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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필소녀 Mar 19. 2016

봄의 주말엔 한번쯤, 쓰난맨션(思南公館)

Shanghai #56

N은 주말 낮까지 늦잠을 잤다.

직장인이 꿀같은 주말의 절반을 잠으로 비워버렸을때의 심정을 잘 알기에 N을 시내로 불러냈다.


주중에 집-회사만 단조롭게 반복하는 사람들은 가끔씩

시내의 북적거리는 사람들 속에서 충전이 되기도 하니까.


날이 따뜻해서 좀 걷자고 했고

걷는김에 걷기 좋은 길을 가자고 했고

마침 그 언저리에 걷기도 좋고, 보기도 좋은

쓰난맨션(思南公館)이 있었다.


상하이 쓰난루(思南路)에 있는 고급 맨션 단지인데

그 안에 이쁘고 맛있는 카페, 음식점들이 쏙쏙 박혀있다.


신티엔디(신천지:新天地)와 큰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맞은편에 있지만, 떼 관광객들이 복작대는 신천지와는 달리

정갈하고 우아함이 있는 곳이다.


서울에선 주말에 가로수길 같은데서 브런치를 먹곤 했는데, 언제나 맛에비해 너무 비싸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것마저도 당연하게 여겼었는데.


내가 막 상하이로 이사와 멀더와 브런치를 먹으러 이곳에 왔을 때, '서울서 먹던 브런치 가격'이 당연한 것이 아니었음을 알았다.

심지어 맛도 분위기도 더 좋았다.


서울에서 나는 가끔씩 비싼 음식을 먹으며

고단한 일상을 보상받았다.

그리고 그런 돈을 벌려고 다시 고단하게 일했다.


여기선 '고단한 일'을 하지 않으니

너무 비싼음식을 먹는건 어딘가 멋쩍다.

뼛속까지 노동자의 디엔에이가 박혀있나보다.


그런면에서,

고단한 일을 하지 않는 사람도 멋쩍지 않게

인생의 어느 밝은 부분을 보는 기분으로

즐길 수 있는 곳이 바로 여기였다 .

나와는 달리 고단한 일을 하는 N은 그것을 보상받으려고 돈을 쓴다.

나한테 쓴다. 그녀가 매번 커피를 산다.

나는 고단한 직장인의 최대 수혜자다.


그것때문에 그러는건 아닌데, 볼때마다 말라가는것 같은 그녀를 나는 또 매번 부러워한다.

그녀의 몸은 이렇게 가늘어지다가 언젠가 선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녀와 달리 요즘 나는 점점더 큰 '면'이 되어가고 있다.

주말에 쓰난맨션 브런치 식당 카페 테라스 자리에 앉아

미디움으로 구운 스테이크와 통통하게 잘튀긴 감자 옆에

크레마가 소복하게 깔린 아메리카노를 세팅하고

봄날의 상하이를 즐기고 싶다.고

지금도 그런 상상을 한다.


입짧은 '보상형 인간'이었던 나는

고단한 일을 가까스로 벗고

어느새 '식욕형 인간'으로 변해가고 있다.


2016.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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