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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필소녀 Mar 19. 2016

단골의 늪

Shanghai #22

애초에 나는 '시장'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다.나의 과도하게 발달된 후각 때문이다. 

하물며 상하이에서, 그곳을 애용할 리 없었다. “야채는 여기서 사.” 남편이 처음 집 앞 시장에 데려갔을 때, 나는 심지어 중국어 벙어리였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오직 '이거 얼마예요' 뿐.. 처음엔 시간이 남아, 그냥 재미로 갔다. 중국어를못해도 신경질내지 않을 것 같은, 가장 인상 좋은 아줌마를 골랐다. 내가 허접한 바디랭귀지로 야채를 고르자 아줌마는 내 국적을묻고, 야채 이름을 천천히 발음했다. 


아기배추는 '와와차이!'나는 와와차이 하나를 배우고 깨달았다. 중국인과 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바로 여기에 있구나! 중국에서 중국인 친구를 만드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시내 사람들은, 내가 중국어를 못하면 늘 영어로 말해준다. 나는 초라한 내 중국어가 부끄러워, 조금 덜 부끄러운 영어로 응수한다. 그런 식으로 내 중국어는 한동안 계속 정체되었다.


중국어 선생님 다음으로, 그렇게 두 번째 중국인 친구가 생겼다. 나는 그 재미에 들려 재래시장에 눈을 떴고, 이내 그 가게의 단골 외국인 손님으로 등극했다. 시장에 갈 때는언제나 그녀의 가게로 직진. 다른 가게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나의친구가, 저 멀리서부터 나를 알아보고 웃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부작용은 얼마 되지 않아 드러나고 만다.


자기야,오늘 보니까 우리 단골가게가 제일별로던데? 옆집 대파 봤어? 완전 싱싱해! 어떻게 거기가 단골이 된 거지..?


어쩐지,중국 야채는 어메이징하게 저렴하지만 별로 신선하지는 않다고 생각하던 터였다. 썩은 부위도여럿 있고, 생긴 것도 들쑥날쑥 했다. 다 그런 줄 알았다. 남편의 말을 듣고 다음 시장 방문 시, 옆 가게들을 사시버전으로 스캔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옆 가게의 감자들은 잘생겼다! 대파들은 사랍학교 초등생처럼 단정하고깔끔했다. 흡사 연예인의 그것처럼, 옥수수 이빨마저가지런했다.


단골가게의 진실을 안 이후부터, 시장 골목길이 슬프다. 

파란 봉다리 한아름 병약한 채소를 담고걸어가는 그 길에, 깨끗하고 이쁘고 건강한 '옆집' 야채들이 자꾸만 눈에 밟힌다. 

하지만'내 두 번째 중국인 친구'를 모른척하고신선한 야채가게로 향할 냉철함이 내게는없다. 

나는 단골의 늪에 빠졌다. 


엊그제는 남편이 옥수수를 쪄 먹자 길래며칠 만에 단골가게를 향했다. 음...그곳에는, 세상에 이런 옥수수만 있다면 '옥수수 하모니카'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았을 삐뚤빼뚤한 이빨을자랑하는 아이들이 수북이 쌓여있었다. 


이렇게 생겨도...괜찮아요?

"그럼 그럼! 맛은 다 똑같아!"

아 네...그럼이거 주시고, 저거랑 쩌것도..

"오케 오케 근데 말야, 요새 중국말되게 늘었어!" (심지어 엄지 척!)

아 그래요...?!!


나는 얄팍한 사람이다. 쉬운 사람이다. 일관성 있는 사람이다. 다시 단골가게가 좋아졌다. 

다만 못생긴 옥수수는 맛도 없었다. 남편은 -그 좋아하는-옥수수를, 남겼다. 



2015.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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