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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필소녀 Apr 13. 2016

운수 좋은 날

상하이 개는 미녀를 좋아해

택시 너머로 보이는 올드타운 어딘가에도 반짝이는 봄이.


해가 좋아서 그랬는지

간만에 W를 만나기로 해서 그랬는지

유난히 설레는 금요일이었다.


지내다 보니 유독 어느 한 계절만 찾게 되는 카페가 있다.
특히 요즘의 날들에 어울리는 카페, 
테라스에서 온 몸으로 계절을 맞이하는 곳.
W와의 점심은 거기로 정했다.
징안스静安寺Kerry Center 1F 

[Bunlife]

크로와상 피자와 로스트 치킨 샌드위치가 
크레마 가득한 아메리카노와 함께 테이블에 올려지자
봄 풍경 부럽지 않은 기분 좋은 장면이 연출됐다.


야외 테이블 사이사이로 애완견들도 나들이를 나왔다.
어떤 아이는 엄마와 마주보며 한 의자를 차지하고,
어떤 아이는 개답게 땅바닥을 누비고 다녔다.
상하이 개들이 다들 순해서, 오래된 ‘개 공포증’도 어느 정도 극복되었기에
나도 편안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식사와 토크에 집중할 수 있었다.
뒤편 테이블 귀여운 푸들 하나가 나를 보며 웃는 것도 같았다.


왜 목줄을 안했지...? 생각했지만 귀여워서 그냥 넘겼다.
역시 나를 보며 웃은 게 맞았다.
내 쪽으로 오네.
내가 좋아?
안녕 개야.
하려는데 나를 지나쳐가네.
내가 아니라 W였군.
개도 이쁜걸 알아보나.


W는 베이지색 트렌치 코트에 하얀 얼굴과 긴머리칼을 코디해왔다. 

영락없는 봄의 여자.였다.


개님도 눈이 있는지 W에게 다가간다.
그녀의 트렌치 코트가 개님의 볼에 잠시 스친다.

아 미녀여...!
미녀의 트렌치 코트에 개님이 손을 뻗는다. 
발이구나. 왼쪽 뒷발. 
개님이 격하게 감동한 발을 문득 들어올린다.
졸졸졸. 
응?


개님이 싼다.

봄의 여신인 그녀의 트렌치 코트에 노란 액체를 싼다.
야!! 너 뭐해!!


때는 이미 늦었다.
그녀의 트렌치 코트는 개님에게는 벽이나 모서리, 화단 같은 기분이었나 보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인데, 마치 그 장면이 슬로우 모션처럼 선명하게 보였다.

이게 무슨 아닌 봄날에 날벼락인지.
개님은 이 와중에도 맑고 평화로웠다. 시원하니까. 

우리는 둘 다 벌떡 일어났다.
동시에 개님의 엄마를 쳐다봤다. 눈알이 튀어나오도록.
그러니까 왜 목줄이 없...!!

그런데 개님의 엄마가 환하게 웃고 있다.
왜죠?

머리서부터 발끝까지 샤넬로 치장한 아줌마는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괜찮아”
뭐가 괜찮다는 거죠?

개님보다 개님 엄마의 행동에 순간
엄청난 강도의 빡이 쳤다.
그러다 3분도 안돼, 우리는 웃고 말았다. 

지나치게 긍정적이고 호탕한 샤넬 아줌마는
우리에게는 괜찮아 괜찮아~ 하고 크게 웃으며 
자식같은 푸들의 머리를 크게 세 번 후려쳤다.
(W의 마음은 이때 아마 풀렸을 것이다)

그리고는 호탕하게 지갑을 꺼내
약 4만원 정도의 위안화를 W에게 건네며
괜찮아 괜찮아~를 연발했다. 

이후로도 우리가 끝내 다 해석할 수 없는
호탕하고 긍정적인 중국어를 내내 날리며 그녀는 웃었다.

우리도 웃는 것 밖에 
달리 할게 없었다.

웃는 얼굴에 이런 식으로 침을 못 뱉는 거구나.
괜찮아 괜찮아~에 중독되었는지
우리는 어느새 괜찮은 것도 같았다.

W의 트렌치 코트 옷감은 매우 튕기는 성격이었는지
노란 액체를 하나도 흡수하지 않고 물방울 처럼 

또르르 흘려 보내곤, 언제 그랬냐는듯 멀쩡히 뽀송해졌다.

그리고 얼떨결에 W의 손에는, 세탁을 하고, 비싼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셔도 남을 돈이 쥐어져 있었다.


용돈 벌었네요. 
그러게 운이 좋은건가 

카페 종업원에 의해 강제 목줄을 하게된 개님은 카페의 열린 문짝에도 한번 더 노란 액체의 행운을 뿌렸다. 그리고는 모른 척.


점심을 먹고 헤어지고도 햇살은 여전히 좋았고,
시내 모든 곳에는 이상하게도

샤넬 아줌마의 호탕한

괜찮아 괜찮아~의 기운이 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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