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회

by 김승예

현은 동기들과 대학로 부대찌개 집에서 저녁을 먹고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학교 앞 정류장에는 통학하는 학생들이 길게 줄을 서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상, 익숙한 풍경이었다.

공강엔 도서관 책상에 얼굴을 묻고 쪽잠을 자야 했고, 수업이 있는 날엔 몇 시간 전부터 집을 나섰다.

출퇴근 인파에 휩쓸러 집에 돌아오면, 몸은 물에 젖은 스펀지처럼 흐물거렸다.

현은 지친 얼굴로 버스를 기다리는 학생들을 보며, 자취방이 학교 근처에 있다는 사실에 새삼 안도감을 느꼈다.


경영대 건물 창밖으로 저녁노을이 길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잔디 운동장 위로, 인도를 빙 돌아가는 시간을 아끼려는 학생들이 몇몇 서둘러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농구 코트 한쪽에서는 피부색이 제각각인 외국인 교환학생들이 공을 튀기며 웃고 떠들었다. 그들의 웃음 소리는 공기 중에 가볍게 퍼져나가며, 코트 위로 여운처럼 흩어졌다.

해가 저물며 들이는 붉은빛 아래, 학교는 낮의 소란스러움을 서서히 걷어내고 있었다.

현은 이 시간이 유독 좋았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대낮보다, 하루의 열기가 가라앉고 학생들이 하나둘 빠져나간 학교가 더 편안하게 느껴졌다.

그때 옆에 앉아 있던 윤승이 과제 회의를 하다 말고 창밖으로 시선을 던지는 현의 어깨를 건드렸다.

“자, 그래서 현이는 뭐 맡을래?”

윤승은 팀장이자 1학년 과 대표였다.

생각에 잠겨있던 현은 놀란 듯 얼결에 말했다,

“그럼... 내가 PPT 만들게.”

윤승이 바로 받아쳤다.

“김현, 우리 팀 두 명은 회의한다고 학교 앞에서 방까지 잡았는데, 넌 지금 딴생각 중이야? PPT는 내가 하기로 했잖아.”

현은 당황한 기색도 없이 어깨를 으쓱였다.

“아, 그래? 그럼 남은 거 아무거나 내가 하지 뭐.”

윤승은 뭔가 한마디를 더 하려다, 아무렇지 않게 웃는 현의 표정을 보고는 고개를 저으며 말문을 닫았다.



해가 지고 과제의 개요가 어느 정도 잡히자, 각자 노트북 앞에 앉아 맡은 부분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경영관의 텅 빈 복도는 타자 치는 소리로 메아리쳤고, 중간중간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는지 낮은 한숨이 섞여 나왔다.

아침 일찍부터 공들여 화장한 새내기 여학생들의 얼굴은 시간이 지나며 기름기가 올라 조명 아래에서 번들거리고 있었다. 낮까지만 해도 좋아하는 선배를 마주칠까 봐 기름종이며 파우더를 부지런히 꺼내 들던 손길도, 이제는 전우끼리 남았다는 안도 속에 멈춰 있었다.

잘 보일 필요도, 애쓸 이유도 더는 없었다.


회의가 끝나고 각자 작업에 몰두한 지 한 시간쯤 흘렀을 무렵, 윤승이 갑자기 정적을 깨며 속삭였다.

“김현, 나랑 담배 피우러 갈래?”

모니터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든 현의 눈은 충혈되어 빨갰다.

“나, 담배 안 피우는 거 알잖아...”

현이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윤승은 그의 팔을 잡아끌며 말없이 복도로 나섰다.

여학생들에게, 쉬는 시간마다 따라 들어오는 담배 냄새는 더 이상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과제를 하다 말고 담배를 핑계 삼아 자리를 비우는 방식도 익숙한 일이었다.

두 사람이 말없이 일어나는 순간, 여학생들의 시선이 잠시 그들을 따라갔다가 다시 화면 위로 흘렀다.


평소 같았으면 운동장 뒤편 흡연실까지 걸어가야 했겠지만, 그날 저녁의 교정은 유난히 한산했다. 해가 완전히 기운 뒤라 사람 그림자조차 드물었고, 넓은 캠퍼스는 마치 하루의 숨을 고르듯 조용히 가라앉아 있었다.

윤승은 굳이 흡연실로 향하지 않았다. 예대와 법대 건물 사이를 가로지르며 느릿하게 걸어가더니 담배에 불을 붙였다. 주황색 불씨가 어둠 속에서 잠깐 반짝였다.

현은 그 옆을 조금 떨어져 따라 걸었다. 담배 연기가 직접 닿지 않을 만큼의 거리였다.

잠시 침묵이 흐르다가, 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야, 나 담배 안 피우는 거 알잖아. 왜 자꾸 데리고 나오냐.”

투덜거리듯 내뱉은 말이었다. 아까 회의실에서 여자 동기들의 표정이 묘하게 굳어 있던 것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윤승은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피식 웃었다.

“아까 핀잔 줘서 삐졌냐?”

그는 고개를 약간 기울인 채 덧붙였다.

