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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이사 Oct 27. 2020

회사원은 되기 싫었는데.

쌀밥에 고깃국 먹음 됐지 뭐


부먹이든 찍먹이든 돼지고기 튀긴 것만 입으로 들어가면 된다. 짜장, 짬뽕 기로에서 괴로울 땐 혜성처럼 등장한 짬짜면을 먹는다. 결정해야 할 게 자취방 헹거만큼 빽빽한데 중국음식 시켜먹을 때 정도는 쉬고 싶다. 취향이 없는 것 같지만 모든 게 취향이다. 둘 중에 하나 고르는 건 노동이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때부터 기미가 보였던 결정장애다. 직업에도 짬뽕, 짜장 고르듯 선택지가 있었을까. 어떤 고사든 지문을 제대로 안 읽으면 땡이던데, 내가 회사원이 된 것은 선택의 여지가 없을 거라는 착각에 시야가 흐려져 저지른 땡일까.


진학하고 싶은 대학교를 3 지망 적어 내듯 초등학교 때는 장래희망을 조사했다. 희망해 봤자 너 같은 어린이 수만 명이니 뛰어놀 생각 집어치우라는 의도에서였을까, 인생 희망대로 안된다는 큰 뜻을 미리 보기 해주고자 한 조기교육의 일환이었을까. 창고 정리한다고 묶어둔 책 가지를 펼쳐보다가 발견한 열한 살짜리 글씨에는 귀여운 허세가 묻어있다.


희망직업 : 인테리어 디자이너, 천문학자

비희망직업 : 회사원, 공무원


없었으면 했던 장래였는데 대학교 졸업 시기쯤 되니 영혼을 팔아서라도 회사원이 되고자 했다. 결과적으로 이루긴 했다. 머슴살이를 해도 대감집에서 하랬는데 개 같이 벌어서 장승같이 쓰는 정승댁의 머슴이 되었다. 마님이 주는 쌀밥엔 다 이유가 있다.


아빠 세계의 회사원


시골에서 소를 키우시는 아빠 기준의 회사원이란 아침밥을 4첩 반상으로 챙겨 먹으면서도 풀 메이크업된 얼굴에 색색의 스커트를 입고 출근하는 아침드라마 속 인물들이다. 왜 기상캐스터처럼 안 입고 다니냐 물어보신다. 다리에 전신 문신을 해서 치마는 못 입는다는 장난에 눈 빛으로 욕을 전송하시곤 봐 둔 옷이 있다며 시장에 가자 하신다. 약주 한잔 하신 날엔 다 접고 시골로 내려오라 신다. 억대 연봉도 아니고,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니고, 혼자 거기 있어봤자 현상유지 정도 하고 사는 것 아니냐며 뼈를 때리신다. 어릴 적 효자손보다 아프다.


"나는 만화가가 되고 싶었는데."

"되지 그랬니."

"응?"


그러게. 아무도 말린 사람 없었는데, 나는 뭐 때문에 경영학과에 지원해서 당연한 듯 회사원이 되었을까. 흥미에 재능이 더해지면 특기가 되는데 흥미만 있어서 제 풀에 취미로 끝냈나. 디제이 디오씨의 젓가락질 잘해야만 밥을 먹나요 하는 가사처럼 젓가락질 잘 못해도 밥은 잘 먹으니 하고 싶은 걸 해볼 걸 그랬나. 에휴, 아니다. 자꾸 뒤돌아 보지 말자. 밥은 잘 먹어도 몸에 좋은 반찬은 젓가락질 잘하는 애들이 다 먹을 텐데, 맨밥만 먹고 있을지도 모르잖아 하며 위안을 삼아 본다.


학교도 전공도 지역도 모두 알아서 정해놓고 이제 와서 남 탓하는 파렴치한은 되지 말아야지. 되기 싫단 회사원도 결국 스스로 선택해서 됐다. 선택은 또 다른 선택을 요구하고, 그 선택들이 이어져 지금 이 순간이 되었다. 모든 게 취향인 선택 장애 대학생이 졸업이라는 벽 앞에 급하게 한 선택일지라도, 그 선택으로 지금 이 자리에 앉아 희로애락 하고 있다.


이십 대엔 끊임없이 요구되는 선택이 귀찮아서 될 대로 돼라 했는데, 나이가 들수록 이제 선택의 여지가 없으면 어떡하지 걱정한다. 5지 선다형이 많다 싶었는데 이제 고를 것도 없이 답이 정해져 있을까 봐 불안하다. 그럴 땐 베스킨라벤스에 간다. 선택할 수 있는 아이스크림 맛이 서른 한 가지 이상 된다. 아이스크림으로 부족하다면 다음 목적지는 서브웨이다. 샌드위치를 입에 넣기 전에 선택의 연속을 맛볼 수 있다. 요즘 스타일 PPL 느낌으로 마무리.


한 입 먹어보고 선택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말자. 푸석한 토양을 선택해 땅을 치고 후회하는 농부가 있으면 그럼에도 땅을 파서 우물을 만들어 내는 농부도 있다. 같은 선택의 다른 결과를 만들어 내는 건 선택한 본인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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