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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제 Oct 24. 2021

선생님과 나

그 날의 외로움 그 날의 기쁨

울지 말기, 씩씩하게 지내기,


몇 가지 오늘 선생님이 눈을 보고 이야기 하신 말들. 너무 유치한 말들인데 듣는 순간 맘이 쓰려서 눈물을 꾹 참았다. 선생님이랑은 과거보다 미래를 많이 이야기한다. 그보다는 현재를 더 많이 이야기한다. 깊고 어두운 것들보다는 따듯하고 웃음나는 것들에 대해 더 많이. 내가 원래 좀 비관적인 성향이고 이야기하다보면 엄청 잘 쳐지는 사람인데도 그렇게 되는 건 진짜 대단하다. 그런 사람 태어나서 처음 봤으니까.


짤쯔감머굿에서 지내던 하루 이야기를 했다. 그 날의 외로움 그 날의 기쁨


그리고 오늘의 행복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매번 만남의 끝에 선생님은 언제나 행복한 시간 함께해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하신다. 오늘은 내가 사과를 자르겠다고 했다가 버벅거리니까 또 직접 깎아주셨다. 칼이 이상하네 했더니 맞아, 칼이 이상하네? 해주셨다.


선생님이 사과를 깎는 모습을 보고 있다가 흰 머리 하나를 발견했다. 선생님 흰 머리 나서 슬퍼요, 했더니 그래도 염색 안 하고 지내려구, 있는 그대로 나이드는 게 좋아요. 하고 투박하게 사과를 깎으셨다. 백발이 돼두요? 물으니 글쎄 우리쪽이 백발이 되던가? 갸우뚱 하시더니 백발이 되더라도, 하셨다. 있는 그대로가 좋으니까.


이젠 선생님이 슬플 때 나를 부를 수도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선생님 곁에서 지내면 내가 망가지진 않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나쁜 마음을 먹었대도 선생님 눈을 마주보고 몇 번 이야기하면 뭐든 괜찮아질것만 같다. 흰머리가 더 자라서 슬프다고 이야기할 수 있고, 그럼 또, 나는 이대로 좋아요. 하시고. 그렇게 살면 괜찮을 것만 같았다. 얼마간은 울 일도 없을 것만 같았다.



2013. 9. 22.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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