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장애는 평온한 날 갑자기 찾아온다

코로나 난민의 제주표류기 ④

by 연필소녀

그렇게 또 한바탕 긴장의 쓰나미를 겪고, 남편이 상하이로 떠난 지 4일 후. 언니 식구들과 바다 구경을 나섰다. 아무도 없는 바다에서 바람이나 쐬고 올 생각이었다. 도착한 바다에서는 '취사금지'푯말을 무시하고 삼겹살을 굽는 가족이 있었다. 넓은 바닷가 전체에 검은 연기가 휩싸였다. 천식이 있는 나는 유난히 연기에 취약하다. 좋은 기분으로 돌아가고 싶어 신고는 넣어두었다. 가져간 커피도 제대로 마시지 못한 채 다시 시동을 걸었다.


10분쯤 후였을까. 갑자기 숨 쉬기가 어려웠다. 손끝이 저리고 온몸에 한기가 돌았다. 호흡이 점점 더 가빠지면서 정신을 잃을 것 같았다. 한참 달리고 있던 그곳은 아직 시골의 어느 바닷가였다. 심호흡을 하려고 노력했지만, 노력할수록 점점 더 숨이 막혔다. 곧 죽을 것처럼 정신이 혼미해졌다. 하지만 병원 방문은 위험한 때였다. 게다가 일요일이라 대형병원 응급실을 찾아야 했다. 코로나 감염 위험이 있는 응급실을 찾을 것인가 경과를 좀 더 지켜볼 것인가 모두 고민했다.


나는 간신히 남은 숨을 모아 말했다. 언니, 나 그냥 응급실에 데려다줘. 제발. 병원까지 가는 길이 너무 멀게 느껴졌다. 이 차 안에서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시체로 발견되기 전에 병원에 닿기만을 바랐다. 언니 가족이 내 죽음 목격하지 않기를 바랐다. 병원에서 바이러스가 옮든 말든, 내가 코로나에 걸리든 말든 그런 건 아무 상관없었다. 숨만 쉴 수 있다면.


대학병원의 응급실에서는 나를 병원 안으로 들여보내 주지 않았다. 천식 증상인 것 같다고 얘기했으므로, 나는 호흡기 환자(가장 위험한 군)로 분류되었다. 그들은 나를 바로 선별 진료소로 보냈다. 무엇이든 좋으니 어서 숨만 쉬게 해 달라고 겨우겨우 말했다. '열이 나지도 않고, 바이탈이 정상이다' 이유로 '코로나 검사는 할 필요 없음'으로 다시 분류되었다. 그러나 지금 당장 치료를 받고 싶다면 음압병실로 갈 것. 하지만 현재 이 병원의 음압병실은 꽉 차서 자리가 남아있지 않으니, 다른 종합병원 응급실로 갈 것. 이상 끝.

"지금 숨이 숨이 넘어가는데 그냥 가라니요, 천식 흡입기라도 주시면 안 될까요."

"흡입기는 처방전이 필요합니다."

"그럼 선생님을 만나게 해 주세요."

"그건 안돼요. 호흡기 환자는 병원 안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

남은 힘을 모아 절규했다. "흡입기만요!"

방호복을 입은 분은 안타까운 눈빛으로 전화통화를 하고는 호흡기 처방전을 내주었다.


정신이 온전치 못해서인지 '단 한 번만 흡입해야 하는' 흡입기를 제대로 쓰지 못했다. 그 순간에도 당장 숨이 넘어갈 듯했고, 정신을 잃을 것 같았다. 언니에게 부탁해서 다른 병원의 응급실로 향했다. 흡입기는 이미 여러 차례를 쓴 후였다. 복용량 초과도 상관없었다. 죽는 것보다야 낫겠지.


응급실에서 대기하다가 흡입기 덕분인지 숨이 조금은 쉬어져서 싶어 집으로 왔다. 하지만 응급실에서는 '상태가 지속되면 '반드시' 119를 불러서 (자차는 가족의 감염위험이 있으니) 응급실로 갈 것. 오늘 밤 상태를 지켜볼 것.이라는 지시를 내렸다. 엠뷸런스를 불러야 할 상황을 생각해서 샤워를 하고 옷을 전부 외출복으로 갈아입어 두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와 앉아있으니 증상이 조금씩 나아졌다. 흡입기를 집에 와서도 두세 번 더 쓴 결과일까. 결국 119를 부르지는 않았지만, 밤새 숨이 차서 한순간도 잠을 자지 못했다.


