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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필소녀 Feb 28. 2017

party29_이토록 화려한 셀프 생일상

The story of Studio29 #36

K는 작업실 멤버들에게 초대장을 보냈다.

초등학교 이후로 생일 초대장을 받아본건 처음이었다.


작업실에서 점심만찬을 준비할 예정이니

와서 맛있게만 먹어주면 된다는

횡재한것 같은 기분의 초대였다.

게다다 K는 우리 작업실의 공식 셰프다.

허투루 준비할리 없는 까다로운 미적,미각적 셰프.


내심 기대를 하며 작업실로 들어섰다.

생일자 K는 분주하다. 그 와중에도 생일자의 본분에 맞게

주인공다운 옷을 챙겨입었다.

잔뜩 부풀어오른 퍼프 소매가 그녀의 요리만큼 화려하다.

작업실의 작은 정원에서 키우는 라벤더를 올렸더니

뜻하지 않게 킨포크 스타일이 되었다나.

나는 킨포크 라는 말에 여전히 닭살이 돋지만

그녀들은 종종 말한다.

이런게 '상하이 킨포크'지 뭐야.

생일상에 목련 봉오리와 미모사가 함께하는 풍경

고양이 혐오증이 있는 K는 자기 생일에

종이 고양이를 오려서 제 이름을 넣었고

고양이 공포증이 있는 J는 종이 고양이만 보고도

식겁을 했다. 둘다 이상하다.

하지만 둘다 그 아래의 티라미수 케이크에는 열광했다.


본인 생일 케이크를 직접 만들어온 K 덕분에

우리의 럭셔리 케이크 미션은 실패했지만.

오늘의 3종 메인요리. 케이준치킨 샐러드 (feat.낑깡)

버터샤워를 한 마늘새우볶음밥

토마토소스 파스타

그리고 영원히 집어먹을 수 있을것같은 수제피클

요리과정과 요리에 대한 얘기에서 철저히 소외되는

미각실종자 나는,

그저 먹을때만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내 검은 팔에서 그 분명한 의지가 드러나고 있다.

한 명의 메인 셰프와 한 명의 우렁각시가 있는 작업실에서

요리 뒷전인 Y와 나는 늘 뒷처리에 더 열중한다.

변태적으로 설거지를 좋아하는 나는 늘 설거지 담당.

깨끗한 접시에 볕이 살짝 들 때,

나는 심지어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그리고 드디어 선물증정 타임.

이름도 생소했던 '캐리어 장바구니'라는걸

그녀는 늘 끌고다닌다.

그런데 테이프 칭칭감은 자신의 낡은 캐리어가

어느 독일제 캐리어를 만나 기가 죽었다며

슬퍼하던 순간을 포착.

우리는 독일제에도 꿀리지 않을 '큰 바퀴가 달린'

새 캐리어 장바구니를 준비했다.


빈 캐리어에 아이디어 하나를 더 넣었다.

일명 대파 데코레이션.

무엇이든 빈 것 보다는 꽉 찬게 더 좋은 법이다.

K는 선물을 보자마자 터졌다.

뒤로 자빠졌다 앞으로 몸을 접었다 하면서

온몸으로 기쁨을 표출했다.

안에서 감자 양파 대파를 발견했을때는

눈코입을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얼굴을 구기면서 웃어댔다.


자신의 낡은 캐리어는 티코였는데

이건 벤츠라고 했다.

이만하면 성공이다.

새차를 끌고가는 우아한 모습을 남기기로 했다.

주차공간도 확보했다.

작업실 대문 앞, 이 골목에.


우리는 곧 봄이오면 이 길에 테이블을 놓고

사발면을 호로록 먹으며

K와 함께 빨간 벤츠가 늠름하게 달려오는 장면을

함께 구경하기로 했다.




2월 27일, @studio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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