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nghai #72
분명 그럴 것이었다.
내일 떠나 6월 중순에나 돌아오게 되면, 그때 이곳엔 여름이 당도해 있을 테니까.
따뜻하고 온화했던 해가 앙칼지게 쏘아붙이며 왜 이리 늦었느냐 할지도 모르겠다.
어쩔 수 없는 일들이 한국에 있고, 가야 할 곳이 있다.
사실 뿌염을 놓친 내 머리칼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기도 하다.
세렝게티에서 먹이를 쫓다 정신줄을 놓아버린 암사자의 갈기 같은 머리가 되었다.
일요일, 배고파 미친 암사자의 심정으로 햄버거집에 당도했다.
한때 상하이의 가장 맛있는 햄버거라 믿었던 곳이다.
좀 살고 나서야 이쯤 되는 햄버거집은 널려있다는 것을 알게 됐지만.
햄버거와 쉐이크를 동시에 먹는다면, 본능적으로 알게된다. 이건 만 칼로리야. 하지만 입을 뗄 수가 없잖아.
맛있으면 0칼로리 같은 되지도 않는 변명은 하고 싶지 않다. 걸어야지. 이렇게나 먹었으면 그거 많이 걷는 수밖에.
해가 쏟아지는 뻥 뚫린 창가 자리에 앉았는데, 맞은편에 앉은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한국 드라마와 가수를 좋아하는 상하이 사람이었다. 붙임성이 좋아서 함께 온 사람들처럼 대화를 좀 나눴다. 안면을 텄다는 구실로 우리는 '휴대폰으로 수도세를 내는 방법'을 물어보았다. 한국 드라마와 가수 얘기를 하다가 그는 일을 하러 간다고 일어섰다. 이곳 푸미 카페가 그의 직장이었다. 다음에 오면 맛있는 커피를 주겠다고 했다. 이 곳의 커피는 이미 아주 맛있었지만. 다음엔 친구 어드밴티지로 더 맛난 커피를.
우하핫 자연스러운 건 역시 안 되는 거구나. 근데 벤틀리는 왜 엉덩이만 나왔니. 그냥 가던 길이나 가자~
옛날에 어느 남자 인터넷 쇼핑몰에서 '160cm의 영웅'이라는 카피에 빵 터진 적이 있었다. 그 쇼핑몰은 대박이 났다. 그것의 여자버전이 있다면 이 아이가 모델이 되면 좋을 것이다. 뭘 입어도 완벽한 간지를 자랑하는 160의 모델이다.
길가 좌판에서 이쁜 팔찌를 발견했는데 주인 오빠가 너무 비싸게 불러서 포기했다. 그리고 근처 액세서리 가게에 들어갔는데 진짜 마음에 드는 팔찌를 발견했다. 길가 팔찌 가격의 열 배였다. 사람이고 물건이고 이쁜 건 이쁜 값을 한다.
마지막 '봄의 상하이'를 즐기기에 좋은 일요일이었다.
그리고 우중충 비 오는 월요일이 어김없이 왔고,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다 저녁이 되었다.
이제 진짜 짐을 싸야 하는 저녁.
한 달을 넘게 다녀올 거라서 짐이 많다.
저가항공사를 탈 예정이라 허락된 수화물 용량은 적다.
이래저래 난관이 많지만 알차게 짐을 꾸렸다.
그러다 동생에게서 메시지를 받았다.
강풍과 비바람으로 제주공항 마비. 대부분 항공편 결항.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게 난기류인데, 난기류 특보란다.
내일 아침, 1만 4천 명이 발 묶여 있는 공항으로 간다.
오전 8시부터 해제라던데, 우리 비행기는 7시.
우리의 운명은 제주도 하늘만이 알겠지.
연착은 감수하겠으니,
살려만 주시고.
앞으로 상하이->제주->서울->파리->서울->상하이의 스케줄이 기다리고 있다.
안전하게 완수해야 하는 미션임으로, 내일의 강풍특보가 처음이자 마지막인 액땜이기를, 진심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