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서로 너무 어렸고, 바닥이었고, 누추함을 감출 줄도 몰랐고
영아, 살면서 가슴 아픈 일들이 생기면 나도 모르게 네 이름을 떠올린다. 네게 연락할 것도 아니고 네 마지막 얼굴을 봤던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 나는 지금까지도.
영아, 너는 내 아픔 중의 아픔이고 내게는 절대로 잊히지 않을 이름이야. 너는 모를 지도 모르겠지만.
너를 만났을 땐 내가 아직 한 인간으로서 너무나도 미성숙한 자아였을 때였어. 너도 지금쯤이면 알고 있겠지. 나를 다 잊었을지도 모르지만. 얼마전 휴대폰을 바꿀 때가 돼 연락처 백업을 하려다가 대학 때 저장해놨던 연락처들을 찾았어. 순간 네 번호도 남아있을까 궁금했어. 하지만 바로 네 이름을 검색하진 않았지. 그냥 조금 긴장 됐던 것 같아. 지금은 바뀌었을지도 모를 어쨌거나 한 때는 네 전화번호였을 몇 자리 숫자가 남아 있을까. 짧다면 짧은 시간을 살아오는 동안에 나는 왜 그렇게 지워내고 싶었던 시간만 가득했던지 내가 생각했을 때 한 시기가 지났다고 생각하면 연락처를 다 지우고 내 전화번호도 바꿔버렸었어. 네가 내게 연락을 했는지 몇 번이나 시도해봤는지, 그래서 모르는 전화번호라고 나왔는지 다른 누가 받아서 '그 사람 번호 아닌데요' 했을 지 나는 몰라.
네 바뀐 이름도 너무 흔한 이름이지만 내 이름도 그렇잖아. 살면서 오늘 같이 힘든 일이 있던 날에 너를 찾고 싶은 마음이 문득 들 때마다 너를 도저히 찾으려야 찾을 수가 없더라. 너도 그랬을까. 찾을 수가 없이 흔한 이름이라 구글 검색창에,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같은 데에, 부활한다는 싸이월드 같은 데에 이렇게 저렇게 검색해보고 실망했을까.
너를 잃고 이제까지 지내오면서 나는 왜 이렇게 이상한 사람들과만 자꾸 얽혔던지 내 번호는 물론이고 내 이메일 주소든 뭐든 아무런 흔적도 남기고 싶지 않았었어. 하도 여기저기 있던 이름이라 늘 불만이던 내 이름이 이제는 흔해서, 찾을 수 없어서 참 다행이다 싶었지. 그런데 너마저도 나를 찾을 수가 없겠구나. 왜 네 연락처까지 다 지워버렸는지 난 기억도 안 나지만.
아직도 뉴스에 경마장이 어쩌고 하면 네 아버지 다니셨던 곳, 하고 네가 자동으로 떠올라. 너도 남동생이 있었는데, 싶기도 하고 다른 지역에 가서 이제는 몇 개 없는 빕스 매장을 보면 또 네가 생각나. 우리 스무살이었나 벼르고 별러 아웃백이나 빕스 같은데 겨우 가보고 난 정말 그런 촌년이었는데 네가 50% 할인쿠폰인가를 얻게 됐다고 나한테 나오라고 했었잖아. 이미 샐러드바를 주문해 먹으려는데 내가 혹시 몰라 쿠폰을 좀 보자고 했고 그 쿠폰 뒷면에는 '단, 4인 이상 주문 시' 였나, 그런 조건이 있었지. 결국 우리에겐 지나치게 비싼 저녁을 먹게 됐는데 나는 그 모든 게 너무 창피하고 화가 나서 너에게 짜증을 많이 냈었지. 당황한 너는 그냥 네가 낸다고 했었고 나는 너나 내 가난이 너무 창피해서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더 화를 냈었고, 왜 도대체 매사에 그런 식이냐고 얼굴을 잔뜩 붉혔었잖아. 그거 얼마 한다고. 이제 와 생각하면 그게 뭐라고. 그런 모든 것들이 그땐.
너와 함께 신촌 하숙집에서 같이 살던 때, 네가 아침에 집 근처 무슨 카페에 아르바이트 면접이 잡혔다고 했었고 나는 도대체 넌 공부를 안 할 셈이야, 했다가도 그래 잠시 하숙비도 벌고 괜찮겠다, 하고 축하해줬던 기억이 나. 카페 알바 좋다, 멋있겠다, 잘 보고 와, 그러고 해질 무렵에 내가 집에 돌아왔을 때 너는 무슨 소주를 병째로 마시고 있었잖아. 소주를 제대로 마셔본 적도 없으면서 마치 괴로우면 소주 병나발을 부는 그런 드라마 속 여주인공을 따라하는 것처럼 느껴졌어. 카페에서 무슨 일 있었냐고 물었더니 네가 면접에 조금 늦어서 그냥 그대로 돌아가라고 했다고 했었고. 늘 너는 나와 만나기로 해놓고도 기본적으로 한두 시간을 늦었지. 그런데 너는 그 날도 변명을 했어. 조금 늦은 것 뿐인데, 20분, 30분이었나, 아니 10분이었나, 그정도밖에 늦지 않았는데 어떻게 사람에게 그럴 수가 있냐고 하면서 어두운 방안에 앉아서 그랬잖아.
