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닉네임도 '김김' 아닌 '킴킴'
나의 서울 여행은 킴킴을 만나러 가는 일로부터 시작되었다. 킴킴, 본명 김OO, 부산 출생, 그러나 코로나 직전까지는 헝가리에 살았고 오랫동안 서울에서 공부하며 일하는. 이라는 이력은 전혀 모른 채 그를 만났다. 킴킴은 몇 해 전부터 같은 커뮤니티에서 눈에 띄는 사람이었다. 자기소개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조용히 있었던 나와는 달리 그는 어마어마한 에너지와 추진력을 가지고 이런 저런 일을 이끌고 이야기하는 사람이었다. 몇 번쯤은 그와 같은 글쓰기 모임에서 자신만 아는 진실이 담긴 글을 나누기도 했고, 그가 이끄는 경험공유회라든지 회고 모임에도 참여한 적이 있었다. 때로는 구글문서로, 때로는 줌으로, 때로는 블로그로 만난 킴킴은 만날 때마다 조금씩 다른 사람이었다. 새로운 일을 앞서 도모하고 결과를 나누려는 킴킴은 내가 한 번쯤 직장에서 상사로 만나보고 싶은 사람이었고, 글로써 만난 킴킴은 가끔 얼굴을 보는 친구로 오래 알고 지내고 싶은 사람이었다.
킴킴은 내게 비현실적인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나의 기준에서 보면 저게 현실에서 가능하다는 말인가 싶을 정도로 동시에 많은 일을 해냈고, 심지어 잘 해냈고, 혼자만 잘 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함께 잘 하고자 했다. 언젠가 킴킴이 운영한 소모임에 일회성으로 참여했을 때, 모임을 마무리할 무렵 킴킴은 "주제님, 다음에도 또 와도 되는 거 아시죠? 놓칠 수 없어요!" 하고 이야기해주었다. 나는 그 말이 반갑고 좋아서 계속 계속 생각했다. 그런 그를 나는 막연히 나보다 한 대여섯 살은 많겠거니 생각했다. 어쩌면 마흔이 넘었을 수도 있어. 나는 이제까지 직장에 들어와 일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는데 그 정도의 인생 이력이나 포용력이 있으려면 아무렴 나보다야 나이가 많겠지. 나는 존경스러운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나이를 나보다 훨씬 많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아니면 배경이 좋을 거라고 생각하거나. 그렇지 않다면 나의 나-됨은 결국 내 노력의 문제일까 봐.
그 이전에 킴킴과 무슨 이야길 하다가 서울에 간다고 이야길 했고, 아무래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하는 시대의 얼굴 전시를 볼까 한다고 했더니 헉 시대의 얼굴전? 같이 볼까요? 했다. 이번에는 내가 킴킴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아무래도 헤르미온느의 시간을 돌리는 시계를 가지고 있는 게 분명한,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 킴킴이 가능한 시간에 만나기로 했다. 그게 첫 날이었고, 여정의 첫 날을 킴킴의 에너지를 나눠 받고 시작할 수 있다니 기뻤다. 전시회장 입구에서 만나기로 했던 시간이 오후 4시경이었는데, "지금 가고 있어요"라던 킴킴이 아직도 밥을 먹지 못했다고, 앞에서 김밥으로 간단히 요기를 하고 들어오겠다고 했다. 나는 전시를 쭉 한 번 보고, 뒤로 다시 돌아가서 보고, 가까이서도 보고, 멀리서도 보고 하느라 늘 남들보다 시간이 오래 걸려서, 이번 전시도 76작품 정도라는데 넉넉히 1시간 30분은 잡고 봐야하지 않을까요? 물었었고 킴킴은 내게 "주제쓰 거기서 그림 그리게요?" 했었다. 나는 문득 유럽 미술관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그림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 각자의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렸던 풍경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났다. 그 풍경 참 평화로웠는데.
어차피 전시를 관람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이니까 내가 먼저 들어가서 보고 있겠다고 했다. 아직 한 번도 실제로 본 적 없는 킴킴인데 과연 알아볼 수 있을까 기대를 하면서, 먼저 들어가 작품들을 보았다. 누가 킴킴일까? 킴킴님은 들어왔을까? 생각하며 내 주위의 관람객들도 한 번씩 스쳐보면서. 한 30분이나 지났을까, 멋진 외국식 검은 원피스를 입고 머리는 한국적으로 야무지게 쪽을 지어 쓸어 올려 묶은 여자 분이 내 팔을 살짝 잡고 "주제쓰!" 했다. 5개 국어인지 6개 국어를 하는, 그래서 한국말도 언뜻언뜻 미국인의 템포로 하는 한국인인데 외국인 같은, 그래서 닉네임도 '김김' 아닌 '킴킴'이 실물로 내 눈 앞에 나타났다. 나는 "헉! 킴킴! 저는 아까 언뜻 보고 킴킴인 줄 못 알아봤어요" 하고 작게 반가워했다. "식사했어요?" "네, 지금 하고 왔어요" 소곤거리다 자연스럽게 걸으며 따로, 또 같이 작품을 감상했다. 미술관 같은 데서 처음 만나는 것도 괜찮은 시작이네 생각했다. 낯을 가려 다짜고짜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시작하라고 하면 말이 잘 안 나오는 나로서는.
