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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필소녀 Mar 19. 2016

수국도 부활하는 마당에

Shanghai #14

나는 사실 꽃을 좋아하지 않는다. 모든 게 한철이라지만, 꽃은 그마저도 순식간이다. 

활짝 피어서 만개한 꽃을 사오면, 그때부턴 죽어가는 내리막을 지켜봐야 한다. 


그러니까 수국은 첫날, 유일하게 예뻤다. 하지만 불과 이틀 후, 수국은 임종 직전으로 시들었다. 

시든 꽃의 모습은 꽃 없이 밋밋했던 시절보다도못하다. 죽었다고 생각했다. 

혹 내가 뭘 잘못 한 걸까. 인터넷을 뒤졌다. 수국은 물을좋아해서 수국이란다. 

꽃잎까지 푹 담그고, 자고 일어나보라고 했다.


그리고 아침. 헐! 부.…부활했다. 처음의 새 꽃처럼 다시 만개했다.  수국은 심폐소생술이 가능한 꽃이었다.

다른 꽃들도 이런가? 어쨌든 기적은 일어났고 수국은 회춘했다. 이렇게 여리고 얇은 꽃잎도다시 일어설수 있는 거였다. 


12월, 내가떠나온 일터 언저리에선 어수선한 변화가 한창이다. 이맘때쯤의변화는 언제나 박탈감과 불안을 동반한다. 

지난날들의 고됨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고, 앞으로의 고됨은 더 무거워질 것을 알기 때문이다. 올해의 승자가내년의 승자가 된다는 법도 없다. 그저 계속 달려야 하는 것이다. 


십 년 전에도, 지금도 '안은 힘들고, 밖은춥다'는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 

요즘에도 그곳의 친구들이 가끔 내게 묻는다. 버티는 게 나으냐, 버리는 게 나으냐.

버티는 것에 대한 의문이든, 버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든 무엇도 선명한 선택지는 없다. 모든것은 결국 49:51의 비중으로하나를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미련은 인생의 숙명과도 같은 것이다. 


나는 이미 물을 먹고 회복하고 있는 중이다. 내년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도 어떤 선택을 하든, 그래서 어떤 결과를맞이하든, 밤새 물먹은 수국처럼 부활하기를. 아침에 눈을뜨면 시한부더라도 수국 꽃잎처럼 활짝 피어나기를. 바래본다.

안되면 내가조만간 서울 가서 분무기로 수분 한껏 뿌려줄게.



201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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