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생활자들의 사소한 행복
커피 한 잔의 가격은 모두 달라도
커피 한 잔의 위로는 누구에게나 평등하다
엄마의 눈을 피해 초등학생때부터 커피를 마셨다. 영혼의 종소리 ‘믹스커피’부터 시작하여, 악마의 영혼 ‘블랙커피’를 마시게 될 때까지 커피는 어떤 식으로든 영혼의 동반자였다. 커피를 안 마신 날엔 끼니를 거른 것처럼 힘이 빠졌다. 자연스럽게 취미는 카페로 넘어갔다. 커피 한 잔을 마신다는 건, 단순히 맛을 즐기는 것뿐만이 아니었으니까. 커피와 함께 ‘그때’를 마시는 것. 그때의 공간, 그때의 시간, 그때 함께 하던 이, 그리고 그때의 커피 맛까지. 모두 어우러져 ‘커피를 마시는 것’이라는 걸 차차 깨달았다.
내가 살던 논현2동 골목에는 카페가 한집 건너 하나씩 있었다. 서로 다 비슷한 대형 프랜차이즈였다. 24시간 불 밝히며 ‘너는 혼자가 아니야’라고 말해주는 그곳들이 좋았다. 늦은 새벽 퇴근길에도 낮인 듯 카페에 앉아 이야기하는 사람들. 하루가 끝나지 않은 것은 나뿐이 아니었다. 점심식사 후 짧은 틈에도 동네 카페와 비슷한 카페를 가고, 비슷한 맛의 커피를 마셨다.
참을 수 없었던 회의 시간의 분노도 샷 추가한 아메리카노 한 잔이면 습관처럼 진정되곤 했다. 괴로우나 슬프나 각자의 일상이란 크게 다를 것이 없고, 어떤 일상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는 기분. 커피 한 잔에 ‘보통의 삶’으로 편입되고 있다는 안도감. 그래, 그때는 매일의 커피 한잔에 만족하며 시절을 살아냈다. 모든 것을 두고 상하이로 떠나기 전까지는.
상하이에 와서 처음에는 늘 별 카페만 찾았다. 아는 분위기, 아는 메뉴, 아는 맛, 그래서 실망할 리 없는 곳. 하지만 생활 중국어가 입에 조금 붙을 때쯤, 상하이에 있는 새로운 카페들을 탐험하고 싶어 졌다. 언제 떠날지 모를 새로운 도시에서, 있는 시간만큼은 모든 카페를 즐겨보기로 했다. 그러던 중 상하이에 스페셜티 커피를 파는 작고 예쁜 카페가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곳의 많은 이들이 커피를 전문적으로 즐기고 있으며, 각자 재미난 사연을 갖고 있는 카페들이 많다는 사실까지도. 심지어 프리랜서인 나는 시간 부자가 아닌가.
매일매일 새로운 카페를 찾아 나섰다. 모든 외국인들의 네이버라는 ‘Smart Shanghai’에서 정보를 얻기도 하고, 이곳의 친구한테서 소개받기도 했다. 여기서 새로 만난 몇몇 친구들은 이미 자기만의 ‘카페 리스트’를저장해 놓고 있었다. 처음에는 중국어로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사실 상하이 시내 카페의 거의 모든 종업원은 영어를 한다)
하지만 영어로 응대하는 종업원에게 굳이 중국어를 고집하며 말하는 내 모습을 기특하게 생각했는지, 그들도 차츰 중국어로 응수해 주었다. 어느덧 커피의 종류와 맛, 와이파이, 따뜻한 물, 냅킨, 화장실의 위치, 콘센트의 유무 등 모든 것을 중국어로 물어볼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마침내 어디든 찾아가 제대로 카페를 즐길 준비가 된 것이다.
와이탄, 푸동에는 없는
상하이의 또 다른 낭만
상하이에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다양한 카페들이 있다. 물론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형 프랜차이즈도 많다. 하지만 전문적으로 커피를 연구하여 창업한 카페들, 새로운 커피 문화를 만들어가는 카페 전문 브랜드. 일찍이 상하이에 정착하여 서양의 커피 맛을 들여온 프랑스인의 카페 등 요즘 서울의 이태원, 경리단길이나 제주도의 그것들처럼 새롭고 유니크한 카페들이 넘쳐난다. 하지만 상하이의 카페들이 특별한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카페가 놓여있는 풍경. 특히 ‘프랑스 조계지’ 라 불리는 지역의 카페들이다.