“팀장이란 게 좋은 말만 할 수는 없더라. 네가 좀 이해해.”

연기가 숨결처럼 공중으로 흘러올랐다. 잠깐 허공에 머물던 그것은 저녁 공기 속으로 천천히 풀어지며 흩어졌다.

윤승은 마지막 한 모금을 깊게 들이켰다가 길게 내뱉었다. 그리고 아직 불씨가 살아 있는 담배를 바닥에 비벼 끄며 말을 이었다.

“이참에 너도 같이 바람 좀 쐬는 거지, 뭐.”

현은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저 두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조용히 걸음을 옮겼다.

그때, 짧은 알림음이 울렸다.

현은 무심코 휴대전화를 꺼냈다.
어둠 속에서 켜진 화면이 그의 얼굴을 희미하게 밝혀 주었다.

그 빛을 받아든 눈동자가 잠시 멈추었다가, 곧 미세하게 흔들렸다.

화면 위에는 한 이름이 떠 있었다.

다시는 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이름이었다.

유정.

현은 숨을 삼킨 채 메시지를 읽었다.

오빠, 저 유정이에요.
서울 올라왔는데… 늦은 시간이긴 하지만, 만날 수 있어요?

현은 눈을 몇 번 깜빡였다.
그리고 같은 문장을 다시 읽었다.

한 번 더.
또 한 번 더.

믿기지 않는 현실 앞에서, 그는 마치 글자 하나하나를 확인하듯 천천히 문장을 되짚어 읽고 있었다.

그 사이 윤승은 어느새 담배를 하나 더 꺼내 입에 물고 있었다. 라이터가 다시 한 번 어둠 속에서 짧게 번쩍였다.

현은 휴대전화를 조심스럽게 가슴 쪽으로 끌어안았다.
마치 그 안의 문장이 조금이라도 밖으로 새어 나가면, 지금 이 순간이 그대로 무너져 버릴 것 같다는 듯했다.

“야…”

목소리가 낮게 떨렸다.

“나, 지금 어디 좀 가봐야 할 것 같아.”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현은 몸을 돌렸다. 그리고 곧장 경영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야, 가긴 어딜 가? 화장실?”

윤승이 뒤에서 소리쳤다.

하지만 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모습은 이미 어스름한 건물 뒤편으로 빠르게 사라지고 있었다.

윤승은 그 자리에 잠시 서 있었다.
막 붙인 담배는 반쯤도 타지 못한 채 손가락 사이에서 식어 가고 있었다.

그는 잠깐 멍하니 서 있다가, 말없이 다시 라이터를 켰다.


강의실로 돌아왔을 때, 문영은 노트북 앞에서 머리를 벅벅 긁고 있었다. 화면을 한참 노려보던 그녀는 숨을 헐떡이며 혼자 돌아온 현을 보자 고개를 들었다.

“윤승이는?”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왜 너만 와?”

현은 기둥에 몸을 기대 잠깐 숨을 골랐다. 바짝 마른 입술을 혀로 적신 뒤,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했다.

“어… 화장실에서 이 닦고 바로 올 거래.”

잠깐 정적이 흘렀다.

여자 동기들 사이에서 헛웃음이 작게 새어 나왔다.

“이 닦는다고?”

“지금?”

누군가 중얼거렸지만, 더 묻지는 않았다.
곧 모두 다시 고개를 숙이고 노트북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가 다시 조용히 이어졌다.

그때 현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기…”

잠시 말이 멈췄다.

“나 좀 급한 일이 생겨서… 먼저 가야 할 것 같아.”

그 말을 듣자마자 문영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뭐?”

눈썹이 확 올라갔다.

“누군 볼 일 없어서 남아 있는 줄 알아?”

말투는 단숨에 날카로워졌다.

“이 둘은 같이 과제 하려고 일부러 학교 앞에서 방까지 잡았다잖아.”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현은 유정을 만나야 했다.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현은 잠깐 고개를 숙였다가 다시 들었다.

“응, 맞아… 근데 진짜 급한 일이야.”

조심스럽게 말을 골랐다.

“오늘 자정까지 자료조사 마무리해서 다 보낼게.”

잠시 망설이다가 덧붙였다.

“출출하진 않아? 내가 피자 시켜 줄게.”

그 말에 교실 안 공기가 살짝 느슨해졌다.

어차피 다들 새벽까지 과제를 이어갈 생각이었다. 자료만 제대로 넘어온다면 큰 문제는 없었다.그리고 돈이 넉넉하지 않은 대학생들에게 피자라는 말은 제법 진심이 담긴 타협이었다.

잠깐 눈치를 보던 동기들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대신 자료 꼭 보내.”

문영이 쓰고 있던 도수 높은 안경을 머리 위로 밀어 올리며 물었다.

“윤승이는 알아?”

그 순간 현은 잠깐 멈칫했다.

문영의 눈이 유난히 또렷하게 느껴졌다.

현은 얼른 시선을 피하며 대답했다.

“어… 내가 말해 놨어.”

말을 마치자마자 현은 재빨리 가방을 챙겼다.
그리고 곧장 경영관을 빠져나왔다.

