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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필소녀 Aug 23. 2016

잠시 이별하는 것들

Shanghai #81

'까다로운 카페 작업자'는 늘 새로운 카페를 탐험해야 한다. 

어딘가 더 편안하고 더 능률적이며 더 아름다운 곳이

반드시 있기 마련이니까.


그날 그 카페처럼. 

작고 이쁜 서점의 3층. 창문 옆 구석자리. 카페보다는 서재에 어울릴 것 같은 기다란 테이블.

모두 약속이나 한 듯 한마디도 하지 않는 서점 손님들. 강풍 에어컨으로 떨지 않아도 되는 실내온도.

고요하게 놓여있는 이 책들처럼, 나도 그것들의 일부가 된 것 같은 기분.

모두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종일 아름다운 기분으로 머물다 '카페 퇴근'을 했는데.


기분이 너무 좋았고

배가 너무 고팠나 보다.


멀더를 만나 백가지 메뉴가 있는 유명한 중국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마침 아랫집 N도 동참해서 주문 메뉴를 늘렸다.

이런 날은 보나 마나 과식이다.

모든 음식이 맛있고 기름졌다.

좀 걷다 들어갔어야 했는데.


게으른 몸의 주인은 소파에 드러누워 '뽕따'를 땄다.

기름진 위장에 느닷없이 소다맛 얼음 보송이가 폭격을 날렸다.

뽕따의 빈껍데기를 탁자에 내려놓는 순간

-모든 것이 그렇게 될 것이었던 것처럼-

위경련이 시작됐다.


밤새 핫팩으로 위를 달래 보았지만

그것은 단단히 화가 났다. 

있는 대로 예민해져서 부어있었다.

내 여중생 시절 같았다.

안 그래도 없는 잠이 제로에 가까워졌다.


그렇게 정신과 위장이 대치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하지만 과식도 조절하지 못하는 정신 따위가 

육체의 고통을 이길리 없다.

항복하고 뭐든 해보기로 했다.

위장은 역류성 식도염이라는 카드까지 꺼냈다.  


커피부터 끊을게.

과식 안 하고 매운 것도 줄일게.

잘못했다. 진정해라. 


그렇게 시작된 '차 마시는 생활'.

커피로 유명한 카페에서 종일 차를 마셨다. 커피는 향으로 만족했다. 커피 중독자인 나는 

종업원이 커피를 진하게 내리거나, 그것을 실어 나를 때마다 고개를 한 번씩 돌렸다. 

위가 침을 흘리며 반응했다. 아니 위가 거품 물고 으르렁거리는 건지도 몰랐다. 

한번 먹어보시지. 

다음날에도 커피로 유명한 카페를 갔다. Y의 향기로운 아메리카노가 커피 중독자를 시험에 들게 했다.

가족에게 모두 들켜버린 도박꾼이 된 것 같은 심정이었다.

커피로 유명한 집은 다행히 차맛도 좋았다. Y의 커피는 딱 한 모금만 얻어마셨다. 

다음날엔 오랜만에 상하이로 돌아온 S가 새로운 중국 음식을 소개했다. 

뼈를 완전히 발라낸 생선살을 가득 올리고 각종 야채를 넣어 전골로 끓이는 '카오위'라는 요리였다.


원래는 굉장히 자극적인 음식인데

S는 나를 위해 '된장 베이스' 전골 메뉴를 추가해주었다.

최근에 먹어본 중국 음식 중에서 가장 맛있고, 가장 소화가 잘 되는 것이었다.

역시나 2차는 찻집으로 향했다. 모든 손님이 '단독 룸'을 배정받고 오롯이 대화에 집중할 수 있는 곳.

모든 서비스가 정갈하고 서빙된 모든 것들의 퀄리티가 훌륭했다.

우리는 그곳의 '가장 저렴한 차 메뉴'를 시켰는데도.


'일인당 18,000원'짜리 -그곳에서-가장 저렴한 차는

아무리 마셔도 떫거나 질리지 않는 맛이었다.

아무렴 그래야지.

조용한 룸 안에서 좋은 차를 끝없이 마시다가

하루가 그냥 흘러갔다.

차 마시는 놀음으로 도끼자루 썩는 찻집이었다.

며칠 전 위장병으로 불편한 나를 지켜보던 Y가 느닷없이 말했다.

내가 죽 끓어줄까?

Y에게 엄마가 빙의한 것 같았다. Y의 손을 덥석 붙잡을 뻔했다.

그녀는 나를 집으로 불러 '죽 저녁'을 선물했다.

사 먹는 죽에서는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찰기였다.

쿠쿠의 힘이야. 그녀가 말했고, 천사의 음성으로 들렸다.


죽이라는 것을 대접받고서야

위장은 화를 풀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심신의 평화였다.

심지어 Y의 선물은 일회용이 아니었다. 그녀는 며칠치 죽을 내 손에 들려 보냈다.


매일 냉장고에서 그것을 꺼내 조금씩 덜어먹을 때마다 Y를 존경했다.

쿠쿠는 우리 집에도 있지만 주인이 그것을 전혀 할 줄을 모르니까.

(우리 집 쿠쿠는 참 단순한 일생을 살고 있다)

생각해보니 죽이라는 것을 평생 만들어 본 적이 없다.


죽과 차와 친해지다 보니

이제야 알겠다.


내가 얼마나 자극적인 것들만 입에 대고 살았는지.

스트레스 없이 안정적으로 살고 있다 생각했는데,

평화로운 일상이란 

정신건강에 해로운 '자극적인  회사'만 끊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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