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이 우리를 부른다고 느꼈다

별내에서의 짧은 시간을 보내다

by 유유히유영

고양이와 이사 이야기를 하니, 가장 미안했던 미국으로 건너간 생각이 난다. 그해 10월쯤이었다. 그 동네에서 7개월 정도 지내고 있는데, 전 직장 동료에게 연락이 왔다. 뉴욕에서 기자를 구한다고 이야기를 전하려고 연락했다. 자신에게 먼저 이야기가 나왔는데, 자기는 못 갈 상황이니 내가 가 보는 것은 어떠냐고 물었다. 기자로 살아가고 싶은 욕망에 기름을 부은 사건이었다. 고민이 많이 됐다. 안정적인 생활을 포기하고 갈까, 안정을 선택할까.


나는 아내와 지내는 시간을 무척 귀하게 여겼다. 아내 출퇴근을 돕기 위해 차를 끌고 나가거나, 회의하기 위해 여기저기 나가는 시간도 좋았다. 저녁 시간이 되면 아내와 맥주 한잔하면서 대화 나누는 일도 즐거웠다. 아내에게 이런저런 설명을 했지만, 아내를 설득하기에는 부족했다. 아내는 당장 가자며, '무얼 망설이냐'고 나를 채찍질하고 나섰다. 별내동으로 이사하고 이제 6개월 정도 지난 시점이었다. 어렵게 구한 전세도, 아직 제대로 즐기지 못한 복층 구조도 떠올랐다.


여기서 아내 이야기를 잠시 해야겠다. 당시 아내는 방송국 PD로 일하고 있었다. 물론 종교를 다루는 방송국이었지만, 개신교 분야에서 자리를 잡고 있는 방송국이었다. 뭐, 그래 봐야 시청률이 높지는 않았는데, 종교적 사명감이 투철했던 아내에게는 그곳만 한 직장이 없었다. 당시 아내는 방송국에서 기르던 '소'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소처럼 열심히 일하고, 좋은 성과를 거두니 잘 가공하면 좋은 PD로 자랄 인재였다. 아내도 방송국에서 일하며 무척 즐거워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심각한 얼굴로 퇴근했다. 대뜸 내게 술을 마시러 갈 테니, 나오라고 했다. 술은 잘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아내였다. 난 신기해하며 퇴근하는 아내를 맞았다. 둘이 술자리에서 아내는 회사의 비리를 알았다며, 절망스러운 얼굴로 이야기를 꺼냈다. 아내 이야기는 회사라면 충분히 들을 수 있는 이야기들이었다. 이중장부에 삼중 장부 이야기, 본부장인 목사가 여직원을 희롱한 이야기 등등 아내는 취할 때까지 사건들을 꺼냈다.


"그런 이야기는 회사라면 당연히 들을 수 있는 이야기들이지." 나는 말을 이었지만, 아내에게는 달랐다. 회사가 회사일 수 없었다. 아내는 그 안에서 지내는 사람들과 공동체라는 의식이 매우 강렬했다. 방송국이 회사여서는 안 됐고, 방송국도 그동안 직원들에게 '사역자'라는 의식을 많이 심어줬다. 한 마디로 아내는 '공동체에 실망하고 좌절한 상황'이었다. 어쩌면 방송국은 아내에게 실망을 안겨주었는지도 모른다.

2015년 아내 사무실에서 무척 살이 찐 나를 찍은 아내. 저 당시 140kg을 육박했다.ㅋㅋ

그런 일이 있고 2달 정도 지난 뒤에 미국행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고민이 깊었지만, 아내는 새로운 길처럼 느꼈다. 회사를 그만둘 명분으로도 충분했다. 뉴욕을 간다고 하는데 누가 무어라 하겠는가. 하지만, 우리는 심각하게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난 아내에게 최대한 한국에 남도록 설명했다. 자전거로 카페 거리로 놀러 갔던 이야기, 미국으로 가면 갓 나온 조카가 우리를 잊을 수 있다는 내용도 이야기했다. 이곳에서 누렸던 안정을 포기하고 뉴욕에서는 가장 약자로 지내야 한다고도 경고했다. 그 어떤 말로도 소용이 없었다.


3일간 대화를 나누고, 대답해 주어야 하는 날이 다가오는데 답이 나오지 않았다. 이럴 때, 우리가 가장 빠르고 공정하게 결정하는 방법이 있다. 바로 가위바위보. 단판 승부였는데, 아내는 가위를 냈고 나는 보자기를 냈다. 결국, 아내가 이겼다. 다음 날, 나는 간다고 전화를 걸었고, 아내도 회사 동료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2015년, 가을밤에 내린 결정이 우리 인생의 선택이 될 줄 알지 못했다. 아니, 나만 몰랐다. 아내는 알았다고 한다.


집을 빼야하니, 빠르게 집주인에게 미국으로 가게 되었다고 알렸다. 다행히 집은 내놓자마자 나갔다. 6개월 만에 무려 4000만 원을 올렸으니 집주인은 좋아했다. 그리고 자동차를 비롯해 여러 가지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우리에겐 시간이 얼마 없었다. 물건을 아끼는 아내도 미국으로 가기 위해 모든 물건을 정리할 기세였다. 우리가 1년 3개월 만에 돌아올 줄 모르고.(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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