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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필소녀 Apr 26. 2016

열일하며 산다

상하이 원단시장과 린넨  홀릭

쉴새없이 흘러가는 날들이다.
상하이는 진작에 봄이 왔지만 흡사 장마같은 비가 툭하면 쏟아지는 바람에 이렇다할 따뜻함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쉴새없이 오는건 비 만이 아니라서, 요며칠 생각하고, 고민하고, 해결하고, 해내야 할 일들이 많았다. 모두 다른 분야의 일들인데도, 결국 일이란 '문제와 솔루션' 이라는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음을 깨닫는 날들이기도 했다.

가장 많이 고민했던건 '디자인과 실물의 차이'.
무려 4차의 디자인 디벨롭을 거쳐 맘에 드는 디자인을 완성했으나, 물론 화면상이었고, 고대하던 샘플링을 거쳐 탄생한 '실제'는 너무도 '다른 것'이었다.
생각해보니 온라인 미팅주선 프로그램으로 남자를 골랐는데, 실제로 만난 남자는 '너님은 누구세요'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 둘이 다른건 너무도 당연한 일.

말하자면 이번 프로젝트의 프로토 타입. 우리가 생각한건 보라카이 바다색을 닮은 라이트 블루였다. 팬톤컬러 넘버까지 정확히 전달했는데. 공장장님은 청색 색맹이었을까.

파리 지도 위에 상하이 가방을 데코한다. 주인공보다 더 아름다운 조연, 파리 지도님. S가 사진을 잘 찍어 가방에 파리의 낭만이 조금 묻었다.

때마침 잘 마른 꽃을 거실에 세팅했다. 날들의 우울함을 꽃이 조금 덜어주었다. 세마춤 미니어처가 우리 거실의 봄을 만끽하고 있다. 나 대신.

그래. 책상머리 디자인은 그만. '실물은 실물로' 계속 부딪혀봐야 한다는 값진 교훈을 얻고, 다시 원단 시장을 찾았다. 시장에는 색색의 린넨들이 고급스런 우아함을 뽐내고 있었다.

사심을 담아 천을 몇 마 사왔다. 내가 만든걸 내가 써보는 생애 최초의 모험을 나는 곧 할 것이다. 물론 미싱질은 세탁소에서.

함께간 동물덕후 베로니카는 길고양이에게도 구애한다. 그녀는 별도 달도 다 따다줄 기세지만, 냥이는 세상의 집사들에게 관심이 없다.

나와 함께 사심의 원단을 뗐던 베로니카는 세탁소에 매달린 나와는 다르게 재봉틀에 매달렸다. 그리고 세시간 반 후, 작품을 만들어냈다. 옴마야.

화가 친구의 작품 앞에서 자기 작품을 매고 선 그녀가 멋지다. 부럽다. 미싱이 백개 있다해도 나에게는 미션 임파서블.

디자인과 원단과 재봉질로 (고)뇌의 한켠을 쓰는 동안, 뇌의 다른 한 켠에서는 (재미있는) 또 다른 프로젝트를 돕고 있었고, 뇌는 필요없는 알바도 유지하면서, 밤에는 책을 읽고, 동시에 한국TV에도 집착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러다 일요일. 돈은 안되는 일을, 매일 우왕좌왕하며 돈을 쓰고만 다녔더니 문득 지갑에 현금이 하나도 안남았다는걸 알게됐다. 스마트폰으로 여러 사이버 페이가 가능했지만, 현금이 만원 한장이라도 있어야 마음이 편한법이다.

자기야 나 100위안(18,000원) 짜리 한장만 줘.
어 좀 이따 줄게.

라고 했지만 그가 혹시 까먹을까봐, 멀더가 샤워를 하는 동안 지폐 한장을 꺼내서 내 지갑에 넣었다. 그리고는 나도 잊고있었는데.
'판타스틱듀오' 2회가 시작됐다.
지난주에 이어 임창정, 태양, 이선희가 노래하는데 또 심장이 터질듯 짜릿했다. 멀더와 숨죽여 그들의 노래에 빠졌다.

태양이 임창정 이길 것같애.

(나는 태양에 홀딱 빠졌으므로)
아니야 임창정이 이길 것같애.

(멀더는 확신하는듯 했다)
그럼 내기하자. 100위안 내기.
콜.

태양이 이겼고, 나도 이겼다.
어차피 자기한테 100위안 줄거였으니까 히히.
멀더는 별로 아쉬워하지 않았다.

멀더는 아직도 모른다.
내가 건망증을 우려하여 미리 지폐한장을 빼갔단 사실을.
굳이 말하지 않았다. 너의 지폐 '두장'이 내게 왔음을.

일은 밖에서 진탕 하고
돈은 안에서 짜잘하게 벌고있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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