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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필소녀 Apr 07. 2016

오늘의 상하이, 오늘의 우리

Shanghai #67

영화 [색,계]를 두번이나 봤는데, 영화 속 상하이 장면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런데 프랑스 조계지를 걸으면 이상하게도 그 영화가 떠오른다. 특히 이런 길.
치파오를 입은 탕웨이가 카페 창가에서 커피를 마시며

누군가를 염탐하거나
몰래 그 뒤를 따라 택시를 잡고 있을 것 같은 길이다.


한국에서 친구들이 오면, 이 길을 반드시 보여준다.
여기에는 1920년대의 상하이에서 피어났던
낭만적 슬픔같은 게 서려있다.
탕웨이와 양조위와 장만옥이 혼재된 느낌이다.

'우캉따로' (武康大楼_Wukang building)라는 이름의 이 빌딩은 '자살빌딩'으로 유명하다.
문화혁명때 재산과 자존감을 동시에 몰수당한 예술인들이 고층에서 줄줄이 몸을 던졌다.
100년이 다 돼가는 상하이 최초의 고층아파트는 자신의 첫번째 주인들을 그렇게 보내고, 이렇게 건재하다.
심지어 아름답게.

동양과 서양이, 예술과 공산주의가, 낭만과 죽음이, 사랑과 슬픔이 공존했던 상하이의 과거. 그 모든걸 품은 길.
그래서 비가오든 해가뜨든 나름대로 모두 운치있는 곳이다.

한국서 손님이 오면 푸동(浦东)에 데려가지는 않지만, 보여는 준다.
내가 보기엔 싱가폴 마리나베이, 홍콩의 빌딩숲이나, 서울의 테헤란로나 다를바 없지만
이 풍경을 보고난 관광객에게는 (중국에는 없을것 같은)일종의 '첨단도시적 편안함'같은게 생기는것 같다.

상하이 고층 빌딩의 상징인 '병따개 빌딩'이나 최근에 완공한 세계 4위의 124층 빌딩 같은건 보이지 않았다.
종일 비가 오고 안개가 하늘을 뒤덮었다. 인간들이 아무리 위대한 바벨탑을 하늘에 올려대도 나는 사실 관심이 없다.
함께간 손님이 나와 비슷한 사람이라 다행이었다.
우리는 일말의 아쉬움도 없이 미래풍경을 등지고 돌아나와 저녁을 먹으러 갔다.

과거 풍경도 미래 풍경도 좋지만, 나는 이런 풍경이 좋다.
길가에는 나무들이 줄지어 있고, 맛있고 예쁜 가게들이 있으며, 오래도록 불이 켜지고, 천천히 걷는 사람들이 있는 풍경.

오늘의 나는 이런 길을 주로 걷는다.
한국서 온 손님과도 하루종일 이런 길을 걸었다.

나는 요즘 많이 걸으면서 살아.
서울에 살땐 걷는걸 그렇게 싫어했는데 말야.

나도 요즘 많이 걸으면서 살아.
걷는걸 좋아하는 사람인지 이제서야 알게됐네.

우리는 제주도에서 태어났지만, 20년을 서울에서 살았다.
최근 그녀는 다시 제주도로, 나는 상하이로 떠나왔고
이제서야 자신들을 돌아보게 되었다.

사는 곳은 달라져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닮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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