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내게 무슨 짓을 했는가 by 믹서
나는 거울 보는 것을 좋아한다. 어느 정도 내 얼굴에 만족한다는 뜻과 함께 다른 의미가 있다. 거울을 보는 동안 ‘나는 살아있구나’라는 감정을 느낀다. ‘내 눈 색깔이 이렇구나’, ‘눈을 이렇게 깜박이는구나’, ‘없던 잡티가 갑자기 생겼네’, ‘앞머리가 자랐네’, ‘오늘은 얼굴색이 밝아서 기분 좋다’ 등등. 나를 보며, 나와 대화를 한다.
표정을 가만히 보고 있는 날도 있다. 특히 감정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힘든 시기에 그렇게 한다. 그런 날이면 “힘을 내 봐”라고 말하면서 억지 미소를 짓기도 한다. 이렇게 거울 보는 시간은 바로 나에게 오롯이 집중하는 시간이다.
돌이켜 보면, 나는 어린 시절부터 거울 보기를 즐겼던 것 같다. 거울을 통해 울고 웃으며 자랐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런 내 기억에,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제대로 인식한 건 초등학생이 되던 무렵이었다.
초등학교 입학식 전날, 엄마는 나를 미용실에 데려갔다. 내 의견은 묻지도 않고, 엄마는 파마머리를 주문했다. 뽀글뽀글해진 머리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아 엉엉 울었다. 엄마는 그런 내가 너무 귀엽다며 웃었다. 나와 달리 엄마는 내 뽀글 파마머리에 대만족 했던 것이다. 그때 이야기를 하면 지금도 엄마는 깔깔 웃으며, “얼마나 예뻤는데!”라고 내 뽀글 파마머리를 회상한다.
다행히 파마머리는 시간이 지나자 자연스럽게 펴졌다. 그 이후, 엄마 강요로 파마머리를 한 적은 없었다. 대신 엄마는 아침마다 머리를 손질해 주었다. 엄마 손은 마술 같았다. 한 갈래, 양 갈래, 쫑쫑 딴 머리, 반 묶음 머리 등등 머리스타일에 따라 내 얼굴이 변했다. 그런 나를 거울로 보는 게 마냥 재미있었다.
중학생이 되니, 지켜야 할 머리 스타일 교칙을 따라야 했다. 귀 밑 3cm 단발머리를 해야 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그 교칙은 곱슬머리인 내게 치명적이었다. 긴 머리를 묶고 다닐 때는 없던 고민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내 모발은 조금 굵다. 거기에 곱슬머리다. 그대로 두면 삼각김밥 같은 모양이 된다. 귀 밑 3cm 단발머리 중학생은 머리 관리 시간에 엄청난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생머리처럼은 안 돼도 최소한 붕 뜬 머리를 가라앉혀야 했다. 밤마다 가지런히 빗질을 하고 베개로 머리를 눌러주면서 자야, 다음 날 아침 겨우 봐줄 정도가 됐다. 지금 같은 미용 기술이 없어, 매직으로 곱슬머리를 피는 일은 생각도 못했다.
중학교 3년 내내, 억지춘향으로 단발머리를 유지하느라 힘겨운 나날을 보냈다. 엄마와 함께 머리를 만지고, 즐겁게 거울을 봤던 때와 달리 거울 보는 일은 고역이 되어 갔다. 십 대의 반을 보내며 나는 거울과 점점 멀어졌다. 학교 공부에 지쳐갔고, 머리스타일 따위는 내게 중요한 게 아니라며 슬슬 외면하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때 드디어 두발 자유화가 이루어졌다. 마음대로 머리를 길러 묶고 다닐 수 있었다. 중학생 때처럼 곱슬머리 때문에 고민하지 않아도 됐다. 그러나 거울 보는 일이 예전처럼 즐겁지 않았다. 대학 입시라는 거대한 괴물이 성적 이외의 모든 고민을 잡아먹었기 때문이다. ‘붕 뜬 곱슬머리를 어떻게 잘 가라앉힐 수 있을까’ 같은 고민은 사치로 여겨질 만큼 삶은 점점 팍팍해져 갔다.
혹독한 입시 전쟁을 치른 후, 다행히 대학생이 되었다. 본격적인 외모 가꾸기에 돌입했다. 콘택트렌즈를 끼고, 미용실에서 매직으로 곱슬머리를 피니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엄마는 스무 살이 된 딸에게 화장품 세트를 선물했다. 나는 멀찍이 떨어져 있던 거울을 다시 가까이 들였다.
세련되고 자연스럽게 화장을 잘하는 대학 동기들을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하면 화장 안 해도 보송보송했던 20대 피부에 왜 그렇게 분칠을 했는지 모르겠다. 하여튼 그때는 수업 중간중간 화장실에서 화장을 고친다고 뻔질나게 거울을 들여다보곤 했다.
내 화장대 거울 앞에는 친구들이 좋다고 추천한 화장품들이 하나 둘 쌓여갔다. 세상에 외모 고민이 전부인 양 심각한 얼굴로 거울 앞에 앉아 화장 기술을 익혔다. 당시에 유행했던 ‘화장을 고치고’라는 가요가 생각이 난다. 까만 눈물을 흘리며 노래하던 뮤직비디오 여주인공과 함께 울며 실연의 아픔, 고시 낙방 등 폭풍 같은 20대를 지났다.
30대가 되자 다시 거울을 보기도 힘든 바쁜 나날이 이어졌다. 학위도, 경험도 없는 방송 기술을 익히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먹고, 자고, 일만 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랐다. 힘들었지만 커리어를 쌓아가는 기간이라 생각하며 많은 것을 포기했던 때였다. 비비크림, 쿠션 팩트 같은 마법의 도구들을 이용하니, 화장한다고 거울 보는 시간은 하루 5분도 안 됐다. 어쩌다 화장실 거울에 비친 나를 보는 일마저 어색하게 느껴졌다. 피곤에 쩌들고, 무표정한 얼굴은 생경했다.
올해 40이 된 기념으로 거울 앞에서의 유구한 역사를 간단히 짚어 봤다. 생각해 보니, 거울 앞에서 나와 대화하며 지낸 날들이 그리 오래 지나지 않은 것 같다. 작년에 퇴사한 후, 비로소 거울 앞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졌다는 걸 글을 쓰면서 깨달았다.
물론 지금도 나는 거울 앞에서 고민이 많다. 어느새 늘어난 주름, 예전 같지 않은 피부 탄력, 정기적으로 염색하지 않으면 좀처럼 가려지지 않는 흰머리는 인상을 찌푸리게 한다. 그러나 나는 거울 앞에서 내 모습을 외면하지 않는다. 거울 앞에서의 40여 년 역사는 조금씩 변해 가는 얼굴을 받아들이고 사랑하게 만들었다. 거울 앞에서 나와 대화할 수 있는 여유로움,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새로운 여정, 그것은 시간이 내게 준 선물이다.
*notice
유유히유영은 유자까, 믹서, 멸종각 세 작가가 함께 글을 올리는 공간입니다. 세 작가는 한 주에 하루, 시간을 정해놓고 같이 글쓰기를 합니다. 키워드 단편선에 이어, 함께 공감할 한 주제를 정해 에세이를 쓴다고 해야 할까요. 같은 주제가 주어지지만, 각자 다른 느낌으로 글을 쓰기에 다양한 글이 나옵니다. 첫 주제는 '시간은 내게 무슨 짓을 한 것일까'입니다. 일로 인정받기에 자기를 모두 갈아 넣어 왔던 작가 '믹서'의 에세이가 첫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