 않는다. 이 말이 그랬다. 한 학기 내내 수업에서 뭘 배웠는지 이제는 다 잊어버렸지만, 이 말은 지금까지도 기억이 난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에게 못되게 구는 건
그 사람 밥그릇을 빼앗는 거나
다름없습니다.
그럼 안 되는 겁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아 그렇구나, 하는 깨달음이 머리를 쳤다.
모든 것이 변하고, 다 흘러 사라져 버리는 세상이다. 영원한 것이라곤 없는 그런 세상 속에서 '나'의 존재를 위로하고 붙잡아주는 것들 중 하나가 바로 '추억'이고 '이야기'구나. 추억은 매일 먹는 밥처럼 나를 살아가게 만드는 힘이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에게 좀 더 다정해야 하는 거구나.
'그때 그랬잖아.' 이 말 하나로 인간이 얼마나 즐거워질 수 있는지, 반대로 얼마나 힘들어질 수 있는지.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친한 친구들끼리 몇 시간이고 신나게 웃고 떠들 수 있는 힘이 '그때 그랬잖아'에 있기도 하고, 무언가 시도하고자 하는 마음조차 사라지거나 어떤 사람만 떠올리면 아주 치를 떨게 만드는 힘이 '그때 그랬잖아'에 있기도 한 것이다.
그 교수님은 우리들에게 언젠가는 추억이 될 '지금-여기'의 소중함을 인지하고 '좋은 관계 맺음'을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타인의 삶과 나의 삶이 어떻게 이어지는지 툭 알려주신 것이었다. 안 그래도 삶은 살기 힘든데, 뺏고 빼앗기며 살면 더 힘들지 않겠는가.
살다 보면 언제나 그 밥그릇을 떠올릴 만한 여유가 있진 않다. 그러나 오늘도 나는 누군가와 함께 든든한 추억을 만들었거나, 누군가에겐 나도 모르는 사이 그가 밥 한 숟갈 먹을 기회를 앗아가 버렸거나, 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종종 생각한다.
이 추억은 나중에
밥이 될까?
지금 나는
서로를 위한,
그리고 나를 위한
따뜻-한 밥 한 끼
잘 지어주고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