캠퍼스를 벗어나며 택시를 잡으려다 문득 방금 전 피자값이 떠올랐다. 이미 꽤 큰 지출이었다.

잠깐 서 있던 현은 결국 발걸음을 지하철역 쪽으로 돌렸다.

늦은 시간이라 객차 안은 한산했다. 현은 문 옆에 서서 손잡이를 잡았다.

열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창밖으로 불 켜진 한강 다리가 스쳐 지나갔다.

검은 강물 위에서 불빛들이 길게 흔들리고 있었다.

현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 풍경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조심스럽게 휴대전화를 꺼냈다.

손가락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잠시 망설이다가, 천천히 자판 위를 더듬었다.

그리고 짧은 문장을 보냈다.

유정아, 금방 갈게.


버스터미널 역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늦은 시간이었지만, 역 안의 공기는 여전히 분주했다.
여행 가방을 질질 끌며 계단을 힘겹게 오르는 사람들, 낯선 노선도 앞에서 한참을 머뭇거리는 외국인들, 막 도착한 버스에서 쏟아져 나온 승객들이 뒤엉켜 대합실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들 사이로 현은 몸을 약간 숙인 채 빠르게 걸었다.
노트북 하나뿐인 가방이 어깨 위에서 작게 흔들렸다.

사람들 틈을 비집고 지나가며 그는 자연스럽게 걸음을 재촉했다.
대합실로 가면, 그곳 어딘가에 유정이 있을 터였다.

계단을 내려오는 동안 현의 심장은 점점 더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뛰고 있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곧 유정을 마주하게 된다는 생각 때문인지 스스로도 분간이 가지 않았다.

누군가가 보았다면 그저 버스 시간에 늦을까 봐 서두르는 사람처럼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현의 마음은 전혀 다른 이유로 급해져 있었다. 아주 오래 기다려 온 얼굴을, 조금이라도 더 빨리 보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대합실이 가까워지자 사람들의 움직임이 조금 느슨해졌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현의 시선이 어느 한곳에 멈췄다.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유정이었다.

몸보다 더 커 보이는 짐가방에 반쯤 몸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언제부터 기다리고 있었는지, 고개가 살짝 앞으로 떨어진 채 졸고 있었다. 피곤해서인지 불편한 자세도 아랑곳하지 않는 듯했다. 머리카락이 얼굴 옆으로 흘러내렸고, 그 아래에서 조용한 숨결이 고르게 이어지고 있었다.

현은 잠시 그 자리에 서서 유정을 바라보았다.

몇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도 유정은 깨지 않았다. 현은 천천히 옆자리에 앉았다. 의자가 살짝 흔들리자 그제야 유정의 눈이 느리게 열렸다.

“유정아…”

현이 숨을 삼키듯 낮게 불렀다.

유정은 눈앞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았다.

“오빠.”

그 한마디가 아주 조용하게 흘러나왔다. 아직 잠이 덜 깬 사람처럼 유정의 눈동자는 한동안 현의 얼굴 위에 머물러 있었다. 마치 현실인지 꿈인지 가늠하려는 사람같았다.

잠시 뒤 유정은 천천히 손을 들어 현의 팔 위에 올렸다. 팔걸이 위로 내려앉은 현의 팔에, 조심스럽게 손을 얹었다.

손끝에 닿는 체온을 느끼며, 이 만남이 상상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려는 듯했다.

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그 손을 받아들였다.


현은 식사를 거른 유정을 데리고 대합실 옆에 있는 작은 우동집으로 향했다. 야간버스 승객들을 위해 밤새 불을 켜 두는 곳이었다. 가게 안에는 늦은 여행객 몇 명이 조용히 앉아 있었고, 주방에서는 끓는 국물 소리가 잔잔하게 흘러나왔다.

두 사람은 창가 쪽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유정은 고개를 약간 숙이고 있었다.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아직 정리되지 않은 사람같았다.

현은 그런 유정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하루의 끝에 서 있는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유정의 눈가가 지나치게 부어 있었다. 야식을 먹고 잠깐 누웠다가 방금 깨어난 사람처럼 눈자위가 둔하게 부어 올라 있었다.


우동이 테이블 위에 놓였다. 따뜻한 김이 천천히 올라왔다. 하지만 유정은 바로 젓가락을 들지 않았다.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대합실 쪽으로 드나드는 버스들이 느릿하게 오갔다. 잠시 후에야 유정은 젓가락을 들어 면 몇 가닥을 건져 올렸다. 천천히 입에 넣었다가, 금방 젓가락을 다시 내려놓았다.

현은 아무 말 없이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다 한참 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잘 데 없으면…”

목소리가 낮게 흘러나왔다.

“…내 자취방에서 자도 돼.”

유정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고개를 숙인 채 가만히 앉아 있었다. 잠시 후 콧잔등이 서서히 붉어지기 시작했다.

현은 말을 덧붙였다.

“너만 괜찮다면.”

그 말은 목 끝에서 간신히 떠올라 나온 것이었다.

유정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아주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조금 늦게, 목이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감사해요.”

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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