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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이사 Oct 31. 2020

32.8세

뭐든 되겠지, 잘.


2020년의 10월도 곧 날 떠나간다. 붙잡고도 싶지만 결국엔 안될 걸 알기에 라는 노을의 노래 가사는 남녀 간의 이별만은 아니었나 보다. 작년 이맘 때는 뭘 했나 클라우드를 누르려다가 그만둔다. 좋은 기억들을 들추려 돌아봤는데 메두사가 있으면 어쩌지. 돌이 될 텐데. 처음 00년생 신규 입사자를 받았을 때 생년월일을 잘못 적어낸 줄 알았다. 00년도에 사람이 태어난 것도 놀라운데, 돈을 벌겠다고 입사를 하다니.


무슨 돌을 원혀


30대로 2년 하고도 10개월째 살고 있다. 찬바람 불기 시작하면 곧 한 살 먹는다며 한탄의 곡소리가 들려온다. 해피 뉴 이어하고 천진하게 좋아하는 건 스물 다섯 아래까지인 것 같다. 연말이 오면 친구들과 술 한잔 하며 정산하듯 한해를 돌이켜 본다. 서로 뭐를 이뤘는지, 큰 사건은 뭐가 있었는지 이야기하는데 혹시 나는 아무것도 이룬 게 없으면 어쩌지 조바심이 난다. 청약이 당첨돼서 집을 준비하는 친구, 일을 하며 공인중개사를 따겠노라 준비하는 친구, 연봉을 커다랗게 불려 곧 이직을 앞둔 친구, 애기 엄마가 된 친구, 곧 자기 명의의 집으로 이사를 가는 친구.


음, 나는. 아직 이렇다 할 성과는 없지만 사업자를 냈고, 브런치 작가가 되었으며 12월에 조금 넓은 전셋집으로 이사를 간다. 보태자면 바닥에서 두 발을 떼고 튜브 없이 수영을 해봤다. 날생선을 먹었다. 바로 뱉었지만. 이런 작은 도전도 인정해 주는 거면 슬쩍 넣어서 얘기해 볼까 한다. 다음 달에 만나기로 했는데, 사업자 낸 것과 글 쓰는 건 나만 알고 싶어서 아직 얘기를 안 했다. 앞으로도 들키지 않는 이상은 비밀로 할 것 같다.


다리 없는 생물을 안 좋아한다. 친구들과 횟집에 가면 밑반찬으로 나오는 옥수수콘이 최고 맛있다. 나에게 생선회란 익히지 않은 식재료다. 그거 외에도 먹을게 수만가지이니 입에 비리면 쿨하게 포기한다. 육사시미는 잘 먹는다. 생선회나 육회나 날 것인 건 매한가진데 모순 아니냐고 한다. 나에게는 같지 않다.


또 모를 일


고수의 나라 베트남 협력사에서 온 직원이 깻잎을 먹지 못한다. 향신료의 나라 인도 에이전트 친구는 미나리를 못 먹는다. 난 미나리를 깻잎에 싸서 먹지만, 고수는 손톱만큼도 먹지 못한다. 태국 여행에서 처음으로 고수를 경험했던 순간, 읍!! 아임쏘뤼!!! 하며 화장지에 씹던 걸 뱉은 기억이 있다. 다행히도 현지인 여러분들은 깔깔 웃으며 나를 재미있어하셨다. 된장은 생으로 퍼먹어도 낫또는 못 먹는 누군가처럼. 나에겐 향기로운 것이 너에겐 고약할 수 있다. 먹는 것도 각자의 기준이 있으니 왓에버 하고 말지만, 날생선은 계속 도전해 보고 싶다. 나중에 입맛이 변해 골룸처럼 물고기를 산채 뜯어먹을지도 모를 일이다.


여행은 고행 (feat. 그만 눌러요)


물을 무서워한다. 어릴 적 물에 빠졌던 경험 때문인 것 같다. 한 번은 수영장에서, 한 번은 강에서. 스무 살이 되어서 극복해 보고자 수영장을 다녔다. 처음으로 잠수에 성공했다. 두 달 결제해 놓고 보름 만에 그만뒀다. 귀에 물이 들어가는 공포를 참을 수 없었고, 그 걸 인식하고 나면 숨쉬기가 힘들어졌다. 타이타닉의 후반부는 내게 고통이다. 남들이 물에 잠겨있는 것을 보는 것도 숨이 막혀온다. 진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같이 수강하는 여러분들이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니 더 이상 나갈 수가 없었다. 자발적으로 머리를 물속에 넣어봤다는 것만 해도 큰 발전이라 위로했다. 리조트에 놀러 가거나 계곡에 갈 때마다 잠수하는 연습을 한다. 작년 겨울엔 무려 스쿠버다이빙을 했다. 도와주시는 분들이 엄청 놀렸다. 들어가기 전에 여기 죠스 있는 거 아니냐 물어봐서 그랬을 수도 있다. 사진상, 혹은 체감상 한창을 내려간 거 같지만 머리 바로 위가 수면이다. 꼭 다시 돌아올게 했지만, 다시 가도 다이빙은 안 할 것 같다.


올해 여름엔 물안경을 쓰고 나름 수영 비슷한 걸 했다. 죽는 것도 아닌데 뭘, 괜찮아. 괜찮은 거라고 수도 없이 나에게 이야기하며 머리를 밀어 넣는다. 그러다 문득, 어? 싶었다. 눈을 뜨기 위해 쓴 물안경 안에서도 두려움에 눈을 감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저 스쿠버 다이빙할 때도 앞이 캄캄했다. 다시 한번 물속에 들어가 수영장 벽을 잡고 눈을 떴다. 눈을 부릅뜨고 앞을 보니 떠다니는 부유물들도 보이고 바둥대는 발도 보이고, 눈에 익숙한 것들이 보이자 두려움이 점차 사라졌다.


아직 올해가 2개월이나 남았다. 해야 할 것과 하고 싶은 것, 하기 싫어서 미뤄뒀던 일들을 정리하며 차근히 마무리할 수 있는 준비를 해야겠다. 서른셋에는 한 숨 대신 들 숨 날 숨 뱉는 날이 많아지길 기대해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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