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필소녀 Mar 24. 2016

훠궈집에 원앙이라니.

[牛代表]_Shanghai #60

상하이에서 훠궈를 먹을때 원칙이라면 원칙이랄까.

나만의 그런것이 있었다

절대 둘만 가지 않는다는 것.


자고로 (마라)훠궈란, 

커다란 대식구 테이블에 셋 이상 앉아서

야채와 고기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전기충격기같은 마라(麻辣) 맛으로 입 안을 지지기도 하고,

각자 취향대로 제조한 '시그니처 소스'를 서로 맛보기도 하면서

다같이 땀을 줄줄 흘리며 먹어야 제맛이다


더군다나 중국음식 초보자들은 숙련자들과 함께가지 않으면

주문조차도 힘든 곳이다


그런데 미각이 특별히 둔하고 편식이 심하며

고기향도 고수향도 싫어하는,

철저하게 한국형 입맛의 소유자 두 명이

집 앞 새로생긴 훠궈집을 방문했다


한자가 만개쯤 적혀있는 메뉴판을 보고 정신을 잃을뻔하다가

예전에 이곳에서 주문 한 것을 찍어놓았다는 친구의 사진을 전송받았다

우리는 약간의 응용을 시도했다


근데, J씨 마라(麻辣) 잘 먹어요?

아니요. 잘 드세요?

아니요 저도 잘 못먹어요.

그럼 우리 마라탕 말고 하얀 국물로만 시킬까요?

네네 그럴까요?


그렇게 우리는 분명 '전기충격기로 입 안을 지지는 맛의 마라(麻辣)' 국물을 제외시키고

익숙하고 만만한 '하얀국물'만 주문했다


그런데, 종업원이 이내 가져온 것은,

시뻘건 마라국물과 하얀국물 반반!


어머! 우리가 시킨거 이거 아니에요, 우리는 하얀국물만 시켰잖아요

아....이거 시키신거 아니에요..? 

네 아니에요. 잘못나왔어욧

아....그럼 새로 바꿔드릴까요..?

당연하죠!


그렇게 어버버한 중국어로 나름의 컴플레인을 해놓고,

순간 뒷통수가 서늘함을 느꼈다

혹시...?

뭔가 한자가 의심스러웠다


얼굴이 벌개진 종업원을 세워두고

5G의 속도로 중국어 사전을 뒤졌다


헐.

나의 중국어 사전에 쓰여진 단어는 '鸳鸯‘

'원앙'이었다

鸳鸯(원앙) - 명사: 원앙, - 형용사: (원앙새처럼) 짝을 이룬 사물 


원앙, 커플, 쌍쌍, 그러니까 반반 국물.


당황한 종업원을 붙잡고 죄송하다고,

최대한 어리숙한 외국인의 얼굴로 

우리 잘못이니 그냥 달라고 했다


원앙이라니. 원앙이라니. 원앙을 시켜놓고 왜 원앙이냐고 따지다니.

원앙 메뉴는 꽤 좋았다

마지못해 먹긴 했지만, 마라 맛도 세지 않아서 우리같은 초보자도 도전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이 집은 내부에 '오픈 키친' 스타일의 '오픈 정육점'이 있다

인테리어도 나름 쌔끈하지만 지금껏 가본 훠궈집 중 고기퀄리티가 가장 좋았다

고기에 별 취향이 없는 나도 그 시뻘건 신선함에 입맛이 마구 돌았다

우리는 배가 찢어질 정도로 원앙국물을 즐겼다


함께한 J와 성공리에 마라훠궈 도전을 마치고

우리는 카페에서 4시간을 넘게 이야기했다


상하이에서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J와

더이상 직장인이 아닌 사람으로 살아가는 나는

여기 상하이에 산다는 것 만으로도 

많은 공감과 위로가 가능했다


J는 아주 가늘지만, 아주 단단한 심지를 갖고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 심지가 너무 가늘어서 약해보인다고 하지만

나는 안다. 아니 많이 봤다. 

가늘고 단단한 명주실같은 사람들이

오히려 자신의 자리를 오래 지켜가는 것을.

두껍고 쎄고 강할 것만같은 사람들은 

때로 단 한번의 도끼질로 쪼개져버리기도 했다


그래서 평생의 파트너도 아직 없이

낯선 땅에서 월급을 받고 사나는 그녀를,

걱정하지 않는다


이제 칭찬도 월급도 셀프로 줘야하는 나에게

그녀가 해 주었던 응원처럼,

나도 다만 그녀를 응원한다


우리들의 더 즐거운 

상하이 라이프를 위해.



매거진의 이전글 작은 허세의 즐거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