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날에는 생일 초를 사려고 나이를 괜히 가늠해보게 되잖아
네가 나보다 몇 살 더 많으니까, 내가 올해로 몇 살이니까, 그러면 너는 몇 살이니까, 하고
네 생일을 축하해주려고 나이를 세어보다 갑자기 궁금한 게 많아졌어
너의 7살은 어땠을까 미운 짓 많이 했을까 귀여움 많이 받았을까
처음으로 슬펐을 땐 언제였을까 처음으로 엉엉 울었을 때는 무엇 때문이었을까
누구에게 처음으로 두근거렸을까 누군가와 헤어지고 어떻게 털어냈을까 그런 것들이
살면서 친구가 항상 있었는지 혼자인 것 같아서 쓸쓸했던 날들은 어떻게 지났는지
언제 세상은 생각했던 그런 좋은 게 아닌 걸 알았는지 그런 거 있잖아
나는 내 나이를 맞을 때까지 돌아보면 낙담했던 날들이 더 많이 떠올라
고시원에서 살 때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지냈을 때
도저히 이대론 못 살겠는데 그럼 어떻게 해야될 지 도무지 모르겠던 날들이
돈이 아주 없었던 날 그래서 다같이 영화를 보러가자고 하는데 돈을 낼 수가 없어서 귀가 아주 빨개졌던 날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하고 집에 오는 버스가 너무 사람들로 꽉 끼어서 왠지 모르게 눈물이 막 났던 날들
얼마 지나면 너를 만나게 된다는 걸 그때 내가 알았다면 나는 덜 슬펐을 것 같아
울더라도 조금 울고 금방 씩씩할 수 있었을 것 같거든
어떻게 하면 너의 마음에 드는 생일날을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해보다가
축하해줄 수 없었던 너의 지나온 많은 날들을 떠올려 봤어
내가 널 모르던 동안에는 네가 좋아하는 누군가가 네 곁에 있어줘서 축하해줬다면 좋았겠다
네가 슬펐던 날들마다 내가 너를 안아줄 수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좀 감동적인 책이나 영화 같은 거 보고나서 있잖아 왠지 새로운 마음으로 너를 마주하고 싶을 때
너와 만나기로 하기 전에 나는 그 영화 속에서처럼 너를 꼭 안아주고 싶어서 만반의 준비를 했다가
막상 네가 안녕 하고 활짝 웃으면 갑자기 그게 왠지 밉고
내가 너에게 잘해주고 하는 게 쑥스러운 생각이 들기도 해서
어서 와, 라고 하고 꼭 안아줘야지 마음을 먹었다가도 정작 왜 이렇게 늦었어? 하는 말을 하곤 해
나도 서른이 넘어서 대체 왜 그러는 지는 모르겠는데
아직도 저기 멀리서 나를 보고 활짝 웃는 너를 보면 왠지 심술 궂게 굴고 싶어져 왜일까?
전에 같이 치킨 시켜 먹었을 때
내가 자꾸 닭다리를 다 양보하니까 네가 이 맛있는 걸 왜 안 먹느냐고 했잖아
계속 양보만 하느라 못 먹어봐서 그렇다고 먹어보면 사실 맛있을거라고
그래서 한 입 먹었더니 정말 닭다리가 맛있었잖아 제일 맛있었어 쫀득하구 촉촉하구
나는 다른 사람들이 다 닭다리를 좋아하니까 욕심부리는 것처럼 보이기 싫어서 난 닭다리가 싫다고 한건데
네가 그랬잖아 앞으로는 어딜 가든 내가 닭다리 먹으라고
자꾸 닭다리라고 말하니까 뭔가 웃긴데 어쨌든 다른 때 사람들이랑 치킨 먹을 일이 생기면
내가 먼저 닭다리를 양보하지는 않아
또 너를 만나고 누가 내 마음을 조금 할퀴려 하면
잠깐 아프기는 하지만 금방 회복이 되곤 하지 어차피 나의 마음은 네가 알아줄테니까
다른 사람이 다 나를 알아줄 필요는 없지 이런 생각이지
너도 나와 같으면 좋을텐데 그 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있어서 네게 힘이 생길 수 있다면
그런 한편으로 네가 종종 슬프기도 했으면 좋겠기도 해 그 때마다 너한테는 내가 있지 하고 힘을 낼 수 있게 말이지
너를 아주 어릴 때부터 만났더라면
네 마음이 힘들때마다 내가 힘이 됐을 텐데 웃게 할 수는 없더라도 같이 울기라도 했을텐데 하지만
그렇다고 너를 만나고서도 잘해주기만 한 게 아니라
생각해보면 너에게 너무 잘못한 게 많은 것 같아
거짓말도 하고 마음도 아프게 한 때가 많은데 내 마음만 아프게 했다고 해서 미안해
그런데 너는 그때마다 나는 잘못한 게 없다고 말해줘서 너무 슬펐어
그럴때마다 너무 눈물이 나는데 왠지 더 민망해져서 화를 내게 돼
허리가 아프다고 하면 사무실에 있는 좋은 의자라도 몰래 갖다줄까 말해줘서 고마워
아팠을 때 멀리 있는 병원까지 데려가서 병원 옆 침대에서 같이 지내줘서 고마워
내가 드디어 빚 다 갚고 돈 모으게 됐다고 할 때 자기 일처럼 뿌듯해해줘서 고마워 이건 좀 웃겼어
내가 전 직장에서 어려웠을 때 나를 도와달라고 여기저기 이야기해줬던 거 고마워
나와 친하다고 하면서도 정작 어려울 때 창피를 무릅쓰고 나를 도와달라고 애써준 사람은 너밖에 없었어
내가 슬픈 날에는 꼭 같이 저녁 먹어줘서 고마워
네가 태어나고 아주 오랜 시간 알지 못한 채 지냈지만
지금부터라도 축하해줄 수 있어서 고마워
내게 돌아올 행운이 있다면 모두 너의 몫으로 선물해주고 싶어
생일 축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