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이프 온리]의 내용입니다.
아침부터 이안은 온통 오전에 있을 중요한 프레젠테이션 생각뿐입니다.
사만다는 그날 저녁 7시에 있을,
3년을 준비해 온 그녀의 졸업 연주회도 잊은 남자 친구에게 몹시 섭섭하지만 참아냅니다.
출근길, 이안의 실수로 시계 유리가 깨집니다. 어쩐지 불길한 하루, 프레젠테이션의 결과도 좋지 않았습니다.
어찌어찌 하루를 보낸 이안은 사만다의 졸업 연주회에 가기 위해 택시를 탑니다. 그리곤 택시 기사에게 여자 친구를 행복하게 해 줄 자신이 없다는 속내를 얘기합니다. 택시 기사는 이안에게 묻습니다.
“그녀를 다시 만날 수 없다면, 감당할 자신이 있어요?”
이안의 대답은 “No!”
택시 기사는 말을 잇습니다.
“그녀가 옆에 있는 것을 감사하며 살아요. 계산 없이 사랑하고.”
연주회가 끝나고 이안은 사만다에게 힘들지만 그녀와의 관계를 버텨보고 싶다고 말합니다.
버텨보고 싶다니!
이안의 말에 사만다는 무너집니다.
“아니, 난 버텨보고 싶지 않아. 나는 늘 너에게 이 순위인 것이 속상해. 그런데 그게 익숙해지는 것이 비참하기까지 해. 우린 모든 것을 다 제치고, 우리만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어.”
사만다는 남자 친구에게 결별을 선언하고 택시를 탑니다.
저녁 10시 59분.
이안은 사만다를 잡아보려 하지만, 주저하다 택시를 타지 못합니다.
11시. 그녀가 탄 택시는 사고가 납니다.
그리고 사만다는 떠납니다.
이안은 그간 사만다가 쓴 일기장을 읽으며 후회하고 아파하며 울다 지켜 잠이 듭니다.
겨우 눈을 뜬 아침. 어제와 똑같은 하루가 시작됩니다.
어찌 된 일인지 사만다도 이안의 곁에 있습니다. 꼭 어제처럼.
이안은 그저 나쁜 꿈을 꾸었다고 생각하지만, 어쩐지 불길해서 어제와 다른 옷을 입고 회사를 향합니다.
그날 이안은 프레젠테이션을 성공적으로 마칩니다. 그러나 그는 그의 하루가 조금씩의 차이가 있더라도 결국 어제와 같은 날의 반복임을 눈치챕니다.
이안은 후회 없는 하루를 보내려 사만다를 찾아갑니다.
그리고 그간 감추었던, 그의 아픈 상처들까지 고백합니다.
졸업 연주회를 끝내고, 저녁 식사를 한 후, 더없이 행복한 사만다는 집으로 돌아가려 택시를 탑니다.
이번에는 이안도 함께 합니다.
택시 기사를 본 이안은 앞으로 다가올 그들의 운명을 직감하고 사만다에게 마지막 고백을 합니다.
“진정 사랑했다면, 인생을 잘 산 거잖아. 5분을 더 살든, 50년을 더 살든. 사랑하는 법을 알려줘서 고마워. 사랑받는 법도.”
저녁 10시 59분. 이안은 사만다를 온몸으로 끌어안습니다.
그리고 다시 찾아온 11시. 그들이 탄 택시는 사고가 납니다. 그리고 사만다만 남습니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내가 사는 오늘이, 어쩌면 누군가가 남겨준 선물일 거라고.
그러니 나는 오늘을 더 잘 살아야 할 책임이 있다.
어제저녁 산책길에서 보니 나무에 매화꽃, 목련꽃이 별처럼 걸렸다. 날씨가 제법 따뜻하다.
피부로 전해지는 습한 기운이 비를 예보하는가 싶더니 아침부터 비가 온다.
작년 4월, 그날도 오늘처럼 비가 왔다.
코로나로 딸아이는 등교 수업과 온라인 수업을 한주씩 병행했다.
전에는 학교에 가지 않을 때면 카페로 나와서 공부를 하더니 언제부터인지 잘 나오지 않았다.
뭐라 말이 길어지면, ‘내가 알아서 할게’가 딸의 입에 달린다.
