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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필소녀 Apr 05. 2016

23년째던가

Shanghai #66

우리가 친구가 된지.


십대였던 M은 23년이 지난 지금도 사실상 크게 달라진 게 없다.

방금 대화한 사람의 이름을 까먹고,

길을 한 번에 찾은 적 없으며, 약속 장소를 다르게 알고,

공항에 가면서 짐으로 부칠 캐리어에 여권을 넣는다.


M이 처음으로 상하이에 왔다.

내게 폐를 끼치기 싫다고 호텔에 가겠다는 M을 굳이 우리 집에서 재운 건 '친구 어드밴티지'기도 했지만,


호텔방에서 스스로는 한 발자국도 못 나올 그녀를

매일 데려다주고 픽업할 것이 

나에게 더 고될 것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너 진짜 손타는 스타일인거 알지? 

그냥 우리 집에 곱게 있어라.


알아, 근데 나 낯가림 있잖아.

괜찮아. 그때 멀더 출장 가니까 걍 나랑 자면 돼. 


근데 나 잘 때 예민해서 쉽게 깨니까, 혹시 새벽에 나와서 혼자 잘 수도 있어.

그래, 거실에 이불 꺼내놓을 테니까 불편하면 나와서 자.

콜.


그렇게 협상을 마치고 시작된 3박 4일.

그러나 (역시 예상대로) M은 출장 가기 전날의 멀더와 함께 저녁을 와구와구 먹었고,

세수한 민낯에다 마스크팩까지 쓰고 등장했으며,

새벽에는 단 한 번도 깨지 않았다. 그렇게 쌕쌕 자기도 힘들다.

거실에 놓아둔 이불은 다음날 바로 거뒀다.


M은 변한 게 없다.

있다면, 그런 자신을 웃으면서 이야기한다. 이제는.


십대 때랑 다르지 않게 (본의 아니게) 웃기는 그녀는

여전히 웃기도 많이 웃는다.

낯가림이 심하다면서 여기서 처음 만난 내 친구들과 깔깔대며 얘기했고,

내가 하는 말 한마디에도 박수를 치며 웃는다.

나를, 우리를, 언제나 십대로 소환하는 리액션이다. 


3박 4일 우리는 언젠가의 순수했던 우리들처럼 

웃었고, 걸었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오늘, 내가 그 언젠가 마지막으로 보았던

활짝 웃는 얼굴을 다시 장착하고

한국으로 돌아갔다.

친구가 여행온 동안 함께 저녁을 먹기로 했던 이웃집 N이 갑자기 감기 몸살에 걸렸다. 

친구가 떠나는 아침에서야 간신히 집 밖으로 나올 수 있었던 N은, 

고양이 세수를 하고 우리가 마지막 아침을 먹는 식당으로 달려왔다.


함께 친구를 공항으로 바래다주고, 

마지막 공항 커피타임을 가지고, 상하이에서는 처음으로, 

공항 리무진 버스를 타고 돌아왔다.


같은 고향에서 태어나, 함께 서울살이를 시작하고, 

23년 비슷한 세월을 살아온 친구가 

잠시 왔다가 떠나는 날에,


같은 상하이 하늘 아래, 같은 아파트에서, 

감기 몸살에 걸려 얼굴이 퉁퉁 부어도 

레깅스 운동화 바람에 달려 나오는 친구가 덜컹거리는

공항버스 옆좌석에 있어주어서,


돌아오는 길이 좀 더 짧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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