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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이사 Oct 27. 2020

내가 좀 매력적이에요.

퇴근  닭똥집에 소주   하고 있는데 카톡이 왔다.  없는 고향 친구다. 늠름한   아들의 엄마이자, 바이크 라이딩을 취미로 즐기는 남편의 아내이며 인상 좋고 성품 좋으신  남녀의 외동딸인 그녀는 가끔 읽던 책의 문구나 SNS에서  좋은 글귀들을 캡처해 내게 보낸다.


그녀는 나에게 각별하다.

스무 , 여름방학 지나고 개강한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힘들었던 시기. 하필 비가 억수같이 내리던 . 사연 있어 보이고 싶었는지 내리는 비를  맞아가며  묻은 2G  플립을 허벅지에 비벼 닦고, 별명으로 저장되어 있는 그녀의 연락처를 눌렀다.

목놓아 울며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여기 와서 이러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지금은 안주거리로 전락했지만 아직도 생생한  보면 힘든 시기이긴 했나 싶다.



배터리 충전 좀 해라 이 친구야


가장 매력적인 사람은 혼자서도 안정적으로 잘 지내는 사람이라는데, 그게 바로 너야 라는 간지러운 카톡을 보내왔다. 캡처 시간이 밤 10시 06분인걸 보니 아마 술 한 잔 한 모양이다. 어쨌든 닭똥집 먹다 듣기 딱 좋은 따뜻한 말에 반 병만 마실 것을 한 병 깔끔히 비웠다. 몽롱하게 누워 말을 곱씹었다. 나는 과연 혼자서 안정적으로 잘 지내고 있는 건가. 아님 그런 척 모두를 감쪽같이 속이고 있는 건가.


도너츠 이모


6월쯤이었나. 엄마가 된 이후 첫 밤마실에 나온 배터리 충전 안 하는 저 녀석과 아이가 셋인 애국자 친구가 만나 홀 수 모임이 성사됐다. 근 5년 만이었다. 친구들을 만나는 날이면 고향에는 아직 없는 크리스피 도넛을 양 손 가득 사들고 시외버스를 탄다. 애기들이 좋아해야 할 텐데. 내가 애기 입맛이니 뭐 비슷하겠지 하며 도넛 이모를 자청한다. 고장 난 테이프처럼 반복되는 학창 시절 이야기를 깔깔 대다가 헤어질 무렵 빛의 속도로 카드를 내밀어 계산한다. 두 어머니들이 성화다. 왜 멀리서 온 니가 내냐며, 도너츠도 사 왔는데 계산까지 하냐며 제자리 널뛰기를 하더니 택시 타는 내게 얼른 삼만 원을 쥐어준다. 집에 도착하니 아이 셋 엄마는 3만 원짜리 기프티콘을 보내 놨다. 처음엔 더치페이를 한 것 같은 기분에 썩 서운했다. 내가 밥 한 끼 못 사는 사이인가 싶고, 그게 앞다퉈서 꾼 돈 갚듯 서둘러 줄 만큼 부담스러웠나 싶었다. 어린 나이에 일찌감찌 결혼해서 애기 엄마가 된 친구들에게 밥 정도는 내가 사고 싶었다. 그들은 본인 말고도 챙겨야 할 가족이 많으니까. 물론 혼자인 나랑은 댈 것도 없이 잘산다. 동네에서 가장 크고 비싼 아파트에 사는 아이 셋 엄마와, 스티커 사업을 시작해 많게는 월 800만 원의 순이익을 남기는 재능 많은 대표님. 사실 마음 한구석엔 그녀들에게 멋진 싱글의 모습을 보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더 어른이라고 생각했는데, 대학생 앞에 선 중3 느낌이다. 중학교에선 내가 짱인데 아직 갈길이 멀다.


안정적이라는 게 뭘까. 언제 오냐는 남편의 스윗한 카톡을 귀찮아하는 그녀와, 감시하듯 연락해오는 첫째 딸을 심드렁하게 받아치는 아이 셋 애국자는 분명 소속이 주는 안정감이 있다. 내가 그녀들과 같은 소속감을 얻게 된다면 안정적이라 확신할 수 있을까. 하이브리드 자전거를 즐겨 타던 사람이 MTB로 바꾼다면, 캠핑 중독자가 텐트를 버리고 편안한 시몬스 침대가 있는 호텔을 예약한다면. 그들은 새로 얻게 된 안정감에 만족스러울까. 나는 아직 하이브리드를 버틸 수 있는 튼실한 엉덩이가 있고, 둥지로 가기엔 세상에 미련이 많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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