이 아이도 피해 가지 못할 ‘중2병이겠거니’하며 참아 넘겼다가, 나 없는 동안 종일 스마트폰만 쥐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 부화가 일기도 했다.
제게 일어나는 소소한 일까지 곧잘 얘기하는 딸이었는데, 어느새 엄마와 거리 두기를 할 나이가 되었나 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내가 딸을 서운하게 했던 일들이 스친다. 혹시 사춘기로 생각이 많아진 딸아이도 엄마에게 서운함이 있어 저럴까 싶었다. 딸에게 카페에서 잠시 얘기를 하자 청했다.
엄마에게 뭐 섭섭한 게 있냐 물었더니 딸아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고는 울기 시작했다.
“엄마, 나 요즘 자꾸 예지(가명) 생각이 나.”
“예지?”
전혀 예상치 못했다.
2019년 4월, 인근 아파트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그날, 딸아이 반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
아이는 좀처럼 진정하지 못하고 그간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나 6학년 때, 가게에서 공부하고 있으면, 예지가 집에 갈 때, 일부러 우리 가게 앞으로 지나갔거든. 가게 안을 쳐다보면서……. 그러면 손 인사를 하거나 잠깐 밖으로 나가서 얘기를 하기도 했었어. 엄마, 나는 4월에, 가게에 앉아서 밖을 보면, 자꾸 예지가 지나가.”
딸은 시린 상처가 되어버린 그날을 얘기했다.
“가뜩이나 세월호 추모식 때문에 슬픈 날인데……. 엄마, 나는, 내가 4월 16일에 무슨 옷을 입었는지, 그 애가 무슨 옷을 입고 있었는지, 아직도 영화처럼 생생해. 그리고 그날 급식으로 어떤 음식이 나왔는지도. …… 마늘빵이 나왔는데, 내가 마늘빵을 싫어해서 안 먹었거든. 예지가 안 먹을 거면 달라고 했는데, 내가 ‘싫어!’하고 잔반통에 버렸어. …… 장난이었는데, 그게 마지막이 되어버렸어. 어떡해. 너무 미안해.”
나는 딸아이를 안았다. 아이는 말을 잇지 못하고 가슴에 응어리진 눈물을 쏟아냈다.
“네 잘못이 아니야. 예지도 네가 그렇게 생각하는 거 알면, 엄마처럼 말해줄 거야. 네 잘못이 아니라고.”
예지는 좋은 아이였다. 사람은 과거를 좋은 기억으로 포장하여 추억으로 만든다고 한다.
나는 그 아이에 대해 포장할 기억이 없으니 그전에 전해 들은 평판으로 얘기할 수밖에 없다.
그 아이는 정말 착한 아이였다. 그래서 하늘이 탐을 낸 모양이다.
그 주 주말, 우리는 꽃을 사서, 예지가 있는 납골당에 다녀왔다. 사진 속에서 천사처럼 웃고 있는 아이에게 부디 편안하라 인사하고 돌아섰다.
영화 ‘식스 센스’의 콜은 죽은 사람을 본다. 콜의 엄마는 아들을 걱정하지만, 아들에게 죽은 사람이 보인다는 사실을 믿지 못한다.
영화가 끝나갈 무렵, 영화 ‘식스 센스’는 더는 공포영화가 아니었으며, 죽은 이는 공포의 대상이 아니게 된다.
콜은 차 안에서 엄마에게 말한다.
“할머니도 가끔 저를 찾아와요. 엄마에게 안부 전해 달래요.”
“콜, 그런 말 하는 거 아니야.”
“할머니가 엄마 춤추는 거 보셨대요.”
콜의 말에 엄마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엄마가 할머니 무덤에 찾아가 했던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항상(everyday)’이래요. 엄마, 할머니께 뭐라고 물어본 거예요?”
엄마는 눈물로 꽉 막힌 목소리를 꺼내어 대답했다.
“내가 엄마에게 자랑스러운 딸이었냐고.”
혹여 예지가 우리 딸에게 답할 수 있다면, 그 아이도 ‘장난인 거 나도 알아. 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야.’하고 말해 줄 거라 믿어본다.
그런데도, 다시 그날을 지날 때, 그때처럼 눈물이 지나거든, 막으려 애쓰지 않고 미안하다고 다시 용서를 구해볼 생각이다.