프랑스 조계지의 거의 모든 길들은 2~4차선 정도로 좁다. 그 길 모두에 커다란 플라타너스 나무들이 가득 차있다. 푸른 잎들이 파란 하늘보다도 더 푸르다. 카페를 찾아 나서는 길은 그대로 산책길이 된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모두 다른 컬러의 정취가 있다. 길에 취해 걷다 보면 어느새 그 길과 한 몸인 듯 보이는 카페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낸다. 유행하는 인테리어를 했어도 나무에 지어진 새집처럼 자연스럽다. 이 아름다운 길에 어울리는 방법을 찾은 카페들이다. 상하이에서 깨달은 새로운 사실이 있다. 카페의 즐거움은, 그 카페를 찾아가는 길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
길 위의 거의 모든 카페는 그 길에 의자를 놓는다. 테이블이 있건 없건, 그 길 모두가 카페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커피를 마시는 순간의 플라타너스, 유유히 달려가는 자전거, 나뭇잎 사이로 흩어지는 커피 향, 잘 내린 커피맛까지 ‘그때의 모든 순간’을 즐긴다. 아마 오래전부터 이 지역에 거주하던 프랑스인들의 문화가 이어진 것일 테다. 이런 문화는 아시아의 지역적 특색과 이종 교배하여 상하이 만의 신비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동양의 정취와 서양의 자유로움이 혼재되어 있는 낭만. 그것이 바로 상하이 카페만의 매력이고, 동시에 상하이라는 도시 특유의 매력이다.
날이 너무 춥거나 너무 덥지 않은 이상 야외 좌석에 앉는다. 모두 약속이나 한 듯이 바깥 자리를 선호한다. 유난히 봄가을이 긴 이 도시에서는 야외 좌석을 즐길 수 있는 날이 많다. 파리의 노천카페가 극장 객석처럼 길가를 바라보고 있는 풍경이라면, 상하이의 노천카페들은 바깥과 한 몸이 되어있는 풍경이다. 거리의 계절과 기운을 관조하지 않고 온 몸으로 만끽한다.
그건 아마도 상하이라는 글로벌 도시의 활기와도 이어져 있을 것이다. 카페 하나에는 동서양인들이 반반씩 앉아있는 경우가 많다. 중국 표준어와 상하이어(완전히 다른 언어다) 영어와 프랑스어 내가 있어서 한국어까지 한 공간에서 들린다. 시내 대부분의 카페 풍경이 그렇다.
커피 맛으로 유명한 카페에 들를 때는 바리스타와 이야기를 해 보는 것도 좋다. 그들은 자신의 커피에 자부심이 많고, 고객의 취향을 잘 들어주는 편이다. 고객이 커피 맛에 대한 의견을 주면 그에 맞게 새로운 커피를 내려주고 시식을 권하기도 한다. 그렇게 몇 번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시내에 몇 개쯤은 내 얼굴을 기억하고, 내 커피 취향을 알고 있는 카페가 생긴다. 단골 카페로 가는 길이 내가 살던 논현 2동 골목처럼 자연스러워진다. 그렇게 서서히 상하이라는 낯선 도시와 친구가 되어간다. 그리고 서울의 직장인이었을 때는 써보지 않았던 ‘삶의 여유’ 같은 단어를 떠올린다.
매일 같은 시간에 출근하는 ‘직장’이 없어진다는 것을, 세상 무너지는 것처럼 두려워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 두려움과 직장에서 인정받고 있다는 ‘나만의 환상’에 사로잡혀 15년을 쉬지 않고 출근했다. 커피와 카페를 좋아하면서도 그것의 진정한 맛을 알았다기 보단 카페인이 필요했고, 이야기를 나눌 장소가 필요했다. 하지만 이 곳 상하이에서 비로소 카페라는 것을 온전히 즐기게 되었다.
출근하는 직장이 없어서 여유가 생겼다기보단, 직장이 없어진다는 두려움을 나름 극복했기 때문일 것이다. 남들과 비슷하게 살아야 안도할 수 있는 일상에서, ‘작은 모험을 시작할 수 있는 일상’으로 건너왔기 때문일 것이고, 소속감 없이도 매일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찾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도시의 카페들이 진정 매력적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