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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필소녀 Apr 07. 2016

상하이의 봄이 식탁으로

Shanghai #68

뭐야 투시가 하나도 안맞잖아. 

아랫층 N이 말했지만 어쩔 수 없다.
나로선 이것이 최선이고, 두번 그려봐야 거기서 거기다. 
며칠전, 이 엉성한 그림을 그려 장인 S에게 전송했다. 

패브릭 마켓에서 떼어온 린넨 천은, 가위질 실밥 떨어지는 채로 깔릴뻔 했으나
결국 장인 S의 배려 덕에 깔끔하게 마무리된 식탁보로 거듭나게 되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눈부신 봄날, 
완성된 식탁보를 건네받는다는 핑계로 우리는 만났다.


카페 테라스에서 맑은 공기와 봄볕을 즐기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날이었다.
감기에 걸려 엉망으로 나온다는 S의 민낯과 동그란 안경이 봄 햇살에 부딪혀 오히려 반짝였다.

저도 직선 미싱질만 잘해요.
하며 꺼내놓은 식탁보는 놀라웠다.


오 마이. 이건 직선 박음질보다 훨씬 위대한 센스가 아닌가. 
이 아름다운 완성품을 내게 내밀었을 때, 나는 말문이 막혔다.
우리집 허름한 유리식탁에 시집오는 과분한 신붓감 같아서.


새 신부 덕분에 우리집 식탁에도, 그렇게 봄이 왔다. 

식탁보는 얼마전에 한국서 손수 들고온 스탠드와 드라이플라워 아이들과 마침내 한식구가 되었다.
이 영광스러운 순간 멀더는 출장 중. 그러니까 나름 새장가를 간 이 식탁에 올려질 음식은 없었다.
우리집 식탁을 채우는건 8할이 멀더니까.

하지만 여지없이 허기가 진 나는, 새 식탁보에 첫번째 냄비를 올리게 된다. 역시 새 냄비였다. 
새 식탁에 어울리게, 깔끔한 한 상을 차렸다.

새 식탁 영광의 첫 끼는 '불짬뽕'

몇달전 한국에서 처음 맛본 그것은 (매운맛, 불맛을 좋아하는) 내게, 완벽한 취향 저격의 음식이었다.

상하이로 놀러오는 친구에게 부탁한 불짬뽕이 그녀의 캐리어에서 열 봉 등장하는 순간, 
그 감정은 한국에 사는 사람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남은 9개의 불짬뽕은 나의 또다른 (소중한) 참깨라면과 함께 싱크대 수납함에 이쁘게 꽂혔다.
물론 두 방울의 라면 국물이 새 식탁보에 튀었지만, 안보이기로 했다.
예전처럼 물티슈로 식탁을 벅벅 닦을 수도 없지만, 괜찮기로 했다.
린넨과 어울리는 식기와 식탁 매트가 필요하게 되었지만 
뭐, 마련해보기로 했다.

사람이나 물건이나 예쁜 것들은 예쁜 값을 하고
손을 타면 탄 만큼 더 소중해지기 나름이다.

무엇보다도 지금 우리집 식탁에 
진짜 봄같은 봄이 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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