그때도 그랬지만 그런 게 너무 속이 터질 것 같아서 울먹이는 너를 보고 더 미친듯이 화를 냈고 너는 그냥 웃었던가... 울었던가... 그때 나는 무슨 짐승 같았고 늘 죽고 싶을 정도로 우울했었는데. 그럴 때마다 너는 나를 진정시키고 나중에 책상 위에 쪽지 한 장을 뒀었지. To. 멋진 내 친구에게, 너무 우울해 하지 마, 넌 잘 할 거야, From. 네 친구 나무늘보가, 그런 쪽지를. 아무 공책이나 귀퉁이를 대충 찢어서 성의도 없이. 참 너답게도. 그런 네가 견딜 수가 없었다가, 너 없이는 더 견디기 힘들 거라고 생각했었어. 너는 내 깊은 데를 자극하고, 나는 내게 내 속 안의 구덩이 까지 다 벌려 쏟아내며 난리를 치고, 그때마다 너는 아주 아주 느긋한 말투로 그럴 수도 있지- 하고.
한 두달이나 같이 지냈던가. 수능을 다시 보기도 전에 우리가 너무 싸워대서 따로 살게 됐고. 그 때도 도저히 너랑 못 살겠다고 한 건 나였고. 같이 살자고 했던 것도 나였는데. 내가 그랬어. 내가 너에게 그랬던 걸 나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어. 그렇게 몇달이 더 흘러 나는 하숙집 근처에 있던 내가 목표했던 대학에 갔고. 너는 삼수를 하겠다고 했고. 그리고 역시 하숙집 근처에 있었던 백화점 의류 매장에서 일하게 됐다고 했었지. 나는 신입생이 돼 주체할 수 없이 들떠있었고. 같이 시간 맞춰 백화점 푸드코트에 가서 점심 먹자고 몇 번 했었는데. 내 딴에는 널 배려한다고 드디어 지각 안 하고 일자리 구했네. 그냥 아르바이트도 아니고 거의 정규직 아니야? 하면서 그랬었지.
하지만 고작 몇백 미터를 사이에 두고 우리가 만난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아. 지긋지긋하던 재수생활이나 하숙집 그런 것들에서 벗어나 원하는 데 소속됐단 어린 마음에 잠시 들뜨기는 했지만. 그런 한편으로 아, 나는 이 안에 결코 똑바른 자랑스런 하나로 속할 수 없다는 걸 조금씩 느끼고 있었어. 사회적 계층이라는 말 같은 거 배우잖아, 그런 거 그냥 일반사회 과목에서 외우는 단어일뿐이었는데, 마음이 늘 불편했어. 하지만 그런 한편으로 네게도 더이상 아무 말을 할 수가 없더라. 내가 대학 생활에서 느끼는 점을 말할 때 자꾸 멈칫하게 됐고, 하나도 자랑하려는 건 아니었지만, 뭔가 이건 아니다 싶었는데, 그럼 우리는 친구를 할 수 없는건가. 스무살이 되기 전 누누이 귀에 박히듯 들었던 대학 가면 모두와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된다는 게 이런건가. 그런 생각했던 것 같아. 넌 내가 무슨 말을 하든 그저 다 부럽다고 말했고. 나는 아니 부러울 게 하나 없다고 말하면서도.
내게 너는 내 어린 날의 허영과 자만과 초라함과 구질한 모든 걸 다 아는 유일한 사람이었어. 네가 나무늘보처럼 천천히 움직이고 조용히 내 얼굴을 들여볼 때마다 나는 네게 내 날 것을 들키고 있는 것 같았고. 어쩌면 그 때 누가 나를 보더라도 나는 너무 알기 쉬운 상태였겠지만. 그러면서도 늘 내 마음은 나만 향해있었다는 것이. 다 지나고 나서야 네 마음을 헤아려볼 때면 늘 가슴 한구석이 뭉개지는 것만 같았어. 아직도 널 떠올릴때면, 너와 관계됐던 모든 사물과 인상들에서 네가 떠오를 때면, 아마 나는 평생을 그럴거야. 너를 평생동안 문득 갑자기 떠올릴거야. 그 때의 너와 그 때의 나를. 가난한 주머니만큼이나 가난한 영혼이었던 때를. 네가 내 친구여서 지탱할 수 있었던 많은 순간들을, 네가 내 친구라는 걸 참을 수 없었던 어떤 순간들을, 우리 서로 너무 어렸고, 바닥이었고, 누추함을 감출 줄도 몰랐고,
어느 낮이었나 어느 교회 앞 벤치에서 갑자기 졸음이 쏟아져 참을 수 없다며 내가 네 무릎을 베고 그대로 곯아떨어졌던 일 기억 나니. 그 때 내가 꿈을 꾸면서 너무 괴로워하며 나 버릴거야? 나 버릴거야? 하고 흐느끼기에 너무 놀랐다고 했었잖아. 나는 내 속마음을 네게 다 들킨 것만 같아서 네게 거짓말 좀 하지 말라고, 열 번도 넘게 거짓말이지? 거짓말이잖아, 하고 짜증을 냈었잖아. 너는 그런 걸 지어낼 사람이 아니란 건 이미 알고 있었는데도. 너는 여느 때처럼 진지하고 느린 말투로 응. 너가 그랬었어. 말했고 나는 아. 내가 그랬구나. 했었지. 그 날은 불어오는 바람에 이마에 맺힌 땀이 시원하게 마르던 여름 날이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