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마시고 실컷 주접 떨기
9월 제주: 많이 마시고 실컷 주접 떨기
우리의 얼굴마다 특유의 표정이 있는 것처럼 모두의 우는 얼굴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떤 얼굴은 당장 넘칠듯한 마음을 꾹꾹 삼켜내고 있는가 하면, 확실한 슬픔을 시원하게 뿜어내는 얼굴도 있다. 고요하게 머금는 슬픔도 있거니와 전혀 슬퍼 보이지 않는 얼굴에서 눈물이 줄줄줄줄줄 나기도 한다. 드러나는 마음이라고는 그저 어떤 액체뿐인 것 같은. 어쩌다 보니 나는 다양한 우는 얼굴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이렇게 많은 표정을 유심히 만난 시기가 있던가?
어떤 일터에서 만난 어떤 친구와는 운이 좋게도 일손을 넘어 마음마저 잘 맞아 다양한 범위의 삶을 공유할 수 있다. 각자가 꽤 까다롭고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버린 우리는 기대 없이 편안해지고 기약 없이 만족스럽다. 우리는 많이 마시며 많이 떠들 수 있다. 서로의 취향을 어느 정도 이해하는 두 인간이 각자 마음을 놓을 뿐인데 함께인 것만으로 감각에 시너지가 만들어진다. 마주 본 와중에 마음이 동기화가 되는 행복을 종종 느낀다. 그런 시간들로 삶에 윤기를 내는 기쁨이 있다. 우리는 실컷 취해서 명료한 구석이 없는 이야기로 묵은 마음을 해소한다.
주종에 따라 취하는 과정과 분위기, 결과까지 모든 것이 달라진다. 어제는 협재 바다를 앞에 두고 한라산 오리지널을 마시면서 날 밝은 때부터 깜깜한 밤이 되도록 내내 시끄러웠다. 그리고 오늘은 추천받은 화이트 와인에 이병률 시인의 언어를 빌려다 주접을 떨고 있다. 이병률 이 사람은 대체 어떤 삶을 살길래 이렇게… 기어이 강아솔을, 임헌일과 전진희를 불러다 감정의 밀도를 최대치로 높인다. 어떤 날은 세상 무감하다 어떤 날은 이렇게까지 주접인가 놀라울 내 밑도 끝도 없는 널뛰기에 한치의 모자람과 넘침이 없이 밸런스를 맞추는 인간이 세상에 존재한다니… 네가 남자였더라면 난 이미 결혼을 했을지도 몰라.
밤새 이것저것을 함께 보고 듣고 읽으면서 웃다가 울다가 흥을 내다 화를 내다 가지가지를 한다. 너무 늪으로 빠져버리지 않고 돌아오는 적당한 온도가 있다. 딱히 나고 자란 공통점도 없이 이렇게 다양한 주제와 감정을 공유할 수 있다니 언제나 놀랍고 감사한 일이다. 아침이면 기억에 없는 술병을 경악스럽게 치우고 서로의 꼴값을 놀려대면서 새로운 꼴을 정비한다. 난폭한 밤이 지나가면 무언가 비워져 가벼운 마음이 된다. 일주일 안 되는 시간 쉬엄쉬엄 천 장쯤은 가히 넘는 사진을 찍었다. 서로가 인정할 수 없는 서로의 예쁨을 강요하며 못 잊을 장면을 주고받고, 야금야금 꺼내먹으며 영영 행복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