이번에 킴킴과 함께 봤던 전시로 말하자면 조금 기대치에는 미치지 못했다. 왜냐하면 예전에 런던에 짧게 여행을 하던 때 들렀던 '내셔널 포트레이트 갤러리'에 있었던 소장품들이 거의 그대로 옮겨온 거라서. 새 작품들은 별로 많지 않았고 아무래도 미술 전시는 전시를 하는 공간도 중요한데, 전 세계의 방문자들을 상대로 초상화 작품들을 상시 전시하고 있는 런던의 갤러리 공간과 임시의 기간 동안 만들어둔 전시관과는 차이도 컸고. 전시는 다른 콘텐츠와는 달라 한 번 본 작품이라 하더라도 크게 스포일 당했단 느낌은 들지 않지만, 그래도 임팩트가 떨어지는 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킴킴과의 첫 만남이 전시회장 안, 아주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서로를 찾으며 시작된 일은 아주 오래 기억에 남을 신선한 경험이었다. 킴킴이 어떤 작품 앞에서 좀 더 오래 머물고, 눈을 크게 뜨고 "흐음" 하는지를 지켜보는 일도 재미있었다. 자신이 내보이고 싶은 만큼만 써내 보여주는 글이나 제한된 화면 속 작은 얼굴만으로는 알 수 없는 한 사람의 살아있는 총체를 나의 실체와 오감을 통해 만나는 일은 역시 아주 다른 차원의 일이었다.
서로 충분히 전시를 다 관람했는지를 살피는 눈짓을 한 후 우리는 밖으로 나가 국립중앙박물관 2층에 있는 카페로 향했다. 킴킴은 사물함에 넣어둔 노트북을 꺼내와 여러 메시지를 확인하고, 잠시 회사 일을 확인했다. 나는 그런 킴킴을 보면서 잠시 낯을 익히는 시간을 가졌다. 여름날 오후의 빛이 킴킴이 앉은 방향으로 내리쬐고 있었다. "킴킴, 국중박이랑 너무 잘 어울려요, 지금 웃는 모습이 너무 좋아요" 하고 나는 킴킴에게 이야기했다. 그는 내게 서울에 얼마동안 있느냐고 묻고, 며칠 안 되는 시간을 쪼개 자신을 만난 것이냐며 "그 중 하루를 저를 주신 거예요? 와, 너무 좋다"고 했다. 사실은 회사도 다니고, 대학원도 다니고, 이것저것 엄청 하는 일이 많은 킴킴이 시간을 내줘 내가 더 고마운데도 그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그러고는 내게 작고 도톰한 노트를 한 권 내밀었다. "주제쓰는 뭘 쓰는 걸 좋아하잖아요, 생각나서 가져왔어요" 하고. 나는 이 모든 태도에서 킴킴이 나보다 언니일 것이라고(언니여야만 한다고?) 생각하며 "킴킴 혹시 나이 물어봐도 돼요? 혹시... 30대는 맞죠?" 했다. 그러자 킴킴은 화들짝 놀라며 "네!!! 저 30대죠 당연히!" 하고 나이를 말해주었는데 충격적이게도 그는 나와 동갑이었다.
그 말에 이번에는 내가 화들짝 놀랐다. 외모를 가지고 동안이니 노안이니 말하는 게 아니라, 같은 시간을 살아왔는데 이렇게 삶의 이력이 다를 수 있다는 데에 놀랐단 말이다. 내게 킴킴은 너무 에너제틱했고, 너무 인스파이어링했고(킴킴은 왠지 영어식으로 표현을 하는 게 어울린다), 너무 애드마이러블한... 너무, 너무한 사람인데 말이다. 반대로 킴킴은 나를 보고 명상하는 사람, 히피, 자연인 같다고 말했다. 참 색다른 조합의 동갑친구. 부산 장녀인 킴킴과 강릉 장녀인 나는 서울에서 처음 만나 서로를 여전히 닉네임으로 부르며, 서로가 가진 많은 차이점과 공통점을 맞춰 나갔다. 우리는 커피를 다 마시고, 국립중앙박물관이 문을 닫을 무렵 밖으로 나와 한여름 저녁 바람이 신선한 한남동을 산책했다. 이런 곳이 생겼네, 저런 곳도 생겼네, 하고 나보다 오래 서울에 살고 있는 킴킴이 이끄는 대로 걸으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오래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초여름의 햇빛과 바람을 가득 담은 하루가 다 저물 무렵, 어느 영국인의 초상화 앞에서 처음 만난 뒤 7시간이 지난 후에야 너무, 너무 멋진 그와 빠이빠이! 하고 인사했다. 며칠 간 '우리 집'이 된 장소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 신선한 바람 한 줄기가 내 가슴을 스치고 지났다.
2021. 7. 23.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