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 식단으로 변하기까지 (2) by 유자까
주> 식단 이야기를 하기 전에 해야 할 이야기가 있다. 당뇨는 쉽게 잡힐 병이 아니다. 그러니 내 경험은 일반화할 수 없다. 그것을 알리고 시작하려 한다. 병원에서 주는 약 잘 먹고, 의사 말 잘 듣는 방법이 바로 당뇨에서 벗어날 수 있는 첫걸음이다.
우리 부부는 채소를 챙겨 먹는 편이다. 특히, 비건을 지향했던 아내 덕분에 냉장고는 갖가지 채소로 가득 찼다. 덕분에 퇴원하고 말도 못 하던 나는, 아내의 지시에 따라 초록초록한 식사를 해야 했다. 9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생각해 보자면, 그 지점이 나를 슬프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내 몰래 먹던 과자나 소시지 때문에 뇌경색이 왔나’ 속으로 생각했다.
아프기 전, 물처럼 마시던 편의점 달달이들을 끊는 문제도 있었다. 전체적으로 당이 많이 들어 있는 음료들을 사랑했다. 커피와 콜라 등이 대표적이다. 어쩌면 혈당 수치를 600까지 높였던 주범들은 바로 이 친구들이지 않을까. 콜라를 물처럼 마시고, 커피가 떨어질까 매일 사다 쟁여 놓았다. 이 녀석들을 끊고 나서 당이 300~400선으로 바로 낮아졌다. 정말 악연이라 부를 수밖에 없다.
"내가 사랑했던 콜라, 커피여, 안녕... 이제 너희들은 너무 달아서 못 먹겠어."
당 수치가 300 이상으로 나오던 시절, 당연히 인슐린 주사로 당 수치를 내렸다. 병원에서 간호사가 주사를 놓아주던 시절, 내 당 수치를 200 이하로 떨어뜨리려 했다. 인슐린 주사를 두 방을 맞아야 목표로 하는 수치로 나왔다. 주사를 상당히 세게 맞았는데, 아침에만 맞던 트레시바는 30 정도로 기억한다. 다른 주사도 상당히 수치를 높게 잡고, 약까지 먹어야 당 수치는 200 이하로 겨우 잡혔다.
작년 말, 언어를 관장하는 뇌에 혈전이 생겨 입원을 했을 때 얘기를 잠시 하겠다. 당시, 당뇨와 뇌경색을 함께 앓고 있던 터라 많은 검사를 해야 했다. 몸의 다른 부분에 혹시 이상이 있는 건 아닌지 여러가지 검사를 했다. 심장 박동을 확인하는 기계까지 걸고 다녔다.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상태에 글마저 읽히지 않아 스마트폰과 책은 무용지물이었다. 그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몸만 어른인, 아기가 된 기분이었다. 마치, 성질난 아기 같았다. 아내에게 참 많이 짜증을 냈다. 결혼하고 그렇게 많이 성을 낸 적이 없으니, 말 다했다.
나는 당시 상황이 제대로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바보가 된 기분이 들었다. 병원에서 있었던 일은 지금도 기억이 잘 안 난다. 아내만 쳐다봐야 하는 신세였다. 이전에는 아내와 서로 바라본다고 여겼는데, 상황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바뀌었다. 병원 내에서 아내는 나를 이리저리 데리고 다니고, 난 아내가 이끄는 지점으로 가야 했다. 참, 슬펐다.
약 2주일 정도 입원했다가 퇴원했다. 뇌경색은 담당 의사가 차츰 좋아질 것이라고 이야기해 주었는데 정말 그랬다. 놀라웠다. 손상된 부분이 회생되진 않지만, 그 주위의 뇌가 그 기능을 익히고 수행했다. 처음에는 발음이 매우 부정확했는데, 지금은 80% 정도 좋아진 느낌이다. 그런데 당은 쉽게 낫지 않는 병이라 의사에게 들었는데, 말 그대로였다. 정말 잘 나아지질 않았다.
채식을 한다고 했는데, 당이 계속 몸에 들어오는 문제가 있었다. 인슐린을 짜내는 부분이 망가졌으니 제대로 분비될 이유가 없다. 그러니 밥을 아무리 적게 먹더라고 당이 들어온다. 깨달음을 얻고 식탁을 살펴보니, 당이 될 음식들이 보였다. 아무리 크게 얻어맞았더라도 (내분비과 담당의사는 나의 뇌경색 경험을 '얻어맞았다'고 표현했다.) 야채를 생으로 먹을 수는 없었다.
아내에게 미안하지만, 더는 비건으로 살 수 없었다. ‘저탄고지’(저탄수화물·고지방 식단의 줄임말)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나에게 생기를 되찾아줄, 그리고 당뇨를 회복시켜줄 음식이 필요했다. 당연히 처음에는 지방을 먹는다는 태도를 취하기 쉽지 않았다. 게다가 여러 가지 시행착오도 겪었다. 그 이야기는 다음에 적어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