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위의 처가 견문록
4월 11일, 아무 일 없음 by 유자까
내일 비가 내린단다. 오늘은 엄청 맑은데, 내일 비가 온단다. 날이 좋은데 집에 있기는 좀이 쑤신다. 더군다나 어젯밤, 아내는 꿈속에서 엄마를 만나지 않았던가. 내가 어떻게 알았을까? 아내가 자면서 엄마를 엄청 찾았다. 아파서 그랬는지 엄마를 찾았을까. 엄마를 연신 불러댔다. 오늘은 처가로 향하기로 결정했다.
점심도 먹기 전에 전화를 드렸는데, 커다란 목청으로 떠드는 들린다. 우리 조카가 와 있나 보다. 초등학교에 입학했어도 할머니 집은 사랑하는 녀석이다. 아니지. 녀석은 남성을 주로 나타내는 명사인데, 녀석이 알면 화낸다. 여자 아이인데 유치원에서 무엇을 배우는지, 남자는 이래야 하고 여자는 저래야 한다고 말한다.
전화를 마치고, 집을 나설 준비를 한다. 조금 섭섭했다. 엊그제, 우리 부모님 집이 이사를 해서 찾아가려 했을 때는 뭐라고 했던 아내다. 그런데 친정에 찾는 일에는 일체 불만이 없다. 내가 한 소리하면 화를 내겠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냥 마음에 담고 자동차를 빼고 있는데, 주인아주머니가 김치를 주신다. 우리 이야기는 그대로 김치로 흘렀다.
아내 친정에 도착하니, 조카 혼자 텔레비전을 신나게 보고 있다. 엄마 없이 할머니 집에 오기 좋아하는 이유가 아닐까. 오늘 만화는 ‘호비’로 결정했나 보다. 어쩐 일인지 가장 좋아하는 ‘미니 특공대’를 보지 않는다. 아마 자신이 좋아하는 미니 특공대 에피소드는 전부 유료라 비밀번호를 몰라서 무료 에피소드가 많은 호비를 틀었나 보다.
장모님이 반갑게 맞아주신다. 그런데 오자마자 딸을 앉혀놓고(정확히는 세워두고) 장인어른 ‘뒷담’을 털어놓는다. 장인어른(장인)은 그 순간 낮잠을 주무시고 계셨다. 쫄깃한 심장이지만, 쫑긋 귀를 세우고 열심히 경청했다. 그 사람이 없는 자리에서도 아닌 자는 자리에서 듣는 장인 뒷담이라니. 항상 있는 일이지만, 한편 이런 대화가 반가웠다.
나는 조카와 놀면서 귀는 열어 두었다. 단순히 약주를 하고 주무시는 장인 뒷담 정도가 아니었다. 장모님이 얼마나 억울한지에 대해서다. 장인이 장모님 이야기를 무시하는 정도가 얼마나 심해졌는지 알 수 있었다.
“아니, 내가 무슨 말만 하면 큰소리를 낸다니까.”
원체 잔소리가 많은 분이지만, 장모님이 무슨 말씀만 해도 목소리를 높인다고 했다. 내야 할 세금이 있는데, 장모님이 어떻게 내라고 말하자 “모르면 조용히 있어”라고 한다. “보험관리 공단에 찾아가서 이야기하면 된다”는 장모님 이야기는 듣지 않고, 그저 조용히 하라고 소릴 지르시나 보다.
장인은 워낙 잔소리가 심하다. 조카가 큰 소리를 내고 뛰어놀아도 잔소리를 하시는 분이다. 옆에서 이해하고 넘어가야 한다는 소리도 종종 듣는다. 그런데 그날은 왠지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장모님은 “졸혼도 생각해 봤는데, 목사님이 이혼이랑 다를 바가 없다네”라고 말씀하셨다. 이혼은 좀 그러니까 졸혼까지 생각하신 것이다.
집에 가는 길에 장인이 함께 나왔다. 차까지 늘 마중하신다. 그런데 오늘은 본인이 얼마나 힘든 지를, 자신의 딸에게 털어놓으셨다. 아내는 충격을 받았다. 장인이 무슨 말만 하면, 동의해 주지 않고 반대하는 말만 한다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아내는 집에 돌아가면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렇게 둘은 20분 넘게 통화했다.
우리는 이 사건을 두고 이야기했다. 아내는 장인 편에서 이야기했고, 나는 장모님 편에서 이야기했다. 이번 사건이 아내에게는 큰 충격이었나 보다. 하긴, 우리 부모님도 실제 이혼 위기를 3번 넘겼다.(더 많이 있지만, 변호사를 찾아간 사건만 그렇다) 그걸 알았을 때 내가 받은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아내와 나는 이야기를 마치며, 오늘 하루를 돌아봤다. 우리는 그런 부분이 없는지, 한번 살펴보았다.
“내가 장인처럼 너에게 이야기하거나 무시하면, 당장 이혼하자고 하지 않을까.”
“맞아. 그럴 거야.”
우리가 내린 오늘의 결론. 대화를 할 때, 장인처럼 이야기하지 말자. 그리고 상대방을 너무 무시하는 말을 하지 않도록 하자. 장인의 화법을 닮은 아내에게 가장 힘든 다짐을 오늘 받았다. 정말 큰일을 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