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씨를 뿌리지 않았다면,

by 수다하리

어느 마을에 부자가 살았습니다.

그는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멋진 집을 짓고 싶었습니다.

집을 짓고 정원을 가꾸려다 보니, 집터에는 너무 많은 돌이 있었습니다.

“주인님, 이 돌은 어떻게 할까요?”

일을 하는 하인들이 물었습니다.

“어떡하긴 뭘 어떻게 해? 그냥 문밖에 내다 버려!”

부자는 제집만 좋으면 그만이라 생각했습니다.

그 집 앞을 지나는 사람들은 바닥에 널브러진 돌에 걸려 넘어지거나 발바닥이 아프다고 부자에게 항의했지만, 부자는 늘 콧방귀를 뀌며 말했습니다.

“내 알 바 아니야! 나는 내 집안에서만 지낼 거니까.”

마을 사람들은 불편한 그 집 앞 길을 지나지 않았습니다. 사람의 발길이 끊기니 길도 사라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부자는 그만 망하고 말았습니다.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멋진 집도 다른 사람에게 팔아야만 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잃고, 영원히 나오지 않을 것 같았던 그 집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집 밖으로 나온 그는 돌길을 지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 이스라엘 동화 [남의 땅에 돌을 버린 사나이] -




나 역시 좋지 않은 결과나 사람들의 대우에 마음 상하곤 한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데, 알게 모르게 나도 내 집 밖으로 돌을 버린 것은 아닌지 돌아 본다.



뿌린대로거둔다.jpg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혼자되신 시아버지를 시댁 큰고모가 간간이 살펴주셨다.

이런저런 문제로 죄송한 일도 좀 있었는데 항상 괜찮다 해주셨다. 늘 우리 식구에게 뭔가 더 해주시려는 마음에 감사했다. 그렇다 보니 시댁에 가는 길에 찾아뵙게 되고, 간혹 이라도 안부 인사를 드리게 되었다.

큰고모는 그런 내가 기특하다고 작은고모께 칭찬을 했던 모양이다.

가족 행사에서 오랜만에 만난 작은 고모가 나에게 역정을 냈다.

“너는 똑같은 고모인데, 차별하니? 아주 기분 나쁘다. 얘.”

나는 뭔가 잘못한 사람처럼 움츠렸다.

그러곤 돌아오는 차 안에서 가슴에 울화가 일었다.

그리 자주 뵙는 분이 아니니 그런대로 잊혔지만, 그 후에는 큰 고모님께 안부 인사 드리기가 괜스레 어려워졌다. 내가 선택한 방법은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작은고모는 시아버지 장례식에 오지 않았다. 그래도 오빠가 돌아가셨는데 오지 못한 것은 사정이 있을 거로 생각했다. 우리 가족 누구도 딱히 서운하지 않았다.

아버님 장례식 치르고 며칠 지나 작은고모께 전화가 왔다. 장례는 잘 치렀냐, 못 가서 미안하다 하시다가 ‘사실은…….’하며 운을 뗐다.

말을 요약하면 그 시점으로부터 이미 팔 년 전에 돌아가신 시어머니 때문에 당신이 기분 나쁜 일이 있어서 일부러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미 돌아가신 분이고, 어찌 됐던 나의 남편의 어머님이다. 뭐라 말씀드리기 어려웠다.

전화를 끊고 난 후 작은고모는 나에게 문자를 보내왔다.

좀 시간이 지난 일이라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너, 나에 대해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어. 아주 불쾌하다.’는 내용이었다.

문자를 받고 너무 당황스러웠다. 도대체 내가 그분과 무슨 얘기를 나누었는지 아무리 되짚어봐도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여쭙고 사과드리려 전화를 드렸다. 받지 않으셨다. 한참을 생각하고 망설인 끝에 문자를 드렸다.

“전화 드렸는데 받지 않으시네요. 고모님, 제가 뭘 잘못 생각한다거 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제 말에 기분이 상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온종일 심장이 뛰었다. 그러다가 이내 분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도대체 내가 뭘 어쨌다고? 시어머니와의 문제라면, 차라리 남편에게 얘기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우리 어머니를 내가 시집올 때 모시고 온 것도 아닌데.


나는 물어볼 수 없으니 그분의 입장을 들을 기회는 영영 가질 수 없을 것 같다.

그렇지만 늘 묻고 싶다.

나에게 호의적이고 실수해도 덮어주고 뭔가를 베풀어 주려 애쓰는 분과 언제나 곱지 않은 시선으로 대하고 통박을 주는 분께 내가 대하는 태도가 같다면, 그게 정말 차별 없이 공평한 건가요? 하고 말이다.


첫 직장을 다닐 때, 옆 부서에 친한 언니가 있었다.

그때 토요일은 평일보다 좀 일찍 끝날 뿐 휴일이 아니었다. 요새 아이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용어로 ‘반공일’이었다.

어느 토요일, 언니의 결혼식이 있었다. 당시는 회사에서 중요한 행사를 앞두고 있어서 일요일도 나와 일을 해야 할 판이었다. 말단 사원인 내가, 팀장도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언니의 결혼식을 가고 싶다고 할 수 없었다. 못내 미안하고 아쉬웠다.

신혼여행에 다녀 온 언니가 부서에 답례 떡을 하나씩 나눠주었다. 그러고는 조용히 우리 팀장에게 “과장님, 별로 살 게 없어서……. 별거 아니에요.” 하며 따로 선물을 건넸다.

“언니, 나는?”

대뜸 물었더니, 언니가 멋쩍은 듯 웃으며 돌아나갔다.

‘어찌 생각하면 내가 언니 결혼식에 가지 못한 건 팀장님이 안 보내줘서인데, 어떻게 언니는 팀장님에게만 따로 선물을 주는 거지? 친하긴 나하고 훨씬 더 친한데?’

언니에게 섭섭했다.

그 이유는 몇 년이 지나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사회 초년생인 나는, 결혼식에 가지 못하더라도 따로 축의금을 챙겨줘야 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저 팀에서 단체로 걷는 만 원의 비용으로 할 도리를 다한 줄 알았다.

누군가 가르쳐주었다면 좋았겠지만, 간혹 우리는 상대가 모른다는 것을 몰라서 말해주지 못 하는 일들이 있다. 아니면 말하기 곤란하거나.


그때 알았다. 대부분의 결과에는 이유가 있다.

포도 씨를 뿌리지 않았다면, 포도가 열리는 것을 바라지 말아야 한다.

포도 씨를 뿌렸다면, 포도나무에 다른 과일이 달리는 것을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존중받아야 하는 이유가 단지 ‘나’일 수는 없다. 세상에 당연한 거, 원래 그런 것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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