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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필소녀 Jul 11. 2016

이국의 맛

Shanghai #76

서귀포 출신의 나는 살면서 많은 황당한 질문을 받아왔다. 버스가 끊기면 말을 타고 다니느냐. 한라산을 타고 학교를 다녔느냐. 해녀처럼 잠수를 하느냐. 아주 오래된 이야기지만. 특히 타지에 있는 대학에 입학하여 받은 질문 중 하나는 '제주도 가로수는 야자수라며?'였다. 나는 그들의 진지한 질문에, 열아홉의 자존심이 발동하여 순도 백 퍼센트의 정색을 날렸다.  거긴 동남아가 아니야. 가로수는 그냥 나무들이지 야자수가 왜 있니. 


첫 번째 여름방학을 맞아 고향에 돌아갔을 때, 나는 내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집과 시내를 다니며 늘 걸었던 길에 화려한 풍채를 자랑하며 '야자수 가로수'가 늘어서 있었다. 너무 오래 보고 자라서, 그것이 야자수 인지도 몰랐다. 길거리에서 그것들을 멍청하게 바라보다가, 멋쩍어하던 학교의 동기들을 생각했다. 이후부터는 도시 속 야자수를 볼 때마다 나는 혼자 웃었다.

상하이 우리 아파트에서 이걸 봤을 때, 왠지 서귀포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젠 친구들이 믿지 않겠지. 바나나 나무? 거기가 무슨 필리핀이니. 하면서.

며칠 전에는 멕시코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남미의 몸매와 남미의 음악은 '볼륨'이 넘쳤다. 매우 '플랫'한 우리는 그저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유기농 식재료와 음식들을 파는 타이완 브랜드 Green & Safe. 이것이 타이완의 맛인지는 모르겠지만, 주말 낭만의 맛인 건 분명하다.  

저녁은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베트남 식당으로. 언니가 '기승전결 없는' 신비스러운 음악을 연주하는 동안, 우리는 음악보다 베트남의 음식에 심취했다.  

밤엔 미국적 느낌의 BoomBoom. 이름부터가 미국스럽다. 금발의 손님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내 친구들은 검정머리를 하고 붐붐맥주를 마셨다. 

이곳에 수많은 맛들이 있지만, 내게는 뭐니 뭐니 해도 '상하이의 파란 하늘과 깨끗한 공기 맛'이 최고다.  그런데 먹구름이 몰려온다.


내일부터 태풍.

타이완에서부터 올라온 그것이 상하이를 점령한다는 소식이다.

먹구름이 예고하고 있었고, 날씨 앱이 경고했다.


사실 나는 은근 태풍을 즐기는 경향이 있다.

그것도 (태풍이 잦은) 서귀포가 준 선물.

이불을 뒤집어쓰고 비바람이 휘몰아치는 소리를 들으면

왠지 도시가 통돌이 세탁기 안에서 깨끗하게 씻기는 느낌이다.

내일은 오랜만에 시원한 태풍의 맛을 볼 기회다. 


다만 태풍의 한가운데서

내가 28층 거대한 창문이 있는 집에 살고 있다는 것이

다리가 조금 후달린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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