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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이사 Oct 31. 2020

쉬어갈게요.

나는 아직도 어른이 필요하다.


가정 심리학이었나, 그 비슷한 교양수업의 교수님께서 내게 물으셨다. "가족이 뭐라고 생각해요?" 강의실 학생들이 숨을 죽이고 나를 쳐다봤다. 재미있는 대답을 하고 싶었는데 생각지 못한 질문에 머리가 하얘졌다. "그.. 아기돼지 삼 형제의 막내가 지은 벽돌집..? 나를 지켜줄 울타리..?" 긴장하면 오히려 커지는 목소리로 까랑하게 말하자, 교수님은 심오한 표정으로 나를 살펴보셨다. 안다. 교과서 적인 대답이었다. 나를 지켜줄 울타리 같은 가족은 없다. 그냥 서로 그 자리를 유지하는 것뿐.


어릴 적에는 부부싸움을 보면 마음이 힘들었다. 커다란 공룡이 머리 위에서 싸우는 것 같았다. 나는 그 밑에 자라고 있는 들꽃이었다. 두 공룡이 스텝을 잘못 밟았다간 밟혀 죽고 말았을 작고 어린 들 꽃.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두 성인남녀의 다툼일 뿐인데.


알고보니 초식공룡


칭찬을 많이 듣는 어린이 었다. 바르게 잘 자랐다고, 밝고 인성이 좋은 아이라고. 나 같은 자녀를 둔 부모님은 분명 훌륭하신 분이실 거라며. 아마 그때부터 칭찬병을 앓았다. 그런 아이가 되어야 하는구나, 되어야지 했다. 결과적으로는 긍정적인 영향이었다. 모든 걸 포기하고 싶었던 때도 헌신적으로 키워주신 두 공룡을 위해 살아야겠구나 했다. 그러다 언젠가부터 고향집에만 내려가면 구박을 받았다. 칭찬받으려 애쓰며 살았는데. 뭘 잘못한 줄도 모르겠는데 늘 누군가와 비교하고, 못마땅해하셨다. 취업부터 옷 입는 것 까지 모두. 내 나이 스물 넷이었다. 마음이 힘들었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 장학금 한 번 못 받고 대학교 다닌 것에 죄책감이 들었고, 얼른 취업하지 않으면 월세를 계속 신세 져야 할 텐데 마음이 무거웠다. 학교생활도, 인간관계도, 취업준비도 힘들 때 마음에서 기댈 가족을 놨다.


어느 날, 꿈을 꾸었다. 딱 서른 이맘쯤 인 것 같다. 간신히 잠이 들었는데 눈을 떠보니 내 방 천장이 보였다. 직감했다. 아, 또 가위에 눌렸구나.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누군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다. 중학교 교복을 입은 여자 아이다. 그 아이는 현관에 우두커니 서서 침대에 누워있는 나를 쳐다봤다. "나가. 여기 우리 집이야." 했더니 곧 울듯한 얼굴로 춥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러더니 부엌 모서리에 쭈그리고 앉아 손을 호호 불며 나를 쳐다본다. 나는 홀린 듯 손짓했다. 이리 오라고. 여기는 따뜻하다고. 곧 그 아이는 내가 누워있는 침대에 걸터앉았고, 엉엉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그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괜찮아.. 괜찮아. 잘했어. 괜찮아." 했다. 곧 잠에서 깼다. 몸이 굳은 듯 뻐근했다. 꿈이라기엔 너무 생생해서 현관을 쳐다봤다. 역시 그냥 꿈일 뿐이다. 얼굴이 축축하다. 꿈속에 중학생 아이가 그랬던 것처럼, 침대에 걸터앉아 한동안 멍하게 있었다.


사람에게는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했는데, 타인에게 온전히 마음을 주지 못하고 애쓰며 사는 것 같아 나에게 보내준 나 아니었을까. 괜찮다고, 잘하고 있다고. 과거의 내가 미래의 나에게 보낸 위로였을까. 어쨌든 그 이후 마음이 편해졌다. 말도 안되는 그 꿈 하나에 마음이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돌아오는 주말에 고향집에 내려갔다. 내가 힘들어했던 그 무렵 엄마는 아마 갱년기를 보내고 계셨다. 그저 취업이 어려울까 했던 걱정이었고, 옷 하나 제대로 못 사 입고 다니는 내가 속상하셨던 건데. 날카롭게 출력되었지만 따뜻했던 그 마음을 몰랐다. 번진 의미도 눈이 좋으면 제대로 읽을 수 있었을 텐데, 마음에 여유가 없으니 눈이 어두워졌다. 내가 제일 피해자이고 싶은 응석쟁이었다.


지금도 나에게 엄마는 가장 큰 원동력이자, 존경하는 사람이다. 신나는 클럽 노래를 들으며 글을 써도 엄마 생각엔 울컥해진다. 왜 애쓰면서 살아야 할까 싶었다. 애써서 더 나아질 수만 있다면 쓸 수 있을 때 힘껏 쓰고 싶다. 엄마에게 나는 아직도 어린이지만, 나에게 엄마는 더 이상 공룡이 아니다. 


어쩌면 소울푸드


아빠는 늘 바빴다. 여행 한 번 다니지 않고 일만 하셨다. 중학교 2학년 때인가, 일 끝내고 돌아오신 아빠 손에 빵빠레가 들려있었다. 아직도 그 모습이 눈에 선하다. 멋쩍게 슥 건네셨다. 손에 오래 쥐고 계셨는지 살짝 녹은 빵빠레를 와구와구 먹으며 뜨겁게 울었다. 제기랄, 누구든 나쁜 사람이 있어서 탓하고 싶은데 다들 너무 착하다. 착한 사람과 착한 사람이 만나면 착한 사람이 둘이어야 하는데, 덜 착한 사람이 생기면 그 사람은 결국 나쁜 사람이 되니까. 그냥 덜 착한 사람을 번갈아 가며 하는 것뿐. 아직도 빵빠레는 안 사 먹는다. 길거리에서 울기엔 너무 커버렸다.


잘 서 있는 피사의 사탑


어른인 척 하지만 나는 아직 어른이 필요하다. 기대는 게 싫다고 하지만 사실 제일 먼저 기대고 싶다. 서 있는 모양이 피사의 사탑 같다. 무너질 듯 무너지지 않고 잘 서 있다. 피사의 사탑은 '버티고' 서있는 게 아니고, '그대로 잘' 서 있는 것뿐이니 그게 무너질까 걱정하진 않는다. 혹시나, 10000에 하나. 쓰러지게 되면 그 밑에 당연한 듯 있던 그라운드가 알고 보니 가족이었으면 한다. 다시 쌓을 땐, 그 그라운드 위에 더 탄탄하게 잘 쌓을 자신 있다. 스무살 교양 수업 때 자신 없게 말했던 막내 아기돼지의 벽돌집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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