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이사 Oct 30. 2020

미워하든지 말든지

이런 변이 있나.


저 사람이 날 싫어하진 않을까 란 생각이 들면 80퍼센트 이상은 그 직감이 맞다. 그 사람은 너를 싫어한다. 혹시 이 사람은 나머지 20퍼센트가 아닐까, 그랬으면 좋겠다 긴가민가 하면 대부분 민가다. 호의 로운 마음은 헷갈리게 하는 법이 없다. 그러니 사실 확인하고자 애쓰지 말자. 감정 소비를 넘어선 낭비다. 열에 일곱은 나에게 관심이 없고 둘은 날 싫어하고 하나는 호의적이다. 둘러봤는데 한 명은 나에게 호의적이네 싶으면 잘 살고 있다.


'이유 없이 날 싫어한다면 이유를 만들어 주자'라는 문구가 유행처럼 돌았는데, 감정 낭비하지 말고 똥이라 생각하고 무시하자. 더러우니까 피해야지 하는데 간혹 무서운 똥이 나타나기도 한다. 냄새가 고약해서 무시하기 힘든 스컹크의 똥이라던지, 알파카 침 뱉듯 사방에 분사돼서 피해지지 않는 똥 같은 타입들.


스컹크의  같은 A 는 프로그램을 하는 사람이었고, 많은 직원들 중 한 명 일뿐 아웃 오브 안중이었다. 얼마나 뚝심 있는지 From 입사 To퇴사 화법이 한결같다. 평범한 대화에도 늘 비꼬듯 날을 세웠다. 척추에 깁스를 했는지 인사를 해도 받는 법이 없다. 우연이라도 마주치고 싶지 않을 정도의 불쾌감을 주는 사람이었다. 그는 나를 싫어했다. 분명 아웃 오브 안중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인지 그가 보기 싫었고, 혹시나 그의 내선 번호로 전화가 오면 받기도 전에 스트레스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스트레스 때문이야


그를 의식하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석에서 친한 직원들과 식사를 하는데 다른 팀 여사원이 먼저 입을 텄다. A 씨가 자격지심이 엄청난 것 같다고. 알고 보니 나뿐만 아니라 모든 여자 직원들에게 불쾌감을 주고 있었다. 그건 차도남도 아니고 츤데레도 아니고 무뚝뚝하고 냉소적인 것도 아니었다. '저 여자들은 나를 무시할 거야. 내가 먼저 무시해 줘야지' 였다면 자격지심이었을 테고, '이렇게 하면 저 녀석들이 나에게 관심을 갖겠지?' 였다면 본 투 비 연애 고자일 테고, '이런 하찮은 것들. 나는 프로그램하는 사람인데, 너희들은 지원이나 해주고 있지? 감히 나랑 말을 섞다니.' 였으면 히잡을 뒤집어쓰지 않은 우리 잘못이었겠지. 그러든지 말든지 무시하려 뒤돌아 서도 어디선가 스멀스멀 똥냄새가 났다. 그가 퇴사한다고 했을 때 의식을 치르듯 서류를 정리했다. 일주일에 두 번 마주칠 까 말까 한 사람인데 눈엣 가시가 빠진 듯 시원했다.


침뱉는 알파카와 피할 수 없는 아빠


알파카 침 뱉듯 싸지르는 F 씨는 소위 '광'팔아서 먹고사는 광팔이다. 타 팀에서 업무량 때문에 못 쳐낸다는 것까지 싹 다 긁어다가 이제 좀 쉬겠다는 팀원들 업무에 꾸역꾸역 쑤셔 넣고 생색은 혼자 내는 광팔이. 정작 본인은 "야근은 일이 많아서 하는 게 아니다. 일을 못해서 하는 거다" 라며 종이도 벨 것 같은 칼퇴근을 즐겨한다. 콧방귀가 절로 난다. 다크서클이 얼굴을 점령한 팀원들이 컵라면 먹어가며 만들어낸 성과는 본인의 공으로 돌린다. 파렴치한의 학대다.


회식자리에서 술이 얼큰해진 Fuc.. 아니, F 씨가 하소연을 했다. 왜 다들 자기를 미워하느냐고. 도대체 모르겠다는 저팔계 주제가 같은 소리를 했다. 팀원들에게 피하고 싶지만 피할 수 없는 똥 같은 존재라는 걸 감수하고 광을 파는 줄 알았다. 미움받는 것에 대한 설움과 두려움이 있는 사람이라고는 볼 수 없는 행동들을 하고도 미움받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 어딘지 짠했다. 나무는 이제 늙을 일만 남았는데 열매는 덜 여문 F 씨에게 애도를 표했다.


무시할 수 없는 스컹크 똥 같은 A 씨와 피할 수 없는 알파카 침 같은 F 씨. 만약 유아처럼 잘못인 줄 모르고 저지르는 행동들에 미움을 사는 것이라면, 상처 받지 않으려 처음부터 상대방을 미워하는 감정부터 시작하는 거라면. 그걸 바로잡아 줄 사람이 없고, 바로잡아줌에 귀 귀울이고 변화하려는 노력이 이미 퇴화되었으면. 그들은 죽을 때까지 누군가를 미워하고, 미움받으며 살아갈까. 그렇게 생각하면 참 불쌍한 중생들이구나 싶다. 나보다 3년을 더 다닌 과장님은 무례한 F 씨를 공기처럼 여긴다. 있는 듯 없는 듯. "과장님, 화 안 나세요?" 하고 물어보면 물티슈로 책상을 벅벅 문지르며 심드렁하게 말씀하신다.


"불쌍하잖아. 저 사람 못 배워서 그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