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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필소녀 Mar 19. 2016

나는 이렇게 복잡한 사람

Shanghai #33

오늘 점심은 프랑스 식당 어때요? 같은 반 일본인 Rui(루이)는 낭만을 아는 여자다. 나는 '스고이!'를 외치며 그녀를 따라 나섰다. 학원 근처의 정통 프랑스식당(이라는) La 어쩌고.에앉았다. 입구에서부터 프랑스 냄새가 났다. 유제품 알러지가있는 나는, 이 냄새에 매우 민감하다. 순간 불길한 예감이들었다. 


그녀는 좋아하는 메뉴를 능숙하게 주문했다. 비주얼이 훌륭한 요리 두 개가 등장했다. 종업원이 양철 시럽 통을가져와서 불쇼를 하다가 크레페에 끼얹어주었다. 왠지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맛있을지도 몰라! 커피 아이이스크림&바나나 크레페였다. 이런 이름은 맛이 없을 수가 없다. 또 다른 메뉴는 이름 모를 프랑스요리. 각종 치즈가 시금치와 토마토와얇은 크레페식 빵을 정복했다. 우리는 비주얼만으로도 환호성을 질렀다. 그리고 맛있게 한입!



순간,그분이 오셨다. 모든 유제품을 거부하는 그분. 갑자기속이 울렁거렸다. 커피아이스크림&바나나 크레페는 분명 먹을 수 있는 것이었는데 대체 어디에다 우유 맛을 숨겨놨는지 모르겠다. 이름 모를 치즈범벅 요리는 냄새가 올라오는 순간, 내 위에서 신물도동시에 올라왔다. 


화려한 음식에 한껏 기뻐하는 루이 앞에서티를 낼 수는 없었다. 맛있게 먹는 척, 포크를큰 동작으로 휘젓고 헐리우드 액션으로 바나나를 집어먹었다. 30분후쯤, 결국 (그래도 웃는 얼굴을 유지하며) 화장실로 달려갔다. 다행히 먹은게 입으로 다시 나오지는 않았지만 설사는 피할 수 없었다. 아…100위안(1,8000원)짜리 점심이었는데. 아…커피는 맛있었는데. 나는 사실, 프랑스는 좋아해도 프랑스 요리랑은 맞지 않는 사람이다 


저녁은 반드시 한식이어야 했다. 고춧가루를 한 바가지 넣은 아기배추 겉절이를 어디엔가 복수하듯이 만들었다. 내친김에 진미채 복음에도 도전했다. 베이징에 사는 한국친구 J는 우리가베이징 여행을 마치고 떠나는 마지막 밤 새벽 4시에진미채 볶음을 만들어 싸주었었다. 그리고는 금쪽같은 레시피를 내게 전수해주었는데, 우리는 돌아와서 3일만에 그것을 해치웠다.  레시피는 역시나 다 까먹었다. 그냥 J가 옆집에 살았으면 좋겠다. J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번엔 포스트잇에 꼼꼼하게 적었다. 그리고 도전, 으하하. 그럴듯하다. 맛까지그럴싸 했다. 내 생애 첫 진미채 볶음이었다. 


오늘따라 유난히 매콤시큼한 겉절이와 갓볶은 진미채에, 그리고 설사로 인한 깊은 공복으로 인해, 나는한 마리 굶주린 암 사자처럼 포식했다. 늘어진 티셔츠에 양반다리까지 완벽한 비주얼. 내 식대로 배가 부르니 세상이 한층 아름다웠다. 


마침2주동안 말려두었던 드라이플라워가 완성되었다. 한껏 부른 배를 품고 일어나 고춧가루 식초냄새가득한 집안에 한줄기 낭만을 세팅하기 시작했다. 아주 커다란 봉오리였는데, 마르고 나니 조그맣고 짙은 아이들이 되었다. 드라이플라워를 세팅하고 소파에 앉자, 늙고 굶주렸던 암 사자에서 숲 속 이슬 먹는 사슴이 된기분이었다. 




프랑스 요리와는 안 맞아도, 고춧가루 범벅에 환장해도, 공식 없이 막 말린 꽃이라도 여전히 낭만적인것은 좋다. 프랑스에 살고 싶다가도 고춧가루 없이는 못살겠고, 밥은 걸러도 커피는거를 수 없고, 식초 향이 가득한 거실에다 꽃은 종종 꽂아두고 싶다. 

인간이 이렇게 복잡하다. 



2015.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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