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필소녀 Mar 19. 2016

마침표 세 개의 여운

Shanghai #23

Language Exchange의 일환으로 교환일기를 시작했다. 나는 중국어로, 그녀는한국어로 쓰고 매일 밤 서로에게 보내주기로. 어제는 첫날이라 의욕에 불타 무리하게 긴 문장을 썼다. 세 살은 더 먹은 것 같은 얼굴로 새벽 2시에 침대에 누우니, 매일 밤 야근하던 지난날이 떠올라 하루 만에의욕이 잿더미로 변했다. 

오늘은 초딩그림일기 급으로 짧게 썼다. 문장의 퀄리티는 중요하지 않다. 일단 '썼다'는데 의의를 두기로 했다.


저녁8시, 파란펜 선생님이 나타났다. 

치킨 망고 샐러드와 바바나 케이크를 앞에두고 그녀는 손수 수정해온 내 일기를 꺼냈다.



내 일기장은 많이 더러워졌다. 그녀는 거의 유한락스급으로 내 글의 땟국물을 뺐다. 

마침내 나의 중국어 일기는 더 나은 문장.이 아니라, 말이 되는 문장.이되었다.


그리고 그녀의한글 일기를 수정해 주는 시간, 나는 그녀가 쓴 문장 중간에 마침표 세 개를 찍어 주었다.

가끔은 점 세 개가 있으면,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돼. 한국말로 ‘여운’이라고 해.

말을 많이 하지 않고도 느낌이 있는 것. 말이 끝나고도 그 느낌이 오래 남는 것.

그녀에게  '여운'이라는단어를 설명해주었다. 

그녀는 여운.이라는 말이 너무 아름답다고 했다. 그 단어 자체만으로도 감동이 느껴진다고.


설명을 하고 보니, 

그래.그런 단어가 있었다. 

그런걸 느끼던 시절이 있었다. 

외국인에게 우리 말을 가르쳐주는데, 한국인인 나는 정작 그 말을 오래 잊고 살았다는 걸 

그때 알았다. 


2015. 1 

매거진의 이전글 단골의 늪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