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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필소녀 May 01. 2016

린넨 가방 프로젝트의 화창한 피날레

# Shanghai 71_'미싱질'의 추억

미싱은 길에 나와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멀쩡한 세탁소를 두고 왜 길에 나와 앉아 재봉질을 하시는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이것은 하나의 심볼이다. 옷이든 가방이든 내가 원하는 건 무엇이든 여기서 만들어주고, 고쳐줄 것이라는 믿음의.


아줌마는 얼굴이 청순하지만, 재봉질을 하실 때는 바늘처럼 날카로워진다. 이때 순둥이 남편분은 그녀에게 실오라기 같은 말도 건넬 수 없다. 사실 그녀의 원래 말투가 미싱의 바늘 같다. 정확하고 빠르고 뾰족하다. 남편은 그의 얼굴처럼 둥글둥글한 성격으로 그녀의 바늘을 받아내고 삼킨다. 그렇게 십수 년은 산 것 같은 부부다. 전형적인 상하이 부부의 모습이란다.


아내에게 바늘 같은 잔소리를 듣고도 남편분은 손님들에게 순박 미소를 뿜어낸다. 남편분이 내 가방을 만들어 주셨으면 천 원 정도는 깎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재봉틀보다는 '미싱'이 어울린다. 여기서 '미싱질'한 옷들은 바로 이 거리를 활보할 것이다.
깔끔하고 하얗고 이쁜 '형제' 재봉틀의 조작 방법은 모르지만, 이 '미싱'의 움직임은 알겠다. 해본적은 없지만 본 적이 있으니까.

완전히 잊혔던 기억. 엄마가 내 옷을 만들어 주던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어렸고 엄마는 젊었다. 나는 인형을 가지고 놀았고, 엄마는 인형 옷을 만들어 주셨다. 엄마에게 무엇이든 주문하면, 몇 시간 후 마술처럼 그것이 나타나던 시절이었다.


그때 엄마도 '저런 미싱'을 썼다. 엄마의 발이 발판에서 위아래로 까딱까딱 움직이면 바늘이 속도를 내며 재빨리 움직였다.


그 인형 옷들은 언제쯤 내 관심을 잃었을까. 초딩 언니의 교복을 입고 싶다고 졸랐더니 엄마가 똑같이 만들어주었던, '언니네 학교의 교복'은 어디로 갔을까. 그 미싱은 언제 우리 집에서 사라졌던 걸까.

그런데 엄마는 지금도 미싱질을 하실 수 있을까.

새로 만든 두 개의 가방은 내가 주문한 모양과 완전히 다른 것이 나왔다. 우리에겐 애초에 디자인 설계도 같은 게 없었으므로 따져볼 증거도 없다.


어차피 내가 쓸 가방이고, 밉지 않으면 상관없으니, 서로 괜찮은 걸로 마무리지었다. 아줌마는 다시 청순한 미소를 보였다. 25도의 햇볕 가득한 날씨에 골드빛 린넨 가방을 메고 나서니 기분이 다시 좋아졌다. 아메리카노를 마시면 더 좋아질 것이었다.

세탁소 앞 풍경이다. 저 옷들은 저렇게 마르고, 다시 입혀지고, 옷감이 헤지고, 세탁소 아줌마에게 고쳐지고, 그렇게 살아갈 것들이다.

세탁소가 있는 과거 풍경에서 10분만 가면, 미래도시의 그것 같은 쇼핑몰이 나타나고, 그곳에서는 서울에서 보던 현재의 것들이 가득 차 있다. 내가 사랑하는 카페가 있고, 기다리던 아메리카노가 곧 나를 맞을 것이다.

25도의 햇살과는 또 다른 빛들이 이 곳에 가득 차 있다. 인간은 자연의 빛을 차단하여 기어이 어둠을 만들고, 그 안에 인공의 빛을 넣어 즐긴다.

커피를 마시면서 산적한 생각들을 정리하고, 진짜로 마쳐야 할 다른 일들을 끝내고 나니, 마침 세탁소 아줌마에게서 마지막 가방이 완성됐다는 문자가 왔다. 기다리던 레고 택배 초인종 소리를 들은 조카처럼, 세탁소로 달려갔다.


도톰한 겨울 천으로 만든 마지막 가방이 나는 제일 마음에 들었다. 이번에는 주문대로 잘 나왔고, 제일 이쁜 것 같다고 말하며 아줌마는 내가 본 이래 가장 환한 웃음을 보였다. 가장 이쁜 그 가방은 몇 달 후에나 우리 집을 나설 테지만.


짧았던 '셀프 가방 만들기 프로젝트'가 끝이 났다.

설레고 즐거웠던 일주일이었다.

직접 디자인을 한 것도, 직접 재봉질을 한 것도 아닌데

나는 어쩐지 이전과 달라진 것 같고

조금 더 어른이 된 기분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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