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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제 Jun 17. 2021

크리스탈, still struggling.

oh~~~~ 크리스탈~~ 와디쥬 세이 나띵~~~ huh~?


'영어 하는 걸 실제로 들어본적은 없지만 어쩐지 잘 할 것 같은 이미지'를 오랜동안 맡아오고 있는 부담을 덜기 위해, 한국외대에 온 주말을 바쳐오고 있는지 어느덧 3개월. 나, a.k.a. 크리스탈 start with K는 왜 영어를 배우는가.


오늘도 여느때처럼 하루종일 열띤 회화 수업을 마친 후, 한남동쪽에 볼 일이 있어 먼 동네에 간 김에 빵이라도 사먹자 하고 카카오맵을 켜 근처 맛집을 검색했다. 여러개의 장소 표시 중 <타르틴 베이커리 서울> 이라는 빵집 이름이 왠지 뭔가 있어보였다. 마침 서울 한복판이 열대우림이라도 된 마냥 갑작스런 스콜성 비가 쏟아붓고 있었으므로, 나도 모르게 그 곳으로 이끌리듯 걸어들어갔다.


정확히 어떤 외국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뭔가 외국식으로 된 문을 밀고 들어가니, 한 순간 바깥과는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진 듯 한 분위기. 분위기도 메뉴도 내놓은 빵도 모두 이국적이었다. 단팥빵 우유식빵 말고 바게트샌드위치 호밀빵이 가득한데다 손님 태반이 외국인이었고, 한국인의 외양을 한 사람들도 어째선지 모두 영어로 대화하고 있었다.


미국식 이름도 지어두었으나 정작 미국에는 한번 가본 적 없고 서울의 지리조차 잘 모르는 I, 크리스탈로서는 무척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한남동은 원래 이런가? 나도 그럼... 지금부터 영어로 말해야하는건가? 하며 우물쭈물하다가 우유식빵이 아니라 바게트로 만든 샌드위치를 하나 시키고, 어메리카노, 핫, 머그 사이즈도 하나 시키고... (한국말로 시켰다) 외국 카페에 여행온 척 혼자 사색하기 좋을법한 창가의 바 자리에 가서 앉았다.


배낭을 의자 아래에 내려 놓고 한숨 돌리니 비어있던 내 옆자리에 한 외국인이 커피를 가지고 다가와 자신도 나처럼 배낭을 자리 아래 놓으며 들릴듯말듯 내게 하이, 라고 하는 게 아닌가. 네? 저요? 순간 내 뒤에 누가 있나 뒤를 돌아보았지만 그가 건넨 hi의 주인공은 내가 맞는 것 같았다. 갑작스런 하이 공격에 당황한 나는 여기가 내가 사는 한국이란 것도 잊고 갑자기 다른 델 보는 척하며 인사를 못 들은 척 했다. 왜? 나도 모르지! 그냥 그렇게 학습돼 왔다고!


uhm, hmm, 런던 여행 온 느낌~ 이라며 넓게 뚫린 창가에 앉아 외국식 메뉴를 음미하며 조금 흥을 내고 싶었는데, 순식간에 갑자기 디스이즈리얼 외국 여행 중 어느 카페에 들어온 상황속에 놓여버린 크리스탈(K로 시작하는)의 머리는 숨가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 이 분위기는... 자연스런 스몰톡의 시작? ok, 진짜 외국느낌이란 게 conversation A, B 파트 나눠서 한 마디씩 따라하는 게 아니라 이렇게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는거잖어. 백날 회화 수업을 다니면 뭐해, 진짜 외국인들은 나에게 다음 차례에 준비된 문장을 따라 말하지 않는다구.


문득 외국 여행을 다니던 중 자연스레 마주친 사람들이 나를 보고는 oh, honey, I love your skirt. 라거나 내가 읽고 있는 책을 보며 I have read it too, but didn't really like that because~ 하며 갑자기 자기 주장을 막 펼치고는 um-hum, 하고 또 어느 순간 저 멀리 사라져가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도 순간 다음 중 '올바른 문장을 고르시오' 하면서 oh, I, uh, Thanks... 하고 Oh, you.. you read it... 어.. oh,.. 하고 말았었지.


그래 좋아, 이제 뭐라고 하면 좋을까. 레이니 데이. 이즌잇? 적절한가? 오, 하이, 웨어 아유 프롬? 무례한가? 잘 들지 않는 칼을 들고 바게트를 미친듯이 썰며 갑자기 머릿속이 엄청나게 복잡해졌다. 썰리지도 않는 바게트를 힘겹게 자르고 있는 상황을 웃으면서 오, 아임 스트러글링. 하고 씩 웃으면.. 자연스러워 보이려나? 아 정말 어떡하냐고? 아까 수업을 들었던 Jamie 티처가 내 머릿속에서 oh~~~~ 크리스탈~~ 와디쥬 세이 나띵~~~ huh~? 하며 눈썹을 들었다 내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뭐라고 말을 건네면 좋을지 입을 우물거리면서 옆자리 외국인을 살짝 쳐다봤다가 눈이 마주치면 잽싸게 아니 선생님 말구 저 뒤에~ 아주 멀리 흥미로운 게 있는데 전 그냥 그걸 보는 것~인 척을 했다. 문득 내 전공이 영문학이란 사실도 떠올랐다. 무려 예일대학까지 졸업해서 본인을 자꾸 암 예일맨~ 이라고 불러 자꾸 내 눈썹을 들었다 내리게 했던 지도교수님이 지금의 나를 보면 얼마나 혀를 차실 지도 생각했다... go for it 크리스탈! 속으로 온갖 선생님들의 잔소리를 들으며 이제는 거의 사색이 된 채로 썰리지도 않는 빵과 사투를 벌인지도 5분 째...


인사를 뒤늦게 들었단 듯이 uh, hi, 라고 가볍게 대답할만한 타이밍도 한참 지나버린 시각, 결론적으로 호의로 건넨 가벼운 인사조차 무시당한 셈인 외국인 선생님이 갑자기 부시럭대더니 자신의 남은 커피를 휙 털어넣더니 우산을 챙겨 밖으로 나가려는 게 아닌가. oh no~~! hey 저 아직 대답 못했다구요~!! 이 모든 게 처음부터 끝까지 머릿속에서만의 소란이었지만 그래도 왠지 좀, 허무한 기분이 들었다.


꽹과리를 치며 호들갑을 떨던 생각을 잠시 멈춘 채, 그가 카페 문을 열고, 아직 비가 옅게 내리는 밖으로 나가 우산을 펴고, 빗속으로 걸어가나가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봤다. 그러다 뭐, 한 번, 하는 기분으로 쑥스럽지만 살짝 손을 들고 입모양으로 바이- 하고 아까 건넸어야 할 답 인사를 뒤늦게 건넸다. 그러자 저 멀리로 걸어가기 전 잠시 창가를 돌아본 그가 나의 소심한 인사를 발견하고 갑작스레 아주 환하게 웃었다. 그리곤 머리 위로 열렬히 손을 흔들며 바이! 하는 입모양 인사를 내게 돌려주었다. 다시, 여전히 얼굴에 웃음을 띠운 채 성큼성큼 사라져 가는 그의 모습에 어쩐지 허탈하고, 어쩐지 다정해진 크리스탈, still strugg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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