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에 좋은 착각.
혹시 저 남자가 날 쳐다보고 있는 게 아닐까. 오늘 아침 내가 봐도 좀 이뻤는데, 말을 걸어오면 어쩌지.
유독 피부결이 좋게 느껴지던 토요일 오전. 씻지도 않은 얼굴에 털이 잔뜩 날리는 니트를 입고 일하는 여자 컨셉을 장착하며 앉아있는데 저 건너 테이블 남자와 자꾸 눈이 마주친다. 내가 썩 괜찮은가 싶어 괜히 기분 좋게 웃고, 이후부터는 신경이 쓰여 우걱우걱 먹어야 할 크랜베리 치킨 샌드위치를 새 모이 먹듯 야금거리고 있다. 물론 저 자는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혼자만 느끼는 모먼트여도 좋다. 금사빠로는 국가대표도 가능하다. 잠깐 시선이 마주쳤던 남자와도 금방 사랑에 빠져 수가지 상상을 하고 미련 없이 이별을 한다. 망상도 재주고 착각은 자유니까. 혼자 하는 착각은 들키지만 않으면 완전범죄로 끝난다.
자기애가 강한 편도 아니다. 컴플렉스가 많다. 지하철 와이파이처럼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자존감이지만 거울을 성의 없이 보고 나온 날은 자신감이 치사량을 넘는다. 난 못생겼어 별로야 지레 겁먹고 쭈뼛거리면 쭈구리가 된다. 미의 9할은 자신감이다. 당당하게 이쁜 척을 해서 상대방의 사고에 혼선을 주자. 이것 봐 나를 한 번 쳐다봐. 나 지금 예쁘다고 말해봐. 어? 뭐지? 내가 이런 스타일에 매력을 느꼈었나? 속일 수 있다. 수능 끝난 열아홉에 첫 연애를 하고, 서른둘 인생 돌이켜 봐도 연애를 썩 많이 해보지는 않았지만 내 남자 친구였던 자들은 열이면 열 모두 내가 쫓아다녔다. 콩깍지가 잘 들러붙는 안구를 가지고 있다. 지금 보면 고만고만한 녀석들인데 뭐가 그렇게 좋아서 간 쓸개 다 빼줘가며 구애를 했었는지. 지구력이 약한 편이라 일 년 육 개월을 못 넘기고 헤어진다. 시작도 내가 하고 끝도 내가 내니 그리 아쉽지는 않다. 마지막 만났던 친구는 저번 달에 결혼을 했다. 내년에 애 아빠가 된단다. 녀석..
착각도 병이라면 나는 중증이다. 철드는 게 약이라던데 철 들 생각 없다. 안 그래도 건빵 같은 일상인데, 촉촉하게 적셔줄 별사탕 정도의 착각은 괜찮지 않나. 가상으로 연예인도 되보고, 경건한 마음으로 이별도 해보고. 마음만 먹으면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착각은 자존감 올리는 데 꽤 괜찮은 방법이다. 한 가지 주의사항은 착각과 현실을 혼동하면 허언증이 될 수 있다는 것. 이 좋은 주말에 시곗바늘 움직이는 것만 쳐다보고 있지 말고 어서 일어나자. 밖은 착각할 소스의 천국이다. 귀에 꼽을 이어폰과 신나는 플레이리스트만 있으면 준비 끝이다. 신발 신자. 생각지도 못한 놀라운 일이 분명 생길 오늘이다.
let's get ridiculo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