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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필소녀 Apr 19. 2016

큰 손님이 오셨다

점점 진화하는 상하이 가이드

해외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안다.

손님의 방문이란 보통일이 아니라는 걸.

하지만 보고 싶던 손님의 방문은 고되지만 보람차다.

나와 죽이 잘 맞는 사람,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 사람, 내 사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사람, 그리고 내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

살면서 그런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런 손님이라면 사활이 걸린 경쟁 피티를 하는 심정으로 접대에 몰빵 할 수 있다. 얼마든지.


A는 운이 좋았다.

그녀는 '그런 손님'인 데다가, 내 가이드 실력이 한층 업그레이드된 시기에 상하이를 방문했다.

이제 택시 기사나 식당 종업원의 돌발 질문에도 크게 당황하지 않을 만큼 귀도 트였다.

게다가 우리 집 거실 바닥도 춥지 않을 만큼 날도 따뜻했다.


손님을 맞으면서 늘 느끼는 거지만, 3박 4일은 너무 짧다.

원래 좋은 곳도 많은데다, 내가 좋아하는 카페나 식당이 더 늘어나고 있으니까.

푸동에서 와이탄을 볼 것이냐, 와이탄에서 푸동을 볼 것이냐. 짜장면/짬뽕처럼 어렵다. 그래서 짬짜면같은 사진을 찍어봤다.
멀더와 한집서 잘 것이므로 첫인사도 할겸, 훠궈집에서 저녁을 함께했다. A는 마라훠궈와는 의외로 구면이었다. 심지어 친했다.
빵냄새 가득한 베이커리 카페로 들어서자 A는 순식간에 행복해졌다. 안푸루(安福路)[Baker&Spice]에서의 브런치.
약 4,000원 짜리 Feiyue 스니커즈를 2개 사고 A의 행복은 증폭됐다. 덕분에 내 페이유에 쿠폰 도장도 두개 늘어났다.
우캉루(武康路)의 아이스크림집은 이런 곳이 되어버렸다. 내가 보여주고 싶었던 건, 한적하고 아름다운 프랑스 조계지였는데.
[Green&Safe] 주중이라 야외에 앉을 수 있었다. 작은 도로에서 많은 풍경이 오고 가는 곳. 그때 나눈 이야기들이 참 좋았다.
너무 큰 나이차를 뽀샤시 셀카 어플로 극복해보려고 했으나 실패하고.
어려서 이쁜건지 그냥 이쁜건지 어떻게 찍어도 잘 나오는 A.

티엔즈팡(田子坊)의 기념품은 선글라스. 재밌고 특이한 선글라스를 사기로 했다. 가격도 99위안 (17,000원)! 

재밌는 선글라스 인증샷도 찍고.
티엔즈팡(田子坊)의카페 [Taste]. 점점 '포즈의 여왕'  A를 찍는 맛에 빠졌다.

이쁜 카페를 '구경만' 할랬는데, 커피까지 마시게 되어 버렸고

A는 신기한 어플로 나를 이쁘게 찍어줄려고 했지만, 아무리봐도 야바위꾼 같다
내가 생각해도 잘찍은 A샷

잔뜩 멋 부린 사진도 찍어보고.

용캉루(永康路)의 유명한 맛집 [hlk]에서 그 맛의 명성을 확인했다.
부드러운 에그 베네딕트에 혓바닥까지 다 녹을뻔했어.

내가 좋아하는 [cafe on-air]에 A도 홀딱 반했다. 너무 감격해서 눈물을 흘리네.

상하이 친구 V를 소개시켜주었다. 동갑인데 키도 비슷하다. 170의 거인친구들이다.

(静安寺)징안스의 [Petit Jadin]. 현지인답게 세 명이서 7가지 메뉴를 시켰다. 거의 다 먹었다. 내가 몇 번이나 검증한 대륙의 맛집이니까.

2차는 [Speak Low] 작은 가게 안의 책장을 밀면 비밀 통로와 함께 쌔끈한 바가 등장한다. 
칵테일을 마시며, 한국인 둘이서 중국인 V에게 '저속한 한국어 동사'를 가르쳐주었다. V가 한국에서 그걸 쓰지 않기를 바란다.
A가 떠나는 날, 봄비가 왔다. 비가 오는 우캉루(武康路)는 더 선명하고 아름다웠다.
A가 가장 가고싶었던 카페 [1984 Bookstore]에 왔다. 비오는 봄날에, 이 카페는 가장 아름다웠다.
'연필' 엽서와 공책, 책갈피를 사고 우리는 초딩처럼 신이났다. 색깔별로 다 수집할 기세.

여행 첫날부터 이상했다. 우리의 걸음 수가 달랐다.

3일 동안 분명 A와 내가 모든 곳을 함께 다녔는데.

매일 500보씩 내가 더 많았다. 왜일까.


생각 끝에 알아낸 슬픈 진실.

내가 A보다 9센치 정도 작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니까 500보의 차이는 다리 길이의 차이였고, 보폭의 차이였다.

같은 거리를 내가 더 많이 걸으니,

내가 좀 더 피곤한 게 아닐까.


A가 돌아가고 다시 만 하루를 집에서 쉬었다.

쉰 목소리도 많이 돌아왔고

피로도 대부분 풀렸다.


그래도 우리가 나눴던 얘기는 그대로 남았다. 

심하게 많이 어리지만, 묻어둔 내 이야기들을 들어줄 수 있는 손님이었다. 고마웠다. 

나보다 9센치나 커서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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