다음 날, 오래 다니던 천식 병원을 찾았다. '천식이 심해진 것 같다. 드라이브를 하다가 갑자기 호흡 곤란이 왔다. 정신이 없어서 호흡기 사용법을 무시하고 여러 차례 쓰고 말았다.'라고 이야기 한 순간. 선생님의 표정이 묘하게 바뀌었다. 단호하게 결심한 듯 선생님이 말했다. "환자분이 천식이 있는 건 맞지만, 지금 증상은 천식이 아닙니다. 전혀 아니에요. 잘 생각해보세요, 호흡곤란이 왔을 때 천식 증상처럼 숨소리에서 쉭쉭 소리가 났나요? 아니죠? 지금도 보세요. 그 숨소리가 전혀 없어요. 천식 검사를 할 필요조차도 없어 보여요"


그제야 어제 천식 특유의 숨소리가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말을 믿지 못하겠다면 어제 갔던 응급실에 가서 천식 유발 검사를 해달라고 하세요. 근데 안 해줄걸요? 왜? 천식이 아니니까." 선생님의 단호함에 너무 놀랐다. 평소 너무도 친절했던 선생님의 차가운 말투에 당황하다 못해 혼이 나는 기분이었다. "그럼... 이 증상은 왜 나타난 걸까요..." 선생님이 내 눈을 정확하게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잘 들으세요. 제가 보기엔 공황장애 같아요. 집에 가서 잘 생각해보시면 천식이나 감기가 아니라는 걸 알 거예요. 정신과를 한번 가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공황장애라니요. 제가 왜요, 이제 모든 게 끝나고 제주도에서 편하게 지내는데 왜요. 남편도 간신히 잘 도착해서 집에 잘 있는데 왜요. 한국으로 온 지 두 달째고, 코로나가 아니었다는 게 판명됐는데 왜요. 저 이제 진짜 괜찮은데 정말 왜요. 왜 저한테요. 저는 멘탈도 강한데 왜요? 질문 하나도 내뱉지 못하고 그저 멍하니 병원을 나섰다.


며칠을 고민했다. 인정하기 어려웠다. 여전히 숨이 가쁘고 가슴이 답답했다. 그런데 이상한 건 며칠 후부터였다. 그날 밤부터는 심장이 조여왔다. 누군가가 내 가슴을 뚫고 손을 넣어 심장을 움켜쥐고는 쥐었다 놨다를 반복하는 것 같았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심장소리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숨이 막힐 때만큼 괴로웠다. 밤마다 죽음에 닿았다가 겨우 살아 돌아왔다. 죽음이 실제 코앞에 있는듯했다. 죽음보다도, 거실에서 시체로 발견된 나를 가족들이 보게 될까 봐 무서웠다. 코로나에 걸려도 이보다 더 아플 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 문득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숨이 찼었다. 천식이 아니라면 폐의 문제다. 그런데 갑자기 심장이 아프다니. 앞뒤가 맞지 않잖아. 폐와 심장이 동시에 망가질 수가 있는 것인가? 갑자기 심장이 왜 아픈 거지...? 그제야 결정을 할 수 있었다. 정신과를 가야 한다고.


일련의 과정을 들은 정신과 선생님이 말했다. "전형적인 공황장애 증상이시네요" 숨이 차서 응급실에 간 것은 전형적인 '패닉 어택(공황발작)'이에요. 누구에게나 공황장애는 그렇게 처음 옵니다. 정확히는 패닉 어택이 여러 번 반복되고 지속되면 그게 '공황장애'가 되는 거예요. 천식 환자는 더 쉽게 패닉 어택이 올 수 있어요. 숨을 못 쉬면 불안해지니까.


마침내 인정했다. 역시 그것이었군요. 담담히 받아들였다. 친절하던 천식 선생님이 왜 그렇게 단호하게 잘라 말했는지도 이해할 수 있었다. 정신과 선생님은 빠르게 잘 왔다며 칭찬해주었다. 보통 공황장애 환자들은 폐검사와 심장검사를 하고 '정상'이라는 판정을 받고서도, 많은 병원을 돌다 돌다 이유를 찾아내지 못한 후에서야 정신과에 찾아온다고 했다. 그래서 치료시기를 놓치고 완치도 쉽지 않다고. 공황발작 일주일 만에 정신과에 찾아온 사람은 드물고, 그래서 치료가 잘 될 거라고 말했다. 해결될 것 같지 않았던 문제가 드디어 풀리는 순간이었다. 선생님은 일주일에 한 번 병원에 올 것, 그리고 하루 세 번의 복용약을 처방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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